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지난 3월에 난초과 식물인 보춘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새우난초가 난초과 식물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앞으로 새우난초를 시작으로 가을에 방울난초까지 난초과 식물들이 계속해서 제주의 숲속을 지킬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난초과 식물은 대부분 제주도에 자생한다고 말할 정도로 제주는 야생란의 천국입니다. 이것은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화산지형인 곶자왈 때문입니다. 곶자왈의 숲속은 미기후를 만들어 일정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시켜 줍니다. 이런 환경은 야생란이 자라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새우난초는 제주도를 비롯해서 남서해안 일대의 일부 섬 지역 숲속에 자생합니다. 최근에는 기온이 따듯해서인지 육지의 남부지방에서도 발견된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4월이 끝나갈 무렵부터 제주에서 시작된 꽃은 서서히 북상하여 5월까지 계속됩니다. 새우난초 종류는 세계적으로 약 200여종이 있다고 하며 우리나라는 새우난초 외에 최근 발견된 신안새우난초, 섬새우난초가 있고 제주에 노란 꽃을 피우는 금새우난초, 7월에 피는 여름새우난초가 등이 있습니다.
새우난초는 키가 30~50cm까지 자라고 붉은빛이 도는 갈색의 꽃받침잎을 터전삼아 줄기 위에 입술 모양의 흰색이나 적자색 꽃이 8~15송이 달립니다. 아랫입술 꽃잎은 다시 세 갈래로 나누어지고 가운데 조각은 다시 두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꽃밥은 암술대 끝에 붙어있고 열매는 익으면 밑으로 쳐집니다. 이름은 땅속줄기인 위구경의 모습이 새우를 닮은 데서 유래했다고 하기도 하고 꽃모양이 마치 웅크린 새우등을 닮은 데서 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위구경이나 꽃의 모습이 새우를 닮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꽃 이름에 바다생물을 이용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새우난초의 학명이 Calanthe discolor입니다. 속명 Calanthe는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이라 하고 종소명 discolor는 두가지 색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새우난초는 종소명처럼 두 가지 색깔이 결합되면서 붉은색, 노랑색, 녹색 등 다양하고 화려한 꽃색깔을 보여줍니다. 이런 색깔 때문에 별도의 종으로 나누어 큰새우난초, 푸른새우난초, 붉은새우난초 등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생지역이 넓지 않고 그에 따른 희귀성 때문에 식물애호가들에게 난초과 식물 특히 야생에서 자라는 새우난초는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는 들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새우난초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품위 있어 보이고 고고한 느낌이 있어 좋은 새우난초를 누구나 한번쯤 집에서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혼자 야생란을 즐기려는 생각이 자생지에서 새우난초를 점점 사라지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또 최근 자연과 함께 여가를 즐기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흐름이 되어버린 숲길조성도 새우난초를 사라지게 하는 한 원이 되고 있습니다. 제주의 숲으로 가면 밟힐 정도로 많았던 새우난초가 3~4년 사이에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있어 아쉬움이 큽니다. 아름다운 숲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야 뭐라 할 수는 없지만 희귀식물의 보존에 대한 고민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들꽃은 야생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기 때문입니다.
봄이 깊었습니다. 여름날 왕성한 활동을 준비하려는 듯 제주의 숲도 짙은 초록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숲의 색깔이나 그 속에 피어나는 들꽃들의 색깔은 자연이 의도하는 미세한 변화의 빛입니다. 그 빛의 변화는 숲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가끔씩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향수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지나간 시절의 추억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들꽃을 따라서 일 년을 보냈던 시간들은 늘 그립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순간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