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꼴 달랑 4글자 썼는데…" 합의금 200만원?

'글꼴 불법 사용' 쇼핑몰 운영자-업체, 법정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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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는 박 모(27,여) 씨는 얼마 전 한 법무법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박 씨가 쇼핑몰 홈페이지를 꾸미기 위해 A사의 글꼴(폰트 파일)을 불법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A사의 의뢰를 받은 법무법인 관계자는 박 씨가 사용한 글꼴이 정식으로 구입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정품 내용 증명서’를 보내라고 했다.

◈ 폰트업체, 변호사 고용 “우리 글꼴 무단 사용…합의금 내놔”

박 씨는 인터넷에서 ‘예쁜 글씨 모음’을 검색했고 '예쁜 글씨체 무료, 댓글 달고 퍼가세요”라는 수십개의 블로그에서 글꼴을 다운 받아 사용했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무료로 다운 받은 파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박 씨에게 폰트 파일 구매와 합의금 200만원을 요구했다.

'쇼핑특가' 단 4글자를 사용한 박 씨는 200만원의 합의금은 너무 과도하다는 생각에 겁이 났지만 합의를 하지 않았다. 결국 저작권사는 김 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 이후에도 법무법인 관계자는 김 씨에게 80만원으로 가격을 조정하며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

글꼴 제작업체나 업체의 의뢰를 받은 법무법인에 합의금을 지불하는 피해 사례가 쇼핑몰 운영, 출판업, 웹 에이전시(인터넷 광고)를 운영하는 개인이나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업체나 법무법인의 과도한 합의금 요구에도 ‘소송 비용을 고려할 때 합의금을 주는 게 낫겠다’는 심정으로 합의금을 지급하거나 100만원 상당의 ‘패키지 폰트’파일을 강제로 구입하게 된다.

지난해 4월 개설된 폰트 피해자 카페 회원은 3,700여명. 이들 대부분 박 씨와 비슷한 피해를 입고 있다.

카페에 올라온 글들 대부분이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다’, ‘고소하겠다’는 법무법인의 위협에 겁을 먹게된다"며 대처방법을 묻고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사용자보호협회 장익준 사무국장은 “폰트 제작업체들의 행태는 일종의 낚시와 같다. 낚싯밥 던졌을 때 무는 고기를 낚는다”며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사용자들 대부분 정품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합의에 응하게 된다”고 말했다.

◈ 업로더(파일 게시자) 방치한 채…‘불법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


인터넷 검색창에 글꼴 이름을 치면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는 수십개의 블로그와 카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블로그들에는 '무료로 다운 받아가라'는 글 외에 불법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만한 글이 없다. 이용자들 대부분 불법이라는 인식을 갖지 못한 채 글꼴을 다운 받게 되는 것이다.

업로더(파일 게시자)들은 그대로 방치하면서 사후 사용자들에게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은 저작권을 보호하려는 본래 목적이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 받은 피해자 등을 대리해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인 구주와(31) 변호사는 “자신들의 저작물인 폰트 프로그램이 인터넷상에 무료로 다운로드 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다운로드를 하도록 내버려 두는 등 저작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다”며 “업체 스스로 저작권 침해를 방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사용자보호협회 한연수 사무총장은 “업로더 위주로 단속을 하면 불법인지 모르고 다운로드 받는 선의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며 “저작권에 대한 국민적 인식전환이 선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소송을 남발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유명 글꼴 제작 업체 관계자는 “업로더들의 활동을 알고 있지만 수많은 포털 사이트와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무료파일들을 찾아내고 고소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올리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다운 받는 사람들 대부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들 위주로 단속을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 저작권 보호 필요성 인정…인식 전환 등 병행돼야

글꼴 제작업체들은 오랜 시간 개발 비용 등을 들여 글꼴을 출시해도 정품 소비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 왔다.

유명 글꼴 제작 업체 관계자는 "무료 다운로드 받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단속하지 않으면 불법 다운로드를 막을 수가 없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서체 하나 만드는데 1~2년 이상의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지만 정품 구매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단속 전에는 연간 매출이 2,000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김현숙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정책연구소장은 “글꼴 제작 업체 같은 경우 중소기업인 경우가 많은데 개발하는 비용을 들인 회사 입장도 이해가 된다”면서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없던 사용자들도 억울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작권자와 사용자 모두 자정을 해야 한다”며 “처벌도 필요하지만 저작권 보호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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