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노 前대통령 마지막 밤, 물끄러미 보면서 '더 할 말 없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하루 11번 방문객을 맞은 적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실이 가장 힘이 세다, 강하다”고 강조
-야속하기까지도 한데... 마음 놓고 울어보지도 못했다
-노 전대통령, 방문객과 사진찍을 때 사진 잘나오도록 햇볕보고 찍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2년 5월 21일 (월)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노무현재단 김경수 봉하사업본부장


(노무현 전 대통령 육성) “어릴 때는 끊임없이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희망이 없어져버렸어. 내가 알고 모르고 이런 수준이라는 것은... 다 내 불찰이야. 나는 봉하산 같은 존재야. 산맥이 없어. 이 봉하산이 큰 산맥에, 연결되어 있는 산맥이 아무 것도 없고 딱 홀로 서 있는, 돌출되어 있는 산이야.”“대충 먹고 살 수는 있나?”“예, 뭐 와이프가 일단 학교 교사니까요.”“그래? 제일 절박한 것이 밥그릇이 없어지는 것이거든. 자존심 때문에 말하기를 어려워하고. 그런 사정들도 좀 고려해서 문제를... 혼자 버틸 수 있다면 좀 버티고...”

▶정관용> 예, 어제 공개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육성이었습니다. 김경수 마지막 비서관이지요. 지금 봉하사업본부장. 경남 CBS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경수> 예,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정관용> 방금 같이 들은 녹음파일이 언제 녹음된 거예요?

▷김경수> 이번에 공개된 것이 이제 이틀인데요. 하루는 4월 22일, 2009년 4월 22일이니까 이제 검찰 소환 직전이고요. 그 다음은 5월 19일에 녹음된 겁니다.

▶정관용> 5월 19일이 마지막 녹음된 파일이로군요?

▷김경수>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때 우리 김경수 본부장도 함께 계셨어요?

▷김경수> 예, 두 번 다 배석을 했었습니다.

▶정관용> 5월 19일 녹음은 어떤 회의였습니까?

▷김경수> 5월 19일은 이제 대통령께서 그전에 봉하에 내려오신 뒤에 진보의 미래, 국가와 정부의 역할,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책을 하나 써보자, 해서 참여정부에 있었던 참모들하고 편집회의 같은 걸 구성해서 이제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꼬박꼬박 회의를 했었습니다. 그 회의가 이제 마지막까지 쭉 이어졌었는데, 5월 19일은 그때 참석했던 이제 전 비서관들, 참모들을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이제는 그만 좀 손을 놓아야겠다, 이라고 이야기하시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입니다.

▶정관용> 그러니까 진보의 미래라고 하는 책 저술을 위한 회의였는데, 책을 그러면 포기하기로 한 건가요, 그때?

▷김경수> 대통령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하기를 어렵다고 포기를 하셨고요. 대통령님 서거 이후에 그때 참여했던 참모들하고 그 다음에 지금 미래발전연구원이라고 이제 연구소를 만들어서 그 연구원에서 대통령님의 원고를 중심으로 해서... 그때까지 집필을 위해서 대통령님께서 직접 써놓으신 원고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마지막 유고를 중심으로 해서 <진보의 미래>라는 책을 발간을 했었습니다.

▶정관용> 노 전 대통령이 5월 19일날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 라고 하실 때 어떤 심경의 변화 같은 게 있어서 그랬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경수> 5월 19일 당일의 심경의 변화, 이런 거라기보다는요, 그러니까 2008년 12월에 방문객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나오겠다, 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들어가셨는데, 그 이후로 검찰과 언론, 특히 현 정부의 압박이 시작된 거잖아요? 그래서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저희들보다 훨씬 강하게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 의지를 가지고 대응을 하셨는데, 4월 검찰 소환조사 이후에 오히려 검찰의 조사보다는, 검찰의 조사를 받고 나서부터는 사건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뭐 워낙 진실과 사실이 명백하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오히려 더 가지고 계셨는데,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너무나 힘들게 압박과 핍박을 받고. 또 단지 검찰과 국세청, 이런 권력기관으로부터의 압박뿐만이 아니고 정치적으로 대통령님과 함께 했던 분들이 더 이상 미래가 없는 상황, 그런 상황이 되면서 아무래도 그런 부분들이 좀 견디기 힘드셨던 것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정관용> 벌써 3년이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김경수> 예.

▶정관용> 올해는 어떤 행사들을 지금 준비하고 계세요? 뭐 이미 진행되고 있는 행사도 있습니까?

▷김경수> 3년이라는 게 보니까 3년 탈상이라고도 하고 그러는데요. 결국은 살아있는 사람들한테 그 슬픔과 상처, 고인을 보낸 슬픔과 상처가 아무는데 걸리는 시간이 한 3년 정도 걸리는 것이 아닌가. 지내보니까 좀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이번 3주년의 경우에는 그런 슬픔과 상처가 아문 자리에 뭔가 새로운 희망과 다짐을 채워보자, 이렇게 해서 행사들을 쭉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5월 한달을 추모의 달로 정해놓고 5월 1일부터 서울에서는 각종 전시회나 심포지엄, 그 다음에 대통령님의 미공개 사진 공개도 하고. 이번에 이제 팟캐스트에서 공개를 한 것도, 어떤 마지막까지 대통령님께서 손에 잡고 계셨던 고민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런 걸 다시 한번 우리가 확인하면서 대통령님의 고민에 이어서 우리가 뭘 해나가야 될 것인가, 그런 것을 좀 차분히 챙겨보자, 이런 취지로 공개를 하게 된 건데요. 그래서 이번 5월 한달 동안의 추모행사의 주제가 ‘노무현이 꿈꾼 나라’입니다. 그래서 각 10개 시도에서 추모행사가 쭉 이어지고 전국적으로는 이제 기초단체에서는 45개 시군구에서 각종 추모 문화제나 전시회, 심포지엄 이런 게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관용> 내일모레, 3주기 되는 날은 아마 본행사가 있을 것 같은데요?

▷김경수> 예, 일단 그 전에 이제 내일 저녁에요, 22일 저녁 7시에 여기 경남 창원에서 경남 지역의 추모 문화제, 경남 MBC 홀에서 있을 예정이고요. 일종의 전야제 성격이다,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고. 이 자리에서는 최초로 문재인, 김두관. 문재인 이사장과 김두관 도지사 두 분이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행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일 행사를 마치고 나면 23일이 대통령님 공식 서거일이고, 공식 추도식이 있는 날인데, 그날 오후 2시에 봉하마을에서 공식 추도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정관용> 아, 봉하마을 오후 2시. 우리 김경수 본부장은 노 전 대통령하고 언제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하셨어요?

▷김경수> 인연이라고 이야기하면 좀 애매하긴 한데요. 제가 이제 국회에서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당시에 대통령님은 원외, 원외 시절입니다. 그래서 이제 지방자치 실무연구소 하고 계실 때인데, 오며가며 이래저래 만나기는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일을 같이 하게 된 건 2002년도에 대선 캠프에, 제가 6월에 합류를 했습니다. 당시에 이제 대통령님 지지도가 제일 많이 떨어져 있을 때. 그때 지방선거 마치고. 원래는 그 전에 연초에 합류를 하기로 했다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제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를 마치고 합류하게 되어서 그때부터 같이 일을 했습니다.

▶정관용> 그리고 대통령 되신 후에 바로 청와대로 같이 가셨지요?

▷김경수> 예, 선대위 하고 나서 인수위 갔다가, 그리고 인수위에서 이제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으로 갔었습니다.

▶정관용> 국정상황실?

▷김경수> 예, 1년 정도 국정상황실 행정관으로 근무를 했었고요. 1년 뒤에 2004년 5월이었는데요, 대통령께서 이제 3월에 탄핵을 당하시고, 그리고 5월에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에 복귀하시는 날, 그날 1부속실 행정관으로 다시... 1부속실이 대통령님 바로 옆에서 이제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인데...

▶정관용> 그렇지요.

▷김경수> 1부속실로 가서 그때부터 이제 대통령님 곁에서, 바로 곁에서 함께 도와드리고 보좌를 했었습니다.

▶정관용> 또 퇴임 후에 봉하마을에 같이 가자, 해서 같이 가신 것 아닙니까?

▷김경수> 사실 1부속실 행정관으로 갈 때부터 아, 내가 1부속실로 가게 되면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계속 같이 하게 되겠구나, 이런 좀 예감이 있었고요.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면 기꺼이 대통령님과 함께 일을 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칠 때쯤 대통령님께서 어떤 공보와 여러 가지 이제 대통령님의 기록정리 작업, 이런 걸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 같이 가자, 라고 해서 봉하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정관용> 가족들도 함께 다?

▷김경수> 예.

▶정관용> 가셔서 뭐 청와대 있을 때보다는 훨씬 좀 편안한 마음으로 계셨을 것 같아요, 봉하마을에서 처음에?

▷김경수> 예, 2008년 한해였는데요. 대통령님과 함께 봉하마을 생활을 했던 것이. 뭐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몸은 고달프고 마음은 따뜻하고 여유 있는 생활,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요. 예를 들면, 몸이 고달픈 건 워낙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오시니까, 그걸 맞는 일이 제일 크고 많았고. 하루에 11번씩 나가시기도 했으니까.

그 다음에 이제 친환경 농사를 마을 주민들과,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서 해야 되는데, 실제 같이 내려갔던 비서진들이 농사에 ㄴ자도 모르는, 그래서, 새벽같이 나가서 이제 농사일 배우고, 낮에는 방문객 맞고. 또 와보니까 농촌마을이 아, 이게 엄청 피폐해져 있고, 쓰레기로 완전히 뒤덮여 있는 그런 현실이라, 그래서 마을 청소하면서 마을 가꾸기. 그래서 저녁 먹고 이제 집에 들어가면 밤 9시 뉴스를 못 보고 자는... (웃음) 자기가 일쑤였습니다.

▶정관용> 뭐 대통령 비서관 하시던 분들이 농사꾼에다가 청소부까지 다 하시게 되었었군요?

▷김경수>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정관용> 그렇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김경수> 예.

▶정관용> 그리고 3년 전 바로 그날. 기억나시지요?

▷김경수> 예.

▶정관용> 그날 아침에 노 전 대통령 못 만나셨지요?

▷김경수> 예, 그 전날 이제 봉하 사저에서 대통령님 뵙고 퇴근을 했었고요. 그리고 새벽에 이제 경호실로부터는 문용욱 비서관. 당시에 문용욱 비서관이 같이 근무했던 비서관인데, 문용욱 비서관이 먼저 경호실의 전화를 받고, 저는 문용욱 비서관으로부터 새벽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정관용> 그 전날 마지막 뵈었을 때 뭐 좀 이상한 느낌 같은 것 없으셨어요?

▷김경수> 제가 이제 대통령님 이번에 육성을 공개한 팟캐스트 녹음할 때도 그 말씀을 잠깐 드렸는데, 실제로 저희들은, 저희 비서진들은 대통령께서 그런 결심을 하실 거다, 하는 걸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던...

그런데 그게 오히려 좀 대통령님께 죄송하고... 저희들로서는 통탄할 일인데. 그 전날도 대통령께서 이제, 대통령께서 담배를 좋아하셨는데, 끊어보려고도 여러 번 노력을 하시고. 그래서 이제 그 노력의 일환으로 담배를 직접 가지고 계시지 않고 꼭 우리한테, 비서실에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맡겨서 담배 생각이 나면 비서실로 나오셔가지고 담배 한 대 주시게, 하고 이제 가지고 가셔서 피시고 하셨는데, 그날도 오후 늦게 이제 담배를 가지러 비서실로 나오셔서 대화를 나눴던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정관용> 어떤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날?

▷김경수> 그때가 이제 검찰이 4월 30일에 검찰조사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5월 22일이었으니까, 그 전날. 근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계속 언론에만 이런저런 의혹을 흘리고, 그러면서 대통령님을 여전히 모욕 주고, 주변 사람들 힘들게 하고. 가족들까지 계속 사법처리를 할 것처럼 만들고 하는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 와중에 지금 현재 이제 검찰이 어떻게 사건을 진행하고 있다, 라고 이제 변호인들로부터 저한테 이제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어오면 그걸 제가 대통령님께 보고도 드리고.

▶정관용> 상황보고?

▷김경수> 예, 그랬는데, 그날 뭐 특별하게 보고드릴 것은 없었고요. 그래서 이제 좀 일상적으로 별 일이 없는 상황,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 대통령께서 어쨌든 말씀을 들으시고 물끄러미 보시면서 더 할 말 없나, 이러고 이제 물어보셨어요. 그리고는 이제 담배를 가지고 들어가신 거지요, 서재로.

▶정관용> 그런데 아무튼 아무런 낌새 눈치 채신 것은 없었고?

▷김경수> 저희들이 이제 둔감했던 거지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이제 사건과 관련해서는 변호인들하고 재판을 어떻게... 어차피 이건 재판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검찰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님은 전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행위를 대통령의 행위로 몰아서 기소를, 구속기소냐, 뭐 불구속기소냐, 이런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점이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기소가 되면 재판으로 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재판을 어떤 식으로 받을 건지, 이런 것을 논의도 하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과정에서 대통령님은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워낙 이게 부분은 사실이 가장 힘이 세다, 강하다. 왜냐하면 저쪽에서 아무리 혐의를 만들어도, 그쪽에서 혐의를 만들어서 가지고 오는 증거는 사실과 진실로서 다 밝혀낼 수 있다...

▶정관용> 있다?

▷김경수> 라고. 예, 그게 아마 법조계에 계신 분들한테는 무슨 격언 같은 건가 봅니다. 그래서 조사도 받아보니까 그쪽이 가지고 있는 증거라고 하는 게, 또는 쭉 그 혐의내용이라고 하는 게, 아무래도 이게 만들어내다 보니까, 대통령과의 관련성을. 허점도 많고.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되게 자신 있어 하셨거든요.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그래서 오히려 재판을 이제 서울 가서 받으시고 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준비를 할까, 저희들은 이제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때라...

▶정관용> 그렇군요.

▷김경수> 설마 대통령님께서 그렇게, 그런 결심을 하실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거지요.

▶정관용> 그러다가 그 새벽에 그 소식 접하시고 처음에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김경수> 어떤 생각이 아니고 그냥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이 안 났던 거지요. 잠시 대통령께서 이제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고 하셨으니까 무조건 빨리 병원으로 가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얼른 챙겨입고 밖으로 나가서 병원으로 가다가 중간에 퍼뜩 드는 생각이 대통령께서 뛰어내리셨으면 뭔가를 분명히 남기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문용욱 비서관에게 병원이 아니라 사저로 갔다가 가겠다고. 사저로 가서 대통령님께서 혹시 글을 남기시거나 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고 가겠다고. 그랬더니 바로 이제 사저에 마침 다른, 박은아 비서관이라고 다른 비서관 한 분이 사저에 그 시간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은아 비서관에게 혹시 그런 게 있는지 먼저 찾아보라고 연락을 하고 제가 사저에 갔더니 마침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대통령님 유서를 찾아놓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출력해서 병원으로... 부산대... 양산병원으로 그때는 또 옮기셨는데, 양산으로 바로 달려갔었습니다.

▶정관용> 자, 지금 이제 3년이 되었는데, 노 전 대통령한테 만약 한 말씀 하실 수 있다면, 지금 뭐라고 말씀하시겠어요?

▷김경수> 음... 뭐 때로는 좀 서운하기도 하고요. 야속하기까지도 할 때도 있고 한데, 이제는 우리가 대통령님을 좀 놓아드려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대통령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그 이야기를 이제는 해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정관용> 가깝게 모셨던 분들일수록 더 야속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지요?

▷김경수> 왜 안 그렇겠습니까. 계셨으면... 싶을 때가 언뜻 언뜻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요. 오히려 이제 서거 당시에는 문재인 실장님, 이제 문재인 이사장이나 또는 저나 문용욱 비서관, 비서들은 대통령님 장례를 치러내야 되고, 영결식을 해야 되고, 묘역에 안장을 해야 되고. 이런 일들 때문에 실제로 제대로 한번 마음 놓고 울어보지를 못했었습니다.

▶정관용> 경황이 없어서?

▷김경수> 예, 그랬다가 그게 이제 그 이후에 생활을 하면서 갑자기 전혀 뜻밖의 상황인데 막 울컥울컥 대통령님 생각이 나면서 이제 그런 일들이 가끔... 울컥병이라고 우리는 그러는데, 그런 경우도 가끔 생기고 그러더라고요.

▶정관용>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마지막 비서관으로서 우리 김경수 본부장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어떤 거예요?

▷김경수> 아무래도 이제 재임 중의 모습은 대통령님도 당시에 국정 워낙 힘들게... 여러 가지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의 공격 속에서, 특히나 보수 언론의 공격 속에서 힘들게 국정을 수행하셨기 때문에,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오히려 이제 봉하에 내려오신 뒤의 모습들이 아무래도 제일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래서 특히 봉하에서 대통령님께서 제일 즐거워하실 때가 봉하에 이제 손님들이 찾아오시면... 이제 방문객들하고는 대화를 하시고, 방문객들에게는 인사하고 대화하고, 마을이나 이런 데를 설명해드리고, 그런 것 이외에 특별히 더 해드릴 것이 없어서 미안해하시면서 하신 게 이제 방문객들이 많지 않으면, 직접 방문객 속으로 내려가셔서 가족 단위로 사진을 다 찍어주셨어요. 방문한 기념사진이 될 수 있도록.

그런데 이것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이 잘 나와야 된다고, 꼭 햇볕을 마주보고 사진을 찍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봉하가 아무래도 시골이니까 햇볕이 대단히 강한 곳인데, 그렇게 한 일주일 방문객들하고 사진 찍고 나니까 얼굴이 새카맣게 타시더라고요. 그럴 때 하여간, 방문객들과 함께 사진 찍고 그런 시간들을 대통령님도 미안해하시면서도 좋아하셨고. 뭐 그것밖에 해드릴 게 없어서. 그리고 이제 그런 방문객들 이외에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인사들이나 서울에서, 멀리에서 손님들이 오시잖아요? 그러면 봉하산 산책을 참 좋아하셨어요, 그분들과 함께. 등산화 신고. 그분들에게도 미리 오시기 전에 꼭 등산화를 신고 오시라고...

▶정관용> 가지고 와라?

▷김경수> 예, 그래서 캐주얼 차림에 등산을 가볍게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와라, 그래서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봉하산을 쭉 등산을 하셨는데, 등산을 하시면서 봉하산의 여러 가지 이제 유례라든지 마을에 얽힌 전설, 이런 것을 쭉 설명도 해주시고.

▶정관용> 해설가가 되는군요.

▷김경수> 예, 문화해설사가 되는 거지요. 그리고 나무, 풀, 꽃, 이런 자연, 생태에 대해서 대단히 해박하셨어요. 그래 가지고, 예를 들면 봉하 같은 경우에 이제 갈대, 억새, 참억새, 이런 비슷하게 생긴 습지 식물들이 많은데, 그게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구분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그걸 다 구분해내세요?

▷김경수> 그걸 일일이 어떻게 다른지를 쭉 설명을 해주십니다.

▶정관용> 그런데 원래 그렇게 자연 식생에 대해서 잘 아셨던 거예요, 아니면 봉하 가서 공부를 하신 거예요?

▷김경수> 원래 많이 아시더라고요. 시골 출신이셔서도 그렇고, 그 다음에 실제 대통령님의 스타일이 그런 이제 자신이 궁금한 부분이 생기면 그 궁금한 영역을 이게 소위 우리가 판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자신이 거기에 대해서 자신이 생길 때까지, 그러니까 아, 이 정도까지는 내가 해내야지, 할 때까지는 뭐, 방식은 그렇습니다. 일단 책을 산다. 책을, 관련된 책을 쭉 사와가지고...

▶정관용> 계속 파요?

▷김경수> 책을 독파를 합니다. 그리고 그 책을 본 내용을 실제 적용을 해봅니다. 적용해보고, 그걸 가지고 쭉 자기 걸로 만드는데, 이렇게 뭐 자연 생태는 괜찮은데, 컴퓨터 같은 경우도 그런 식으로. 일단 책을 사서 공부를 하시고...


▶정관용> 그래서 컴퓨터 공부하다가 프로그램까지 직접 만드셨다면서요?

▷김경수> 예, 프로그램 만드는 건 좋은데 중간에 컴퓨터를 사서 그걸 다 뜯어보시는 바람에... 컴퓨터가 이제 그게 뜯어보면 다시 맞추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이제 고장 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컴퓨터 전문가에다가 나중에는 이제 프로그램을 직접, 컴퓨터로서 할 수 있는... 이런 거를 한번 컴퓨터로 좀 꼭 해봤으면 좋겠다...

▶정관용> 그렇지요.

▷김경수> 그걸 프로그램으로 직접 만드시기도 하고. 그런 스타일이셔 가지고 그래서 아마 자연 생태에 대해서도 본인이 이제, 대통령이 되시기 전에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서 좀 전문가 수준으로 알고 계시더라고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혹시 비서진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무슨 별명이나 애칭 같은 것 없었어요?

▷김경수> 대통령님에 대한 별명은... 유일하게 딱 하나 있었던 거지요. 하나... 아, 두 개네요. 선거 때 노사모가 만들어지면서는 노짱이었고. 그리고 비서들 사이에서는 대통령님을 호칭할 때 그러니까 대통령님께는 대통령님이라고 했지만, 우리끼리는 대통령님을 지칭할 때 대장이라고 그랬습니다.

▶정관용> 대장?

▷김경수> 예.

▶정관용> 뭐 재미있는 별명 같은 건 없네요?

▷김경수> 그러게 말입니다. (웃음)

▶정관용> 알겠습니다. 지난 총선에 그런데 떨어지셔 가지고.

▷김경수> 예, 그리 되었습니다.

▶정관용> 좀 면목이 없으셨겠어요, 노 전 대통령님한테?

▷김경수> 대통령님께는 뭐 면목도 없고... 면목이 없는 걸 떠나서 우리가 이제 김해가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고, 고향이라는 이유만이 아니라 김해라는 곳이 전부터 이제 부산경남지역이 한나라당, 당시 한나라당이 1당, 거의 싹쓸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싹쓸이 선거판에서도 야당 당선자를 내는, 그런 좀 민주주의의 보루 같은 곳이었는데...

▶정관용> 그런데 못해서?

▷김경수> 예, 그걸 지켜내지 못한 거지요.

▶정관용> 다음에 또 나가실 거지요?

▷김경수> 뭐 김해를 지키는 일에는 저는 뭐 시한은 없다고 봅니다. 어떻게 지켜내느냐는 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고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말씀 들을게요. 고맙습니다.

▷김경수> 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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