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철수와 훈이와 함께 엠비에 갔다. 그리고 다같이 롤을 했는데 훈이는 솔까말 레알 처음한 것 같았다. 철수는 생각보다 했는데 나한테 개쳐발릴 실력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렇게 개나대는지 모르겠다. 결국 철수와 훈이는 빡쳐서 집에 갔다. 나는 다른 애들과 만나 운동장에 갔다. 애들과 축구를 하는데 어떤 형들이 와서 시합을 하자고 했다. 헐 밸런스가 너무 에바였다. 우리는 개털렸다.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너무 늦게 왔다고 해서 나를 혼냈다. 진심 빡쳐서 방콕했다.'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은어, 비속어, 줄임말 등이 뒤섞여 해독하기가 쉽지 않다.
내용은 PC방에 가서 친구들과 게임을 했는데, 자신의 실력이 다른 친구들보다 낫다는 것이다. 일기에 나온 '엠비(MB)'는 머니방의 약자로 돈을 쓰는 곳인 PC방을 뜻하고 '솔까말'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를 줄인 말이다.
'레알'은 영어의 'real', 즉 정말이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에바'는 초등학생들이 요즘 가장 많이 쓰는 말로 '오버한다'는 의미다.
어떤 말을 강조할 때는 접두어처럼 '개'를 쓴다. 대화에서 줄임말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생파(생일파티), 생선(생일선물), 문상(문화상품권), 뉴발(뉴발란스 운동화), 노페(노스페이스 의류), 노방(노래방)으로 사용하는 식이다.
학생들이 이처럼 은어나 줄임말을 쓰는 이유는 뭘까. 서울 덕수초등학교 6학년 김모(12) 군은 "한 친구가 시작하면 재밌어서 다른 친구들이 따라하게 된다"면서 "어른들은 모르는 단어를 사용하면 우리끼리 더 친숙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경기 안산 학현초등학교 6학년 이 모(12) 양은 "말할 때나 문자, 카톡할 때 빨리 말하고 싶고 귀찮아서 줄임말을 많이 쓴다"고 답했다.
국립국어원의 2011년 청소년 언어실태 전국 조사(전국 6개 권역 경인,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제주의 초등학교 학생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의 97%, 중·고등학생의 100%가 '은어나 유행어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조 모(37·여) 씨는 "아들이 친구들과 전화 통화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영어도 외래어도 아닌 이상한 말을 하고 있어 놀랐다"면서 "애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갑자기 나한테 할 경우 이해가 안돼 정말 당황스럽다"고 털어놨다.
초등학교 교사인 김 모(28·여) 씨도 "반 아이들이 줄임말이나 은어로 친구를 괴롭혔는데, 내가 몰라 지도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언어습관을 바꿀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무조건 은어, 비속어, 줄임말을 쓰지 말라고 강요하기보다 왜 아이들이 그런말을 쓰는지 이해하고, 표준어, 품격있는 언어를 썼을 때 어떤 이점이 있는지를 알려 줘야 한다는 것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문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은어나 비속어에 대응할 만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아이들이 좋은 글과 말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러한 글과 말을 많이 읽고 들어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