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녕과 덕칠, 1인 2역을 맡은 주지훈은 이번 작품으로 첫 사극과 코미디를 경험했다. 또 변희봉, 박영규, 백윤식, 김수로, 임원희 등 베테랑 배우들이 찰진 코믹을 빚어내고 있다. 노컷뉴스 신진아 황성운 이명진 기자가 함께 영화를 관람한 뒤 이야기를 나눴다.
황성운 영화를 말하기 앞서 8월 8일이 기다려진다. 이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나는 왕이로소이다', 비슷한 장르의 영화 두 편이 동시에 개봉된다. 관객들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무척 궁금하다. 특히 두 작품의 만듬새가 엇비슷해 어느 한쪽의 우세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는왕'이 더 웃겼다.
신진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관객평이 좋다길래 기대도가 높은 상황에서 봤고 나는왕은 개인적으로 '이장과 군수', '선생 김봉두' 등 장규성 감독의 코미디가 나와 잘 맞지 않아서 기대도가 낮은 상황에서 봤다. 전작은 기대만큼은 아니었고 후자는 기대보다 재밌었다. 그래 난 박쥐다.
이명진 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좀 더 재밌었다. 나는왕도 재밌었지만 결말이 정해져 있다 보니 중후반부터 다소 긴장감이 덜했다. 이미 종영된 SBS '뿌리깊은 나무'(이하 뿌나)를 보고 조금은 무거울 것 같았던 조선시대 세종 이야기를 아주 쾌활하고 명쾌하게 풀어낸 점은 장점이다.
신진아 위대한 성군 세종에 대한 인간적인 접근이 흥미롭다. 특히 뿌나가 재위 당시의 모습을 그렸다면 나는왕은 젊은시절인 충녕대군을 그렸다.
이명진 세종이 실제로도 그렇게 책만 읽고 왕위에는 관심이 없었나?
신진아 굉장히 나약하고 소심했던 인물로 알려져있고 장규성 감독 또한 그런 충녕대군이 어떻게 장남인 양념대군이 폐위되고 불과 3개월만에 왕위에 올랐는지,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성군이 됐는지 궁금해서 그 3개월간의 과정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워서 이른바 조선판 왕자와 거지로 만들었다.
황성운 보통 성군의 이야기면 진지하게 접근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유머와 코미디를 섞어 기존 사극과 확실한 차별화를 뒀다. 왕이 뻘소리하는 신하에게 이단옆차기를 하다니. 코미디가 장기인 장규성 감독이 장르만 사극을 빌어왔다. 그래서 코믹사극에 충실하며, 시시 때때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신진아 오프닝 시퀀스부터 '상당히 웃기는' 코믹 사극의 탄생을 예고한다. TV나 영화에서 흔히 보던 왕과 중신이 정사를 나누는 장면에서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연출된다. 이준익 감독의 사극코미디가 역사를 좀 알아야 더 재밌다면 나는왕은 잘 몰라도 보편적으로 웃긴다.
황성운 웃음의 코드 또한 다양하다. 노비가 된 충녕이 '응가'를 한 뒤 세자였을 때처럼 주변의 도움을 받아 뒷처리를 하려다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나 다양한 몸개그를 이용한 웃음 등 일차원적인 방식의 웃음이 곳곳에 포진돼 있다. 또 도입부의 시퀸스처럼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화장실 유머부터 고차원적인 웃음까지 골고루 들어 있다.
신진아 네가 영화 보는 내내 웃은 걸 나는 알고 있다. 물론 나도 웃겼다. 특히 세자빈 역의 이미도는 캐스팅만으로도 대박이다. 이미도가 이하늬의 외모를 논하다니까! 그녀의 말대로 그 시절에는 외거풀의 이미도가 개구리마냥 동그란 눈의 이하늬보다 더 미녀였지 않겠나.
이명진 노비 주지훈이 이하늬와 한방에 있는 걸보고 화가나 등불에 날라차기할 때는 배꼽을 잡았다. 마치 '건축학개론'에 출연했던 조정석과 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는 세자빈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왔다.
황성운 박영규도 오랜만에 자신의 전공을 제대로 살린 것 같아서 반갑더라. 왕으로의 위엄은 온데간데 없고, 호통에 이단 옆차기를 날리는 태종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만나보기 힘들것 같다. 장영실 역의 임형준도 눈에 가더라. 좀 더 비중이 있었으면 꽤나 재밌을 법한 캐릭터였는데 제대로 살지 못해 아쉽더라.
신진아 주지훈은 1인 2역을 제법 능청스럽게 했다. 노비 덕칠일 때는 너무 나사가 빠진 듯 바보스럽기도 했지만. 장장 120신을 찍었다는데 이게 보통 영화 2편 분량에 해당한다고.
황성운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나오는 것 같더라. 결과적으로 4년 만의 복귀 합격점을 주고 싶다. 덕칠과 충녕, 서로 다른 신분의 차이를 뚜렷하게 표현했고, 각각의 캐릭터에 따른 특징도 잘 잡아 냈다.
이명진 주지훈이 짝눈이잖나. 그 영향인지 무언가 덜떨어진 노비(덕칠)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깨우친 세종(충녕)의 '눈빛 연기!'로 바뀔 때 진짜 그럴싸해보였다. 감탄했다.
신진아 충녕이 노비로 고생하면서 성군이 갖춰야할 덕목을 하나둘씩 깨닫게 되는 과정이 좀 더 잘 직조됐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황성운 충녕이 무언가를 깨우치는 장면들이 너무 스치듯 흘러갔다. 그러다보니 그렇게도 왕이 되기 싫었던 충녕이 결국 각성했을 때 그 순간에 전해지는 감동의 크기가 조금 약하지 않나.
이명진 게다가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보며 각성하는 장면들이 조금은 평범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점도 흥미를 떨어뜨렸다.
황성운 그래도 영화보는 동안에는 즐겁다. 코믹사극이란 장르에 충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