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不死)의 괴물 '불법 다단계'…제2의 거마대학생 나오나

단속 경찰 "불법 다단계는 머리를 잘라도 계속 머리가 자라나는 괴물 같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 마천동 일대에서 집단으로 합숙생활을 하며 불법 다단계 일에 종사하는 대학생들, 이른바 '거마대학생'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며 지난해 사회의 큰 문제로 떠오르자 경찰과 공정위는 대대적인 단속으로 이 일대 '거마대학생'을 대부분 척결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업체 이름을 바꾸고 합숙소 위치만 옮겼을 뿐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사회 초년생들을 속여 또 다른 '거마대학생'을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지난해 '거마대학생' 적발 이후...

지난해 불법 다단계 단속에 나섰던 서울 송파경찰서는 송파구 거여동, 마천동 일대에만 5,000여명의 '거마대학생'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중 3,600여명의 거마대학생이 A업체의 판매원이었다.

이렇듯 A업체는 가장 많은 '거마대학생'을 거느리며 대학생 다단계 업체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이 업체 대표 김모(38)씨 등 4명은 지난해 불법 다단계 회사를 운영하며 대학생들을 강제로 합숙시키고 대출 및 송금 업무를 강요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약 1년동안 200억원 이상 부당이득을 취했던 이 업체는 대표가 구속되면서 겉으로는 와해된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업체는 업체명, 사업장, 합숙소만 바꿔 불법 다단계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CBS취재결과 확인됐다.

A업체는 대표가 지난해 말 구속되자 마자 다른 업체명을 내걸고 강남구 삼성동에 사업장을 차렸다.

이곳은 여전히 '거마대학생'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사회초년생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 '거마대학생'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지방대생인 김유진(여. 22. 가명)씨는 올해 초부터 약 5개월 동안 이름만 바뀐 A업체 판매원에게 속아 1,000만원이나 빚을 진채 도망쳐야만 했다.

유진씨는 친척오빠로부터 "전문 연구기관에 취업 자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짐까지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이후 오빠한테 속은 걸 알았지만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먼저 팀장이라는 사람이 유진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외부와 연락을 차단했다.

유진씨는 팀장과 성남시에 있는 빌라에서 여자 7명과 합숙을 했다. 화장실을 갈 때도 샤워를 할 때도 팀장은 유진씨를 혼자두지 않았고 끊임없이 감시했다. 물품 소개와 돈을 버는 사업에 대한 설명이 3일 내내 반복됐다.

팀장은 부모님을 위해 돈을 벌려면 대출을 받아 사업을 시작하라고 했다. 연 이자 39%나 되는 제2금융권에서 1,000만원을 대출한다는 것이 찜찜했지만 옆에서 금방 갚을 수 있다고 부추겼다.

회사에서 물류뿐 아니라 통신다단계도 같이 한다면서 휴대전화도 강제로 구입하게 했다. 휴대전화 3년 약정으로 기계값 93만 9천원에 기본료 7만 2천원 요금을 의무적으로 써야한다고 했다.

부담스러워 몇 번이고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5명이 넘는 상급자들이 돌아가면서 설득하고 회유하는 통에 유진씨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 부모님 생각에 용기를 낸 유진씨는 몰래 업체에서 빠져나온 뒤 지난 5월 경찰서에 이같은 사실을 모조리 신고했다.

이에 경찰은 이 업체를 지난 해 단속된 A업체가 전환해 설립한 회사로 보고 현재 내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A업체가 10년전부터 업체명만 5번 바꿔 20대 초반의 사회초년생들을 속여 불법 다단계를 해왔다고 보고 있다.

서울 중앙지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구속된 A업체 대표 김씨의 형은 2001년에도 2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들을 대상으로 일주일 동안 합숙하며 불법 다단계 일을 시켜 기소된 바 있다.

이후 김씨의 형제, 매형 등은 대표이사를 돌아가며 맡으며 업체명을 바꿨다. 하지만 판매방식과 20대 사회 초년생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똑같았다.

지난해 송파서 다단계 특별수사팀에서 근무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대표나 상위 직급 판매원들이 구속되더라도 하부 조직은 그대로 남아 다시 불법 다단계 구조를 이어가기 때문에 계속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불법 다단계는 머리를 잘라도 계속 머리가 자라나는 괴물 같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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