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제주에서는 푸른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을 볼 수 있어 육지와는 다른 계절을 맛볼 수 있습니다. 어제는 기후변화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현직 선생님들과 함께 서귀포에 있는 사계절 푸른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길을 걸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숲의 역할과 그 소중함을 알아보자는 취지의 숲길 걷기였지만 한 겨울에 푸른 숲을 걸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숲길은 몇 년 전 들꽃보기를 시작할 때인 여름철에 까치수영을 맨 처음 봤던 곳이기도 합니다. 햇빛이 잘 드는 길섶에서 특이하게 꽃대를 올린 까치수영은 아직도 특별한 꽃으로 남아 있습니다.
동물의 이름을 빌려 식물에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노루발, 노루귀 등이 있는데 까치수영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까치수영은 다른 이름으로 까치수염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름이 재미있어서 그런지 책마다 서로 다르게 표기하고 있고 사람마다 다르게 부르고 있어 두 가지를 함께 쓰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설명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선 까치수염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꽃 모양이 꼭 까치의 목덜미의 흰 부분을 닮아서 붙여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까치는 날개와 배에 흰 털을 가지고 있지만 목덜미는 온통 까만색입니다. 또 까치는 수염을 가지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까치수염이라는 이름은 조금 모호한 면이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까치수영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설날의 전날을 까치설날이라고 하듯이 까치가 '가짜'라는 뜻이 있고 수영(秀穎)은 '잘 여문 이삭'을 뜻하는 한자어이기 때문에 잘 여문 벼나 수수의 이삭을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작은 꽃들이 풍성하게 모여 피는 까치수영의 꽃은 벼나 수수의 이삭을 닮아 보이기도 합니다. 왠지 까치수영이라는 이름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고 저도 이것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 꽃이 피면 개꼬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개꼬리풀이라 부르기도 하고 구슬 모양의 작은 열매가 달린다고 하여 진주채(珍珠菜)라 하기도 합니다.
육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꽃으로 까치수영과 비슷한 큰까치수영이라는 꽃이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자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육지의 나무들이 제주로 유입되면서 딸려온 것이 일부 지역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두 종류는 서로 비슷하여 꽃에서는 구분이 어렵고 잎이나 줄기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까치수영은 큰까치수영에 비해 잎의 크기도 작고 넓이도 좁은 편입니다. 그리고 까치수영이 줄기나 잎에 잔털이 나 있는 반면에 큰까치수영은 털이 없어 잎 표면은 광택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홍도에 자라는 홍도까치수영, 꽃대가 휘어지지 않고 곧게 서는 진퍼리까치수영을 비롯해서 바닷가에 자라는 갯까치수영 등이 있으며 제주에 자라는 것으로 물가에 자라는 물까치수영, 개체수가 많지 않아 귀한 섬까치수영과 최근 발견된 탐라까치수영이라는 꽃도 있습니다.
까치수영도 예전부터 생활에 활용되었습니다. 어린순은 향이 좋아 나물로 먹기도 하고 잎을 찧어 타박상에 바르기도 했습니다. 전초를 햇볕에 말려 보관했다가 달여 마시면 구충에 효과가 있다고 하고 뿌리도 즙을 내어 먹으면 관절염에도 좋다고 합니다. 요즘은 까치수영이 꽃의 모습이 특이하고 군락을 이루고 피는 특징 때문인지 식물원이나 정원 화단에 관상용으로 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까치수영의 꽃말이 '잠든 별'입니다. 꽃을 자세히 보면 많은 별들이 모여 반짝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낮에는 별이 빛날 수 없기 때문에 잠을 자고 있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꽃말에서 순박한 동심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까치수영의 또 다른 꽃말을 '동심'이라 한 모양입니다. 까치수영은 바닷가 풀밭에서부터 오름의 언저리까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어 정감이 더 가는 꽃입니다. 그리고 유독 까치수영의 꽃에는 많은 나비나 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아름다움 때문에 눈길을 한 번 더 주는 것은 사람이나 곤충이나 매한가지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