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에서 기획자로, 기획자에서 시인으로
“사실 본인의 시집인 <서울 시>를 서비스하는 전자책 유통회사 리디북스에서 서비스 기획을 맡고 있다. 디자이너로 일하다 기획자로 전향한 지는 6개월 정도 됐다.”
단편시집을 서비스하는 리디북스의 시도가 신선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저자가 리디북스의 직원이었다니. 직원으로서 일하다가 직접 회사를 통해 책을 내놓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올해 7월부터 페이스북에 짧은 글들을 올렸다. 그걸 보고 재밌다는 회사 사람들이 많아서 회사 페이지에 일주일에 하나씩 연재하게 됐다. 그러던 중 추석 연휴 즈음에 한 분이 책으로 내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시기에 재밌겠다 싶어서 추석연휴 전날 밤 작가소개랑 표지 디자인을 마쳐 제작팀에 맡기게 된 거다.”
재미로 올리고 재미로 책에 싣기까지 한 시는 그 ‘재미’ 때문에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난해하지도 않고 쓰는 데 길어봐야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그의 말처럼 ‘쉽게 쓰여진 시’지만 너무 가벼워 보이기만 했다면 지금과 같은 반응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요즘 하는 말로 ‘병맛’인데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진짜 시같은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시집이라는 말도 붙이고, ‘~中에서’라는 표현도 넣고, ‘小小쿨’이라는 있지도 않은 출판사 이름을 넣었다. 실제로 도시의 모습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별거 없는 게 서울이다.”
“긴 글을 싫어한다. 길게 쓰는 건 만드는 사람 욕심이지, 보는 사람들은 긴 글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SNS에 퍼지게 된 것도 시가 짧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러모로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예전에 운영하던 블로그엔 긴 글도 썼었는데 글이 길어질수록 무리수도 두게 되고 자꾸만 남을 비판하게 되더라. 글이 짧아지니까 요즘은 그런 게 없어서 좋다.”
“트위터가 동의라면 페이스북은 공감”
글을 처음 공개한 공간이 페이스북이듯, 그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즐긴다. 그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각각 다른 말로 정의했다.
“트위터가 동의라면 페이스북은 공감이다. 트위터에는 아무래도 정치적 의견이 많다 보니 동의하지 않으면 유쾌하게 글을 읽을 수 없게 된다. 반면 페이스북은 정서적으로 공감하거나 공감하지 않더라도 그냥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좀 더 편한 공간이다. 무겁고 지루한 얘기를 싫어하게 되니까 페이스북이 더 재밌어졌다. 앞으로 시집을 더 낸다 해도 어려운 얘기는 담지 않을 것이다.”
“재밌는 걸 너무 좋아한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일상의 사소한 재미들을 중요하게 여긴다. 평소 하는 인터넷에서도 소소한 재미를 찾는다.
“나이가 들수록 사소한 걸 좋아하게 되더라. 사람들은 사소한 걸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사소한 것 속에서도 충분히 감동이나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편시를 쓴다. 포털 사이트의 댓글을 보면 한줄의 글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표현이 얼마든지 많다. 나는 보통의 댓글 형식 글쓰기에 중의적인 표현을 살짝 덧붙일 뿐이다.”
“이 책이 무료라는 게 화가 난다”는 여자친구의 '추천사'도 화제가 됐다.
“공감이라는 건 내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시 한편을 쓰면 공개하기 전에 여자친구에게 검사를 받는다. 주변에서 가장 냉정하게 봐주는 사람이 여자친구다. 무료로 책을 내기로 했을 때 사실 여자친구에게 실제로 많이 혼났다. ‘그래서 너는 끝까지 비전이 없는 것’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무료로 낸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유료였으면 지금과 같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자친구의 타박에도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의 ‘비전’이 궁금했다.
“아직은 마냥 즐겁다. 하지만 만에 하나 돈을 주고 써달라는 제의가 온다면 거절하고 싶다. 막상 돈을 받으면 지금처럼 쓸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공감시집인 만큼 공감을 얻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돈독이 오르지 않는 이상 지금처럼 즐기면서 쓰고 싶다. 두 번째 단편시집을 낼 마음은 있다. 사람들 반응 확인하는 일이 즐겁다. 간혹 ‘애니팡 홍보하려고 돈 받고 쓴 것 아니냐’라는 댓글도 있는데 그냥 웃어넘긴다. 그런 반응마저 신기하고 재밌다.”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고, TV에 나오는 동물을 보면서 혼자 울기도 한다는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시로 ‘다 쓴 치약’을 꼽았다. ‘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이 시의 전문이다. 시인 하상욱은 단 열 글자만으로 다 쓴 치약에 매달려 안간힘을 쓴 경험이 있는 많은 이들을 공감하게 만들었다. 그의 잠재력이야말로 끝이 어딜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