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25만명 발길… 미래를 읽다"

Interview -초대 서울도서관 관장 이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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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도서관 하면 '정숙'이라는 문구에 담긴 엄숙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된다. 열람실 책상에 웅크린 채 책을 쏘아보는 입시생이나 고시생들 사이 경쟁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막힐 듯 차갑다. 이 모습에 익숙한 우리에게 결혼식이 열리는 미국 뉴욕공공도서관의 풍경은 자못 낯설다. 이는 '시민의 일상과 밀착된 곳'이라는 도서관의 본 모습에 충실한 사례로 꼽힌다.

옛 서울시청사가 최근 서울도서관으로 거듭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용훈(50) 서울도서관 관장은 '권위'의 울타리를 걷고 '자치'의 디딤돌을 놓았다는 데 이곳의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 옛 시청사가 들어선 때는 1926년. 일제 시대부터 서울의 중심에서 100년 가까이 행정청사로 쓰인 이곳은 문화재(등록문화재 제52호)로도 이름을 올렸다.

옛 청사는 바로 뒤편에 새 청사가 들어서면서 지난달 26일 '서울도서관'이라는 새 간판을 달고 문을 열었다.

개관 한 달을 맞은 25일 현재 서울도서관을 찾은 시민은 모두 25만여 명. 서울의 중심도서관으로서 일단 출발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용훈 관장은 서울도서관이 갖는 남다른 가치가 시민의 관심을 모으는 데 한몫한다고 전했다.

"이런 말이 있죠.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을 찾고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으로 가라.' 서울도서관은 박물관과 도서관의 특징을 모두 지녔어요. 문화재인 건물은 과거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반면, 안에 들어섰을 때 보이는 도서관 풍경은 미래를 보여 주니까요. 통치를 하던 행정청이 자치의 상징인 도서관으로 거듭난 셈이죠."


사실 이 관장이 내세운 서울도서관의 가치는 뜬구름 잡는 공상이 아니다.

30년차 베테랑 사서로서 뚜렷한 철학을 가진 그에게 도서관은 시민이 지식을 쌓고, 서로 배려하는 법을 배우는 공동체 문화의 산실이다.

"서울도서관의 시설은 조금 독특합니다. 다른 공공도서관과 달리 1, 2층을 잇는 벽면 서가로 개방성을 강조했고 시민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휴식 공간에도 공을 들였어요. 개관 뒤 아이들도 참 많이 왔는데, 처음에는 '소란스러우니 조용히 좀 시켜라'는 어른들의 항의가 많았어요. 각자의 방식대로 도서관을 이용하다보니 갈등이 생기는 거죠. 그렇다고 도서관 시설을 다시 조각 조각 나눌 수는 없잖아요. (웃음) 차츰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아이는 어른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보며 배우고, 어른도 아이들처럼 도서관을 편하게 이용하게 되는 거죠. 도서관이 모든 시민에게 열린 곳이라는 공감대가 쌓이면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질 겁니다."

이 관장이 서울도서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개관을 앞둔 5월 서울시 대표도서관 건립추진반장을 맡으면서다.

1982년부터 대학·연구소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한 뒤 한국도서관협회에서 15년 동안 활동하면서 도서관계가 서울도서관에 거는 기대를 익히 아는 그다.

"우리는 보통 도서관하면 자기 책 가져와서 공부하는 곳으로 한계를 그어요. 서울도서관은 우리 사회의 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공간이죠. 도서관은 책으로 시민의 힘을 키우는 곳입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을 읽고 생각하며 주체적인 판단 능력을 끌어올리는 거죠. 민주사회의 도서관은 그런 곳입니다."

도서관 전문가가 참여하면 좋겠다는 서울시 의견에 따라 계약직으로 건립추진반장을 맡아 개관을 준비하던 그는 개방형 직위 공모를 통해 22일자로 첫 서울도서관장에 임명됐다.

관장직을 맡은지 갓 일주일이 지난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관장이기에 앞서 사서라고 했다.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은 아닙니다. (웃음) 도서관이 잘 꾸며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처음 보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어요. 자꾸 가게 되더군요.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것도 보람되겠다는 생각에 대학도 도서관학과를 선택했어요. 서울도서관의 사서가 20명인데, 앞으로 전문 사서 육성에도 힘쓸 겁니다. 사서는 정보와 지식의 생태계인 도서관에서 시민과 책을 이어 주는 연결고리죠. 공공의 이익에 보탬이 되는 봉사자로서 보람을 느끼는 존재인 겁니다. 그런데도 사서를 배치하지 않는 도서관이 참 많아요. 그만큼 시민들도 도서관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셈이죠."

이 관장에게 도서관은 개인이 하기 힘든 일을 사회가 해결해 주는 복지시설이다.

우리가 옷이나 먹거리를 찾기 쉽게 구분하는 것처럼 도서관도 시민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쉽고 빠르게 찾아 쓸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분류해 놓은 공간이라는 것이다.

"도서관이 잘 돼 있는 나라에서는 과학·문화 발전을 가져오는 논문들도 많이 나와요. 세상에서 무엇이든 단 하나만 남겨야 한다면 도서관을 남기겠다는 말도 있죠. 도서관의 지식으로 다시 재건하면 된다는 겁니다. 독서는 '이런 책을 읽겠다'는 자발적인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행위입니다. 도서관이라는 공공의 공간에서 서로 어떤 책을 읽는지 알고 생각을 나눌 수도 있어요. 시민들이 서울도서관에서 이러한 시민 자치의식과 공동체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서울도서관의 실험이 성공해 널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우선 공공재로서 도서관의 가치를 인정받는 데 힘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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