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을 외면하는 대기업이 골목 상권까지 진입하면서 사라진 것은 명물 빵집과 더불어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추억이었다.
손님으로 가득했던 홀은 어두컴컴한 가운데 집기류가 모두 치워지고 덩그러니 빈 공간만 남았다.
길을 오가던 일부 시민들은 수십 년 동안 굳건히 지켰던 뉴욕제과의 휑한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가던 길을 멈췄다.
이들은 어두컴컴한 쇼윈도우에 가까이 다가가 텅 빈 홀을 멍한 바라보기도 하고, 못내 아쉬운 듯 마지막 남은 간판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남기기도 했다.
쇼윈도우 안을 한참 동안이나 유심히 바라봤던 회사원 남 모(42)씨의 표정도 굳어있었다.
남 씨는 "1991년 대학교 1학년 때 선배와 뉴욕제과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뒤 21년 동안 '강남역에서 만나자'는 무조건 뉴욕제과 앞이었다"며 "갑자기 없어진 것을 보게 돼 깜짝 놀랐다"며 못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인근에서 26년 동안 살았다는 정혜인(30·여) 씨에게 뉴욕제과는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남겨진 곳이었다.
정 씨는 "유치원에 다닐 때 울면서 투정을 부릴 때 어머니가 사다 주셨던 게 뉴욕제과 마들렌이었다"면서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마들렌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자리엔 제일모직의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 ‘에잇세컨즈’가 들어선다. 에잇세컨드는 리모델링을 거친 뒤 이 건물의 1~4층에 오는 8~9월쯤 문을 열 계획이다.
민 모(31·여)씨는 리치몬드 과자점이 사라진 자리를 볼 때마다 그 자리를 차지한 대기업이 야속하다고 했다.
민 씨는 "어린 시절 생일 때마다 아버지께서 리치몬드 홍대점에서 케이크를 사다주셨고 대학교 때는 남자친구와 함께 자주 들러 슈크림을 즐겨 먹었다"면서 "리치몬드 홍대점이 사라진다고 들었을 때 충격이 생각보다 컸다"고 말했다.
민 씨는 대기업이 차지한 건물을 바라보며 "유년시절의 리치몬드가 그립다"며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
조 모(30·여) 씨도 리치몬드 슈크림에 각별한 추억이 있다고 했다.
조 씨는 "대학 초년 시절인 2003년 친구의 생일 날 리치몬드 과자점에서 파는 슈크림을 나이만큼 사서 즉석 생일케이크를 만들어 파티를 했던 소중한 기억이 있다"며 회상에 젖었다.
조 씨는 "물론 아직 성산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홍대지점에 쌓인 추억은 모조리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지난 1979년부터 이화여대 후문을 지켰던 빵집 '이화당'. 33㎡(약 10평) 남짓한 이화당은 연세대·이화여대 학생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직원들이 단골인 유서 깊은 빵집이다.
이런 이화당 바로 옆에 파리바게뜨가 생긴 것은 지난 1월. 이화당 주인 박성은(74) 노인의 근심은 이후에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다.
박 노인는 "단골들이 있어 큰 걱정은 하지 않지만 우리가 900원에 파는 걸 800원에 파는 등 공격적으로 가격경쟁을 하고 있다"며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박 노인의 걱정만큼 이화당 단골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7살 아들과 손을 잡고 이화당을 찾은 김 모(30·여)씨는 "우리 아들이 입맛이 까다로운지 다른 프랜차이즈 빵집의 빵은 안 먹고 이곳 빵만 먹는다"면서 "이 아이가 나중에 크면 이화당 빵집의 맛을 추억할 텐데 그 맛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