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소속 임은정(38·여·사법연수원 30기) 검사는 지난 22일 검찰 내부 전산망에 '고언(검찰 개혁 논의를 바라보며)'이란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지난달 임 검사는 박정희 유신정권 때 옥고를 치른 박형규 목사의 재심 결심공판에서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날인된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면서 무죄를 구형한 바 있다. 지난해 영화 '도가니'의 개봉에 즈음해서는 자신이 공판을 맡았던 광주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에 대한 소회를 내부망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임 검사는 이번에 올린 글에서 우선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 대해 "우리가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게 아니냐"고 억울한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재심 결정으로 언론이 떠들썩하다. 언론에서 나오는 검찰의 가혹수사 이야기와 검찰을 비난하는 여론에 '에이, 이건 좀…'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글을 시작했다. 이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관련 글을 찾아 읽고, 뉴스와 비교하다 마음이 아렸다"면서 "우리의 인식과 울분이 여론과 괴리되고, 우리가 불신받고 조롱받는 현실에 망연자실하게 된다"고 적었다.
임 검사는 여야 대선주자들의 '검찰 개혁' 공약이 난무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그는 "공수처 등에 대한 검찰의 반대이유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만 국민의 불신과 조롱 앞에 유구무언이 돼버리는 현실"이라며 "이 현실이 국민과 국가에 너무나 불행한 비극이어서 눈물이 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 반응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성찰이 뒤따랐다.
임 검사는 "옛 글에 이르기를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길 만한 짓을 한 뒤에 남이 그를 업신여긴다'고 한다. 우리가 국민을 야속하다 할 수 있겠는가"라며 "나 역시 사건 당사자에게 '뇌물 받았느냐'는 등 황당한 항의를 받고 종종 허탈해 하지만, 칭송받는 것에 참된 무엇이 있듯 비난받는 것에 어찌 이유가 없겠느냐"고 지적했다.
또 "안대희(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대선배님의 '검찰에 차관급 검사장이 왜 그리 많으냐'는 말씀에 여론이 호응하는 것을 보고 더 자괴감을 느낀다"며 "우리가 제 몫을 한다고 국민들이 여겼다면, 아무리 검사 직급이 높아도, 차관급 검사장 자리가 많아도 국민이 높다거나 많다고 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임 검사의 글은 '검찰 자정론'으로 귀결됐다. 그는 "국민의 신뢰를 찾지 못하는 한 외부의 검찰 흔들기는 계속될 것이 자명하다"면서 "더 늦기 전에 내부로 눈을 돌려 원인을 찾고 해결하려는 자정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 검사는 "검찰 개혁 이야기가 나온 게 하루이틀 문제가 아닌데 그에 대한 답을 우리가 국민에게 전혀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며 "수뇌부만 고민하지 말고, 후배들도 짧은 생각이라도 주저없이 토로해 우리의 마음과 뜻을 모으자"고 촉구했다.
이 글에는 동료들의 지지 댓글이 수십건 달린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