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취실엔 야동이… " 웃음과 눈물의 암 투병기 화제

'쿨한 백혈병 환자' 광희씨의 코미디같은 투병기
병원에서 보는 죽음, 부모의 자식 사랑 등 절절히 담아내

암 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극소수의 치명적인 암을 제외하면 암세포는 하루아침에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한 조사에서는 영양실조로 인해 전체 암 환자의 20%가 사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많은 환자가 암이 아니라 굶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다. 『암 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의 저자 최일봉 박사의 이야기다.

육체의 고통이 아닌 두려움이 영혼을 잠식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 세상에 홀로 남은 듯한 고립감이 생명의 기운을 갉아 먹는다. 암과 담대하게 맞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조씨의 백혈병 투병기, 때로는 유쾌하게 가끔은 절절하게…

캡쳐


하지만 자신의 투병 생활을 풀어내면서 다른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이가 있다. 바로 백혈병 환자 조광희 씨(22)다.

조 씨는 포털 사이트 네이트의 판 게시판에 자신의 투병기를 올리면서 웹 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대부분의 포털에서 그의 닉네임 '조백혈병'은 자동 완성어로 등록되어 있을 만큼 인터넷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조 씨의 글이 인기가 많은 것은 일단 재미있기 때문이다. 병동 생활의 이모저모를 세세하게 묘사한 그의 글들은 병원이 낯선 이들에게는 호기심을, 함께 투병 생활을 하는 환우들에게는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항암 치료로 인한 불임의 가능성에 대비하여, 항암제 투여 전에 정자 채취를 하여 정자은행에 보관한다. 과연 정자 채취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조 씨 역시 큰 기대감(?)을 가지고 플라스틱 컵을 받아 채취실로 들어갔다.

여기서 님들이 제일 궁금해 할 것, 방에 들어가면 과연 무엇이 있나. 티비랑 침대가 있음. 티비에서 나오는 건 서양 야동. 하, 백혈병 확진 나왔는데 내가 여기서 이 짓을 해야 하나 하면서 나는 쓸쓸히 정자를 채취함. 그 허무함이란... 인생 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가 채취'를 했다는 조 씨의 글이다. 하지만 그의 글이 항상 이렇게 유쾌하고 가볍지만은 않다. 굶는 자식이 안쓰러워 의사 몰래 과자를 먹이는 보호자, "난 널 절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라고 절박하게 말하는 간호사 등 조 씨의 문장에는 병동의 풍경이 절절하게 녹아 있다.

같이 투병하다 먼저 돌아가신 분의 이름이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순간. 그분과의 이별이 떠오름. 시신을 뒤따라가던 그분 자녀들의 서로 꼭 맞잡은 두 손. 그 친구들이 더 어렸을 때, 아버지의 두 팔을 하나씩 붙잡고 놀이공원을 거닐었을 생각을 하니 맞잡은 두 손이 왜 그렇게 허전해 보이던지, 그 공백은 도대체.

"내 글의 완성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댓글이 하는 것"

조광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조 씨를 만났다. 조 씨는 작년 12월에 항암 치료를 끝내고 현재 통원 치료 중이다. 혈색 좋고 건장한 그에게서 병색의 기운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완치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5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항암 치료가 끝나도 재발 확률이 높다. 심지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조 씨 역시 현재 여전히 요로 결석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호기심이 많고 농담을 좋아하는 그는 영락없는 '요즘 젊은이'다. 복무 중에 발병 사실을 알게 되어 국군병원으로 이송되는 기억을 떠올리며 "(병 덕분에) 유격 훈련에 빠지게 돼서 참 운이 좋았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다.

그에게 병동에서의 생활은 그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반적으로 겪지 못하는 경험이잖아요. 힘든 일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다 보면 고통이 반감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워낙 병동이 폐쇄적이라 할 수 있는 일도 많이 없어요."

작년 4월부터 가볍게 쓰기 시작한 투병기가 점점 호응을 얻으면서 그 역시 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다. 항암 치료 중간의 휴식기를 이용해 과감히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병동에 있는 다른 환자들과 함께 가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기분으로 여행기를 썼는데 자신의 의도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는 조 씨.

하지만 자신의 글에 관심이 쏟아지면서 부담감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몇몇 언론사들의 취재 요청을 거절하기도 했고, 의도와 다르게 투병기가 기사화될까봐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모두 게시판에서 지워버린 적도 있다.

그럼에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조 씨는 "댓글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말을 하면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서 위로를 얻곤 해요. 제 글의 완성은 제가 아니라 댓글이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보면서 용기를 얻지만 그 역시도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며 힘을 낸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보면서 '암=사망선고'라는 통념을 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백혈병이라는 어감이 무겁잖아요. 그런 느낌이 싫어서 일부러 별명도 ‘조백혈병’이라고 정했어요. 투병기도 무겁지 않게 슬랩스틱 코메디같은 느낌으로 쓰고 싶었고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

조 씨는 카페를 나서면서 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외래 진료를 받을 때마다 아직도 병동에 들려 함께 병실 생활을 했던 사람들을 찾는다고. 당사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환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을 잘 아는 조 씨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차피 사람은 죽는 거 아닌가요.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절망만 하다가 삶이 끝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요." 매 순간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치료에 대한 희망이 병마를 극복하는 열쇠라는 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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