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획책한 민주주의에 대한 말살이다. 홍사덕 전 의원은 "박근혜에게 5·16을 묻는 것은 세종대왕에게 이성계를 묻는 것과 같다"고 한 적도 있다.
최근 정치권의 역사인식에 관한 논란은 박근혜 후보와 측근들의 5·16 및 유신에 대한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황우여 대표가 박후보를 영국의 빅토리아와 엘리자베스 여왕에 비유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그 중 하나다.
유신에 대한 미화는 역사적 관점의 하나라고 보아넘길 수 없는 그릇된 역사의식 그 자체다. 유신은 역사를 후퇴시켰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참담하게 일그러지고, 민주주의를 위해 저항한 사람들은 억압받았으며, 국민들은 탈정치화됐다.
경제성장이 민주주의에 대한 폭압과 독재 정권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더구나 유신 때문에 중화학공업의 발전이 가능했다는 사회과학적 인과관계는 어떠한 경우에도 성립하지 않는다.
유신과는 대척점에 있던 함세웅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 부장을 "우리 모두의 은인"이라고 평가한 것도 균형잡힌 시각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행동이 유신의 암울한 장막을 걷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이도 역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극단적 폭력이었다는 점에서 합법화되거나 정당화 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치적 목적이 지고(至高)한 것이라 해도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우회한다면 역사는 폭력과 불법이 합리화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화될 수 없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는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했다는 점에서 법치주의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적법하지 않은 방법이 이후 신군부의 정치개입의 빌미를 제공했고, 또 다른 폭력에 의한 독재의 연장을 가져왔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도전받고 있다.
민주주의는 사회구성원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역사적 성찰이 없이는 유지·발전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대선을 100여일 앞둔 상황에서, 사회적 양극화와 갈등을 치유하고 진정한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사회적인 인식의 극단을 배제하고 역사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절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치인과 국민에게 주어진 역사적 당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