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고교 1학년 이모 양은 입학사정관제 입학에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 서울 대치동 P학원 경시대회 준비반을 찾았다.
이 양은 이미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 과목당 한 달에 40~50만 원 하는 수학, 과학 단과반에 다니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경시대회 성적이 필요하다는 충고에 또 다른 학원을 알아보고 있다.
뙤약볕 아래에서 무거운 책가방을 멘 학생들 수십 명이 이 학원 교실을 드나들고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입학사정관제, 자기주도학습이 답이다'란 전단지를 돌리던 또 다른 학원 교실에서도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십여 명의 학생이 구슬땀을 흘리며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온 한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대학갈 때는 입학사정관제나 수시에서 인원을 더 뽑는다고 해 미리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대치동과 목동 등 학원가에서는 경쟁적으로 어학점수나 경시대회 경력 등 '기본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입학사정관전형에서 사교육을 유발하는 외국어공인시험 성적이나 교외수상실적을 지원자격에 포함시키지 않도록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대학 현장에서는 '스펙'이 일정부분 평가요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 사립대 입학사정관은 "토익 성적을 내는 학생들이 간혹 있고 만일 자기소개서나 생활기록부에서도 자신의 영어실력에 대해 일관성있게 설명했다면 고려를 안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학부모와 학생들은 '스펙'을 쌓아두면 대학진학에 좀더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다.
학원들은 학부모 등의 심리를 이용해 입학사정관제 대비반을 만들어 학생들 유치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인터넷에서도 입학사정관제 포트폴리오나 자기주도학습 학원, 면접, 논술을 대비해 주는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 스펙 열풍에 웃음짓는 사교육…유명 컨설턴트는 회당 100만 원 받기도
대치동 M학원에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문의하자 "22만 원을 내고 학원내 코칭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성을 점쳐봐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입학사정관제 지원여부에 대한 가능성을 먼저 평가받는 것이 중요한 만큼 사전에 돈을 내고 상담을 받으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원들이 이처럼 사전 테스트 명목으로 돈을 받거나 입학사정관제 대비 논술, 면접비용으로 1회 10~20만 원을 받고 있다.
유명 컨설턴트는 입학사정관제 상담 등의 명목으로 한번에 100만 원 이상을 받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와 학생들은 불안감때문에 사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고교 3학년 전혜진(18, 女) 양은 "입학사정관제의 선발기준이 명료하지 않아 위험부담이 크다"면서 "꼭 붙고 싶다면 사교육에 기댈 수 밖에 없는 환경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 위승연(19, 女)양은 "같은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 중 대부분이 주변에서 자기소개서를 대필해주고 면접준비도 학원가서 했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도 '스펙'과 관련한 사교육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한 학생이 "내 스펙 좀 봐달라"며 글을 올리면 다른 학생들은 "영어만 조금 더 학원에 다녀보라"든지 "봉사점수는 충분하니 다른 이력을 더 쌓아보라"며 댓글을 달았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김승현 정책실장은 "공인인증시험이나 경시대회 등 전통적인 스펙은 물론 컨설팅이나 포트폴리오 관련 사교육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전까지는 수능-내신-논술이 학생들에게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렸다. 입학사정관제는 여기에 영어성적이나 공인인증 시험까지 더해져 '죽음의 오각형'이라 불린다.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수능을 외면하고 전적으로 여기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 더 늘어나고 결국 사교육 시장만 더 커지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는 학업성적 뿐 아니라 잠재 가능성을 보고 학생을 선발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사교육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심화되는 측면이 있어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