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젠 디지털 유산 고민할 시점"

[디지털 유산 기획 ③]

대한민국에 인터넷이 시작된 지 30년이 흘렀다. 폭발적인 확장을 거듭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인터넷에는 이용자의 흔적들도 기하급수적으로 쌓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이용자가 갑자기 사망할 경우 남긴 흔적들은 어떻게 될까?

이른바 '디지털 유산'에는 유족들도 모르는 내밀한 사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 처리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CBS노컷뉴스는 '디지털 유산'의 바람직한 활용방안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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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상속 서비스 업체인 인트러스테트(http://entrustet.com)는 지난해 한 해에만 전 세계 페이스북 이용자 가운데 178만명이 사망했고 그 증가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추산했다.

이렇게 디지털 유산은 날이 갈수록 증가할 수밖에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이에 대한 법제화는 현재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들은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며 유족이 디지털 유산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정부, 서비스 업체 "아직은 때가 아냐"

그렇다고 법제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만 디지털 유산과 관련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일부 개정안이 세 차례나 발의됐다.


지난 2010년 각각 박대해, 유기준, 김금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의 입법 취지는 포털사이트 등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면책 근거라는 공통점이 있다.

디지털 유산을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현행 법률에서 부담할 수 있는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법안 상정 이후 유족에게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 유산의 범위와 그 권한 등에 대해 활발히 논의가 이뤄졌지만 결론은 법안 폐기였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당시 입법 과정이 상당히 진행됐으며 회기가 끝나 자동폐기된 것이 아니라 포기한 것"이라며 "상속에서 시작했지만 논의가 진행되다 보니 관련법 체계를 다 바꿔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서비스 제공자 측의 움직임도 있었다. 포털 7개사의 연합체인 (사)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지난해 11월 연구결과 보고서를 방통위에 제출했다.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 처리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KISO는 디지털 유산 처리 기준에 관한 권고안까지 만들었지만 결국 '보류' 결정을 내렸다.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유정석 KISO 정책운영실 팀장은 "회원사에 들어오는 디지털 유산 관련 요청은 연간 10건 미만"이라면서 "공론화 과정을 거쳐 방향성이 정해지면 그때 결정을 하자는 방침"이라고 보류 배경을 설명했다.

◈ 죽은 자는 말이 없다…사용자 공론화 절실

결국 아직 디지털 유산에 대한 사용자 차원의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법제화는 시기상조라는 게 입법부와 서비스 제공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디지털 유산을 남기게 될 사용자들은 일단 사망하게 되면 말이 없기 때문에 사용자 차원의 논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언론 보도나 캠페인을 통한 디지털 유산에 대한 사회 이슈화를 통해 사용자 차원에서 그 처리 방안을 고민해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법제에 대한 입법평가 연구를 진행한 가천대학교 법학과 최경진 교수는 "무엇보다 사용자 차원의 공론화가 중요하다"면서 "공론화가 이뤄진 뒤에는 서비스에 가입할 때 상속 여부 등을 미리 확인하는 등 서비스 제공자의 자율규제 속에서 정부가 법적인 효과를 일정부분 지원해주는 체계가 적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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