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이냐 安이냐…호남 민심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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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중항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호남은 연말 대선에서 정권교체 열망이 여느 지역보다도 높았다.

이에 따라 진작부터 호남지역 선거 구도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간 '2파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둘 중 누가 야권단일후보가 돼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꺾을 수 있을지에 호남의 눈과 귀가 쏠려 있는 것이다.

지난 28일 광주 풍암동 아파트단지에서 만난 60대 후반의 여성은 "호남은 그동안 박해를 하도 많이 받아와서 (상처가) 지워지지 않았다. 나도 광주 사태를 생각하면 살벌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며 "(호남은 민주당이라는 공식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상무지구에서 일하는 금융인 김 모(52) 씨도 "김대중·노무현 이후 우리나라가 거꾸로 가고 있다. 경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서민들은 더 살기 어려워졌다"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과거세력에게 역사를 맡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이어 "특별히 지지하는 후보는 없지만, 야권이 통합돼서 안철수든 문재인이든 야권단일후보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문·안 두 후보가 단일화를 하지 않고 각자 레이스를 펼치면 야권 지지표가 분산돼 결국 박근혜 후보에게 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은 것이다.

상무지구에서 만난 중소기업 대표 박현두(70) 씨는 "야권후보로 한 사람이 나온다고 해도 될동말동 한데 둘이 찢어져서 나가면 안 된다"며 "둘이 통합을 안 하면 박근혜를 절대 못 이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저마다 선호하는 야권단일후보는 달랐다. 아직 정당정치에 대한 희망을 품은 사람들은 문 후보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고, 정치 쇄신을 바라는 사람들은 주로 안 후보를 지지했다.

택시기사 구성호(65) 씨는 "문재인과 안철수 모두 정치 경험이 없긴 하지만, 특히 안 후보는 당과 뿌리가 없으니까 옛날 노무현 대통령이 만날 못해먹겠다는 소리나 해쌓던 것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민주당 후보는 한 사람밖에 없지 않느냐"고 문 후보 지지를 표명했다.

구 씨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안 후보의 아파트 다운계약서와 관련해서도 "미안하다고 해놓고 일문일답도 안 하고 들어가불더라. 성의가 없어 보이고 실망스럽습디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풍암동 아파트단지에 사는 주부 김선미(33) 씨도 "신랑이랑 문재인 후보를 찍을 것"이라며 "민주당이니까 아무래도 그게 가장 큰 이유 같다"고 말했다.

문 후보가 민주당 후보라서가 아니라 개인의 품성 때문에 지지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북구 말바우시장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정찬준(62) 씨는 "문재인은 사람이 괜찮다. 머리도 있고 부정도 안 저질렀고 욕심도 별로 없고 무난하다"며 "안철수는 너무 경험이 없고 고집이 세서 자기가 최고인 줄 알 것 같은데, 문재인은 국민들이 안 좋다고 하면 안 할 사람"이라고 소통을 중시했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안철수 현상'은 안 후보에 대한 지지 흐름으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말바우시장에서 만난 약재상 정복점(여·59) 씨는 "먹고 살기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디 이제 안철수가 되야제. 안철수는 아직 정치에 대해 모르잖아. (정치) 물이 안 묻어서 좋더라"며 "부정부패 없이 깨끗한 정치를 해주실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안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다운계약서 논란도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정 씨는 "사람이 살다보면 한 번씩은 실수하지 않느냐"고 했고, 함께 있던 '야쿠르트아줌마' 김종례(여·53) 씨는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앞으로 잘하면 되제"라고 거들었다.

특히 광주 항쟁을 겪지 않은 대학생을 비롯해 2030세대는 안 후보에 대한 지지성향이 강했다.

전남대 3학년인 김대희(24) 씨는 "우리 세대는 20대인데 무조건 민주당을 찍기보다는 정책과 인물을 보려고 한다"며 "안 후보는 다른 정치인에 비해 새로운 정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IT, 의사 등 여러 경험이 있어서 사회의 전반적인 돌아가는 과정을 잘 알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대통령의 첫 번째 자질로 '도덕성'을 꼽으면서도 "다운계약서 문제는 안 후보가 인정하고 사과한 만큼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는 등 다운계약서 논란을 상쇄할 만큼 안 후보에 대한 신망이 두터웠다.

안 후보가 민주당에 입당해야만 야권단일후보로 지지하겠다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상무지구에서 만난 금융인 김 씨는 "안철수로 단일화를 하려면 입당을 해야 한다"며 "안철수가 무소속으로 나온다고 하면 국민들이 크게 실망할 텐데 안철수가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리라고 보지 않는다"며 "둘 중 누가 되든지 정당으로 통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호남이라고 해서 무조건 민주당을 찍지는 않는다. 민주당이 특별히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의견과 함께 "4·11 총선 과정에서 민주당에 실망해 차라리 새누리당을 찍겠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지만, 야권후보 대세론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박근혜 후보가 호남지역에서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호남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朴vs安, 朴vs文 양자대결 조사에서, 박 후보는 15%-2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9% 안팎의 지지율을 올린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지난 27일 문 후보는 광주·전남 핵심당원 간담회에 참석해 참여정부의 과오에 대해 사과했고, 안 후보는 전남 여수에 있는 처가를 방문하는 등 양측 모두 호남 민심 잡기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대선까지 딱 80일 남은 상황에서 향후 단일화의 균형추는 호남민심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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