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빠진 유통업계, "'악덕 소비자'와 전쟁중"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 급증…법적·제도적 장치 마련 시급

불황의 골이 깊어지며 긴축재정에 나선 대한민국 유통업계가 악덕 소비자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일부 악덕 소비자로 불리는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가 해가 거듭할수록 급증하고 있어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A사는 악의적인 주문취소, 반품 행위 등을 일삼는 블랙컨슈머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별도로 블랙컨슈머 리스트를 관리하고 있진 않지만 주문상품 반품 시 제품 누락·훼손을 3회 이상 한 고객에게 '주문거절'이라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또다른 유통업체인 B사도 블랙컨슈머의 유형과 정도를 점수화해 일정 점수가 넘는 블랙컨슈머에 대해 형사고발 등을 검토하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다.

백화점은 매장 안에 설치된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 수를 늘리고 있고, 한 업체는 자사의 제품에 대한 악성 루머가 급속히 확산되자 신문광고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해명하고 인터넷 음해 행위에 법적으로 단호히 대처할 것을 천명했다.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소비자 권리를 악용해 기업들을 갈취하는 블랙컨슈머들의 행태를 분석하고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메뉴얼까지 만드는 등 강력한 대응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침체라는 수렁에 빠져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블랙컨슈머란 '악성'을 뜻하는 블랙과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를 합성한 신조어로, 구매한 상품의 하자를 문제 삼아 기업을 상대로 과도한 피해보상금을 요구하거나 거짓으로 피해를 본 것처럼 꾸며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을 지칭한다.

물론 피해를 봤다면 구제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블랙컨슈머로 분류되는 소비자는 오로지 자신의 물질적 이득을 위해 기업을 갈취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 블랙컨슈머 유형, '공갈·협박형 업무방해형 뻗대기형' 등


CBS노컷뉴스가 익명을 요구한 국내 유통업체들과 연계해 지난 1년간 블랙컨슈머의 유형을 분석한 결과, ▲공갈·협박형 ▲업무방해형 ▲뻗대기형 ▲솔직담백형 ▲전문가형 등으로 나타났다. 이들 수법은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공갈·협박형'은 언론사 기자와 고위층 공무원, 장관 등이 지인이라고 언급하며 으름장을 놓는 타입이다. 아는 기자를 통해 공론화하거나, 고위층을 통해 업무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최근에는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활성화로 해당 사실을 트위터에 올리겠다고 협박하는 사례도 상당수다. 인터넷을 통한 조직화 움직임도 포착됐다. 카페와 블로그, 트위터 등을 통해서 동조자를 모으거나 지인을 설득한 뒤 상당수의 피해자가 제품 결함으로 피해를 입은 것처럼 꾸며 보상금을 나눠가지는 식이다.

'업무방해형'은 지속적으로 전화를 하거나, 의도적으로 통화를 길게 유도하며 업무를 방해하는 유형이다. 심지어 지인들을 동원해 회사의 모든 내선번호를 돌려가며 전화를 해 업무를 마비시키는 경우도 있다.

업무방해형이 진화한 것이 '뻗대기형'인데 이는 일단 해당 회사 사무실로 들어와 고성을 지르거나 해당 업체가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줄때까지 사무실에서 나가지 않는다. 급기야 사무실에서 용변을 보거나 저지하는 직원이 성추행했다며 고발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사례도 있다.

'솔직담백형'은 받길 원하는 보상 금액 등 자신이 원하는 바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요구하는 타입이다. 차라리 업체들은 이런 경우가 해결하기 쉬운 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외에도 이름과 인적사항을 바꿔가며 소액의 현금을 얻어내 일종의 돈벌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전문가형' 등도 있었다.

실제 전문가형의 사례를 수집해보니, 한 홈쇼핑에서는 이름·주소·전화번호 등 인적사항을 바꿔가며 무려 1년에 걸쳐 10여 차례나 보상금을 타낸 경우도 있었고, 삼성·LG 등을 통해서만 3년동안 8차례 이상 보상금을 요구한 사례도 있었다.

◈ 블랙컨슈머의 횡포, 선의의 소비자에게 피해로…대책마련 시급

이처럼 블랙컨슈머 사례는 갈수록 지능화되고 조직화되고 있다. 또 최근들어 블랙컨슈머의 연령대가 청소년과 20대 초반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고객민원 처리 전문가들은 제품에 불만을 제기하는 1,000여명 가운데 적어도 2~3명은 블랙컨슈머로 보고 있다.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한 관계자는 "최근 간판 메뉴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벌레꼬리 부분이 나왔다는 민원이 잇따라 발생해 확인해보니 모두 동일한 10대 청소년이 꾸민 일이었다"고 귀띔했다.

기업의 입장에선 소수로 인해 가장 소중한 자산인 기업의 대외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알게 모르게 금품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기업이 이들 블랙컨슈머들의 입을 막기 위해 쓰는 돈은 제품 가격에 반영돼 대다수의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셈이다. 또 블랙컨슈머가 지능화될수록 기업들의 보상조건은 더욱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어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블랙컨슈머란 소비자가 기업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선량한 소비자를 골탕 먹이는 존재가 되고 있다.

유통 업계에서는 보험업계와 정부가 보험사기범의 인적사항 데이터베이스(DB)를 연동하는 것과 같은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고 있다.

물론, 블랙컨슈머의 정의 자체가 불명확하고, 소수의 악덕 소비자로 인해 대다수의 선량한 소비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해 전체 고객 정보를 업체들이 공유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블랙컨슈머의 횡포는 결국 선의의 소비자에게 피해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사회적 제도장치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기업소비자전문가협회 강성경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블랙컨슈머 관련해서 기업들과 소비자간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블랙컨슈머에 대해 소비자의 정의가 분명할 필요가 있다"며 "소비자 정의가 분명하지 않았을 때 분쟁이 발생했을 때 애매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통 기업은 소비자와 분쟁이 발생했을 때 보상기준을 말들 하는데 이에 대한 기준을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고시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적용되는데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형성돼 있는 기준을 가지고 사회적 공감대를 먼저 형성하고 소비자들에게 인식을 시켜주고 기업들도 그러한 기준들을 정확하고 투명하게 적용할 수 있는 문화적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블랙컨슈머가 양산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과 소비자 간의 보상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예 부재하기 때문"이라며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져야 블랙컨슈머 발생을 근절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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