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바쁜데…" 투표도 양극화

비정규직 등 500만명 "주권행사 상황 못된다"

"2교대 근무를 하면 13시간 일을 해요. 왔다갔다 두 시간씩 빼면 거의 17시간을 회사에 박혀 있는 건데, 눈뜨고 나가기 바쁜데 잠자는 시간 줄여서 투표를 한다구요? 내 몸 성한게 중요하지 투표가 뭐 중요해요." 대구의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비정규 계약직으로 일하는 최현우(32·가명)씨는 지난 4월 총선 때도 투표를 못했다.

사실 투표를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까짓 일당 포기하고 투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명이 빠지면 공장의 다른 사람이 괴롭다. 그래서 하루 쉬는 것은커녕 중간에 외출도 신청할 수 없다.

"내가 쉬면 다른 동료가 내 설비까지 맡아야 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보면 서로 서먹서먹해지고, 또 설비들이 똑바로 안돌아가고 생산량이 줄어들잖아요. 그러면 위에 올라가서 욕을 얻어먹고 오거든요. 아파도 사실 얘기하기가 좀 그런데 투표하러가겠다는 말이 나올 수가 없죠."

◈ "투표하고 싶어도 못해" 최소 500만 명

국민의 뜻을 대표할 선량을 뽑는 '민주주의의 축제' 선거는 최 씨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한국정치학회와 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6월 비정규직 노동자 8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 중 64.1%가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답변했다.


이 가운데 '회사에서 외출을 허가하지 않았다'는 경우가 42.7%, '투표 참여로 자리를 비우면 임금이 감액된다'는 응답도 26.8%를 차지했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둔 주말, 민주노총에는 '회사가 투표시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제보가 783건이나 접수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과 일용직 노동자의 규모를 감안할때 최소 500만 명 이상이 투표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행 선거법과 근로기준법은 각 사업장이 근로자에게 투표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어겨도 처벌규정은 없다.

강제력이 없다보니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나 마찬가지다.

상당수 근로자들은 현재 관공서에만 적용되는 유급 공휴일을 일반 사기업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 사기업도 유급휴일 적용 등 개선 필요

민주노총이 지난 4월 총선 직후 투표 기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간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60%이상의 노동자들이 법정 공휴일을 지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투표시간을 저녁 9시 정도까지 연장하고, 유권자 정보를 공유해 선거구에 구애받지 않고 유권자가 편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도록 하는 방안 등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 개인 사정에 따라 선거일 전에 미리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제'(Early Voting) 도입도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선관위는 지난 2009년 7월 재보궐 선거의 투표율 하락현상을 막기 위해 사전투표제 도입의견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사전투표제도를 도입하면 투표의 시간적, 장소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 유권자의 투표 편의와 선거권 행사 기회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다"며 "이미 미국과 일본, 호주 등에서 실시하고 있어 도입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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