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민들레 의료생협의 첫 느낌은 '병원'보다는 '동네 사랑방'에 가까웠다. 병원에 들어가기 싫어 발버둥치는 아이도,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낯선 소독약 냄새도 없었다. 대신 병원 한가운데 마련된 테이블에서는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었고 진료실에서는 정겨운 대화가 흘러나왔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민들레 의료생협의 조세종 이사장과의 만남이 더욱 기대됐던 이유다. [편집자 주]
민들레 의료생협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이렇다. 그냥 생협도 생소한데 의료생협은 더욱 어렵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에 대해 조세종 이사장은 "자신과 가족, 이웃의 건강한 삶을 위해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병원"이라고 소개했다. 일부 의료기관에서 문제가 된 과잉진료나 과도한 항생제 사용 등을 억제하고 보다 믿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주민들이 조합원이 돼 출자를 하고, 병원 운영에도 직접 참여하는 구조다.
"개인 영리목적이 아니다보니 병원이 많은 이윤을 내야 된다는 부담에서도 자유롭죠. 자연히 불필요한 진료를 하지 않아도 되고 주민들도 병원이 수익을 내면 환자에게 혜택이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조합원들은 아프지 않을 때도 의료생협을 찾는다. 일상생활에서도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모임을 갖는다. 의사와 환자 사이도 같은 '조합원'이다보니 거리감이 없다는 게 조 이사장의 설명이다.
◈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병원"
뜻이 맞는 의사와 동료들이 모여 대덕구 법동에 의료생협을 처음 연 것이 지난 2002년. 하지만 초반에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민 분들도 많이 생소해하시고, 합류한 의료진들마저 처음에는 '어디 이상한 종교단체 아닌가'라고 생각했었다고 나중에 웃으며 말하더라고요."
발기인 300명에서 출발한 조합원 수는 10년 만에 2,800가구로 불어났다. 출자는 조합원들이 하지만 의료생협은 일반 병원과 마찬가지로 시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조 이사장은 "조합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곳 아니냐는 오해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서구 둔산동에 의원과 한의원, 치과를 갖춘 2호점을 새로 열었다. 법동에는 노인 환자가 많았는데, 둔산동에는 아이를 데려오는 젊은 엄마가 많다고 했다. "항생제나 주사제를 적게 쓴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신 것 같다"고 조 이사장은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지난해 하반기 약제평가에서도 민들레 의료생협의 항생제 사용 비율은 전국(45.35%)를 크게 밑도는 8% 대로 나타났다.
그런가하면 때때로 '어르신 휠체어 끌고 한 바퀴 돌고 오기', '노래 같이 부르기'와 같은 이색 처방이 나오기도 한다. 노인층의 경우 몸도 몸이지만 외로움이라는 마음의 병이 깊게 자리함을 알기 때문이다.
"늘 보던 분이니까, 그 분이 어떤 상황이고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뭔지를 알고 처방할 수 있는 '평생 주치의'가 되는 거죠."
◈ '대통령상' 수상…그리고 새로운 10년
얼마 전 민들레 의료생협에는 큰 경사가 있었다. 투명한 운영과 사회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대전지역 사회적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 "지역주민과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알아주신 것 같다"며 조 이사장도 싱글벙글이다.
그렇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생협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무늬만' 의료생협인 사이비 병원들에 대한 걱정도 있다. 그만큼 지역주민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 이사장은 말했다.
"올해가 민들레 의료생협이 시작된 지 딱 10년이 되는 햅니다. 그 어떤 사업보다 중요한 것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곳에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병원이 있다는 걸 알리고 인정받고 싶습니다. 한 번 오셔서 따뜻하고 커피 한 잔 드시고 가세요."
◈ 조세종 민들레 의료생협 이사장은
1965년 출생. 소공동체 <둘이나셋>을 10년 동안 운영했고 월평공원갑천지키기 주민대책위원회 대표,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초대 사무국장 등을 지냈다. 민들레 의료생협 초대 조직교육위원장과 총회준비위원장 등을 거쳐 이사장으로 재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