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체꽃은 산토끼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북의 높은 산에 자란다고 도감에 쓰고 있지만 제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햇빛이 많은 초원지대에서 자라는 꽃이어서 제주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흔하지 않을 듯합니다. 더욱이 제주에서는 동부지역 나무가 많지 않은 몇몇 오름에서만 자라고 개체수도 많은 편이 아닙니다. 북방계 식물인 솔체꽃이 제주의 오름에서 자라는 것을 두고 피뿌리풀이나 애기우산나물처럼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어떤 경로로 솔체꽃이 제주에 들어왔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초원지대로 이루어진 제주의 동부지역 오름이 북방계 식물이 자라는데 맞는 환경이고 기후가 변하면서 서서히 고립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솔체꽃은 곧게 서서 자랍니다. 키는 보통 어른의 무릎 정도인데 큰 것은 허리까지 오는 것도 있습니다. 깊은 톱니가 있는 뿌리에서 올라온 잎은 꽃이 필 때 없어지고 줄기에 달린 잎은 위로 돌라 갈수록 점점 깊게 갈라져 있습니다. 꽃은 가끔 8월에 피기도 하지만 보통 9월에 시작되어 제주에서는 11월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가을꽃 하면 쑥부쟁이로 대표되는 들국화가 연상됩니다. 그러나 솔체꽃은 그것과는 다른 특이한 꽃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작은 꽃들이 모여 한 송이 큰 꽃처럼 보이게 한 것은 다른 가을꽃들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가장자리의 꽃이 가장 크면서 다섯 갈래로 갈라지고 중심부의 꽃은 비교적 크기가 작으면서 네 갈래로 갈라져 있어 보는 순간 이런 꽃도 있을까 싶습니다.
솔체꽃을 처음 알았을 때 이름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두 가지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하나는 잎이 솔잎처럼 가늘어서 붙여졌다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술이 솔잎을 닮았고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 모습이 가루를 곱게 치거나 곡식의 알갱이를 걸러내는 체의 그물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줄기의 잎은 그렇다 치더라도 뿌리에서 올라온 잎은 가늘게 갈라지지 않기 때문에 잎의 모양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선뜻 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후자의 설명이 조금이나마 설득력 있게 보입니다.
솔체꽃의 속명 Scabiosa는 '옴'이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옴이라는 피부병을 치료하는데 솔체꽃을 썼던 모양입니다. 한방에서도 솔체꽃을 약재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생약명으로 산라복(山蘿蔔)이라 하여 꽃을 약재로 쓰는데 몸속의 열을 내리는데 썼고 위장병, 설사, 두통에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약재 보다는 모습이 특이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꽃 피는 기간도 길어 관상용으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해살이풀이기 때문에 줄기 일부에서만 꽃을 피우고 다음 해에 나머지 줄기에서 새로운 싹이 나고 꽃을 피웁니다. 이런 이유로 솔체꽃을 매년 보려면 씨앗을 채취했다가 다시 뿌려주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산골소년을 사랑했지만 이루지 못하고 슬픔이 깊어 죽어간 요정은 솔체꽃으로 태어났다는 솔체꽃과 관련된 슬픈 전설이 내려옵니다. 이 전설 때문인지 꽃말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솔체꽃의 멋스러움이 높은 가을 하늘과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가을이 깊어갈수록 더할 듯합니다. 올 추석에도 솔체꽃처럼 아름답고 넉넉한 마음으로 모두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