경찰이 지난 15일 발생한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버스차고지 화재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전직 버스기사를 지목했다.
전직 버스기사는 회사의 부당한 처사와 해고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실제 버스기사들의 처우는 어떤 수준일까.
◈ "오죽하면 불질렀겠나"
지난 18일 오후 서울의 한 공영차고지. 삼삼오오 모여 배차 시간을 기다리는 버스기사들의 화두는 단연 나흘 전 발생한 버스 방화 사건이었다.
버스 38대를 순식간에 태운 이 사건에 대해 서울 강서경찰서는 이 버스 회사에서 일했던 전직 버스기사 A씨(45)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 집과 차를 압수수색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난 버스기사들은 “무단횡단하던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사고로 회사와 갈등을 빚은 A씨가 오죽했으면 그런 극단적인 일까지 저질렀겠냐”며 혀를 찼다.
◈ '자부담', '꺾기'…버스기사에게 부담 전가하는 일부 버스회사
버스기사들은 교통사고나 버스 내부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회사의 처분에 불만이 많았다.
일반적으로는 버스회사 내부 규정에 따라 사고가 날 경우 버스공제조합의 보험을 통해 처리한 뒤 해당 기사는 배차 정지 등의 처분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일부 버스회사에서는 사고 발생 사실이 알려지면 버스회사가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기사의 과실이 크지 않은 건에 대해서도 기사가 처리하는 이른바 '자부담'을 강요한다는 게 버스기사들의 증언이다.
서울의 버스회사들은 1년에 한 번씩 평가를 통해 점수를 산정해 순위를 매겨 이를 기준으로 이윤을 배분하는데, 사고 발생이 많으면 점수가 깎여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이 오기 때문이라는 것.
버스 기사 16년차인 김 모(53)씨는 "접촉 사고로 승용차와 사고가 났는데 결국 내 돈 50만원으로 사고를 처리했다"면서 "원칙적으로는 공제조합에서 처리해야하는데 기사에게 떠맡기는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특히 김 씨 처럼 경력이 길어 호봉이 높은 버스 기사의 경우 사고가 날 경우 이를 빌미 삼아 퇴사 뒤 재입사를 종용하는 이른바 '꺾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김 씨는 "회사에서 암암리에 '너 꺾을 때 되지 않았느냐'며 압박을 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면서 "퇴직금조차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깎아 제대로 받지도 못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 '불가촉천민'인 '촉탁 기사'들의 서러움
하지만 버스회사에서 가장 서러움을 받는 건 '촉탁 기사'들이다.
촉탁 기사는 60세 정년퇴직한 버스 기사들을 1년 단위 임시계약직으로 채용하는 형태로, 서울시 전체 버스기사 1만6,400여명 가운데 10%인 1,900여명 규모다.
문제는 촉탁 기사가 사고를 낸 뒤 자부담을 하지 않는 등 버스회사의 요구사항을 거부할 경우 재계약이 되지 않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회사 입사에도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촉탁 기사는 "촉탁직은 한 방울 이슬도 안 될 정도로 불안정하다"면서 "회사에 거스르면 재계약이 안 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나"고 반문했다.
이 기사는 "재계약에 실패해 다른 회사에 지원해도 노무·인사 관리자가 이력서에 나와 있는 전 회사에 전화 한 통 하면 절대 합격할 수 없다"면서 "주홍글씨와도 같은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서울시가 각 버스 회사의 노무·인사에 대한 관리를 직접 하지는 않는다"고 전제한 뒤 "다만 자부담을 시킬 경우 버스회사 점수 산정에 불이익을 주는 평가항목을 도입한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