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이 다시 한 번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문제작 '남영동 1985'를 들고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남영동 1985년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수기를 바탕으로, 1985년 9월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22일 간 당한 고문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더욱이 개봉 일정도 대선 정국이 휘몰아치는 11월로 예정돼 있다. 최근 '과거사 청산'에 대한 문제가 대선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남영동 1985는 만만찮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신세계 백화점 문화홀에서 열린 남영동 1985 갈라프레젠테이션에서는 개봉 시기과 대선 정국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먼저 정 감독은 "오래전부터 고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부러진 화살 개봉 직전에 김근태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때 우연히 고인의 짧은 수기를 읽고 영화화하면 되겠다 싶었다"고 밝혔다. 이후 별 문제 없이 촬영에 들어갔고, 완성돼 지금 이 시기에 공개하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민감한 개봉 시기에 대해 정 감독은 "대선 전에 개봉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저도 공감을 했고, 대중들도 공감할 것"이라며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 좋겠다. 작품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건 감독으로서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대선 후보들을 초청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도 "반드시 다 초청해야죠. 물론 응해줄지는 모르겠지만"이라며 "어찌됐던 대선 후보들이 다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 화두인 통합과 화해란 테마에 잘 맞는 작품이라 본다"며 "이런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영화에선 고 김근태 고문의 부인이자 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인 인재근 여사도 카메오 출연했다. 물론 쉽게 찾긴 힘들다. 영화 말미에 대통령 주재의 국무회의 때 앉아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정 감독은 "인재근 여사님을 비롯해 몇몇은 간접적으로 출연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고 카메오 출연 배경을 전했다.
이 작품은 부러진 화살과 달리 시종일관 묵직한 기운이 흐른다. 영화 상영 내내 고문 받는 기분이 든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잔혹한 고문의 현장을 들춰냈다. 영화에 출연하기도 한 문성근은 영화를 관람한 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정 감독은 "시나리오 쓸 때 내가 묘사하는 고문이 실제 고문 받았던 사람들처럼 아플수 있을까? 또 관객들이 아파해야 하는데 그렇게 그릴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30년 영화를 했는데 가장 힘들게 찍었고, 후유증도 심한 작품"이라며 "내가 아파한 만큼 관객들도 아파한다면 잘 찍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온갖 모진 고문을 이겨내는 김종태 역은 박원상이 연기했다. 부러진 화살에 이어 또 다시 정 감독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부러진 화살과 달리 이번 작품은 쉽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영화라 하더라도 고문 당하는 모습을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을거라 판단했다.
그는 "촬영 앞두고 감독님께 '생각은 비우고 지치지 않는 체력만 가지고 현장에 가겠습니다'라고 했다"며 "연기지만 고문을 당하는 입장도, 고문을 하는 입장도,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입장도 어느 하나 쉽진 않았다"고 밝혔다.
극 중 고문기술자 이두한 역으로 나오는 이경영은 "저는 고문 내내 즐거웠다"고 말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이어 "고문할 때 적당히 하거나, 상대 배우를 염려해 살살했으면 촬영은 지연됐을 것"이라며 "전기 고문을 제외하곤 거의 사실과 같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속뜻을 전했다. 이에 박원상은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원상은 고문 촬영 중 발생했던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박원상은 "버티다가 정 힘들면 몸을 거세게 흔들겠다는 약속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며 "그런데 막상 몸을 흔들고 있는데 누군가의 손이 슬며시 들어오더니 어깨를 지긋이 누르더라.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모 선배님께 감사드린다"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작품을 하면서 얻은 게 많다"며 "연극 작업을 게을리하면서 많이 떨어졌던 폐활량이 복구됐고, 어려서 물에 빠져 죽을뻔한 기억 때문에 공포가 있는데 그걸 극복하게 됐다"고 유쾌함을 전했다. 이런 박원상에 대해 정 감독은 "박원상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나올 수 없었다. 다른 배우였으면 중간에 도망갔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