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 폭이 적은데다 중고 시장에 자리를 내주는 경·소형차보다, 한 대를 팔아도 큰 이윤이 남는 고급 신차에 눈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는 않다. 고급 수입차의 판매가 점차 늘면서 시장의 '파이'를 빼앗기고 있는 탓이다.
국내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고급차 시장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생산 단계서부터 가격을 낮추려는 출혈 경쟁이 장기적으로는 자동차산업에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아차는 K9이 기존 수입 대형차의 수요를 빠르게 끌어올 것이라고 자신한다.
현대차도 신형 싼타페의 경쟁 상대로 아우디 Q5 등 수입 SUV를 지목했다.
현대·기아차가 고급 수입차와의 경쟁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는 뭘까. 국내 완성차 업체 5곳인 현대차·기아차·한국지엠·쌍용차·르노삼성의 지난달 전체 내수 판매 실적은 11만 8000여 대. 이는 전월보다 2%,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7.3% 감소한 수치다.
현대차의 경우 그랜저, 제네시스, 에쿠스 등 준대형·대형차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11.2% 줄었고 투싼ix, 싼타페 등 SUV도 20.9%나 감소했다.
반면 지난달 수입차의 신규등록 대수는 전달보다 0.2%,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30%나 증가한 1만 668대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배기량 2000cc 이상 차량은 5302대가 팔려 40.7%의 비중을 차지했다.
수입차 브랜드에 고급차 시장을 내주고 있다는 국내 업체들의 위기감이 커질 만도 하다. 중고차 시장의 성장도 완성차 업체들이 고급차 생산으로 눈을 돌리는데 한 몫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850여 만 대. 연간 150만 대가 생산되는 것에 비춰볼 때 올해 2000만 대를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부 학자들은 국내 도로 여건상 자동차 시장의 포화 상태를 2300만 대로 본다.
신차 시장보다는 중고차 시장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기계자동차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중고차 시장에서는 연간 330만여 대가 거래되는데, 이는 신차 시장의 2.2배 규모"라며 "기술 발달로 차량의 수명이 크게 늘어난데다, 경기침체 장기화로 신차 시장이 주춤하는 대신 중고차 시장이 크는 추세"라고 말했다.
소형 신차를 샀던 소비자가 차를 바꿀 때 같은 값이면 동급의 새 차보다는 5년 된 한 단계 높은 사양의 중형·준대형 중고차를 산다는 것이다.
중고차 시장이 소형·준중형 등을, 신차 시장이 고급 대형차를 담당하는 식으로 시장이 양분되는 것이다.
■ "안정적인 사후관리 신경써야"
업체들이 대형차 시장에 목을 매는 이유는 큰 폭의 마진 때문이다.
이호근 교수는 "자동차는 대형으로 갈수록 마진율이 높아진다"며 "경·소형차의 경우 광고료에 이것저것 더하면 이익을 거의 볼 수 없는데도 회사 이미지, 국가정책 등에 따라 생산하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출시되는 최첨단 사양의 고급차는 원가 가운데 전자부품의 비중이 40~50%에 달한다.
전자부품의 부가가치가 높은데다, 납품 단가를 매년 5%가량씩 떨어뜨려 조달하니 마진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완성차 업체들은 협력사에서 차량의 작업을 80% 이상 끝내고 들여와 나머지를 조립하는 수준에 머문다"며 "협력사의 인건비는 본사의 80% 수준인데, 그 임금 차 역시 마진이 된다"고 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원가 절감으로 고급차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이 같은 방식은 장기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훈 서울YMCA 자동차안전센터 소장은 "수입차 브랜드들은 최근 정비공장을 계속 확대하는 등 기술력뿐 아니라 사후 관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며 "국내 업체가 고급 신차 판매에 열을 올리는 만큼 첨단 부품의 안정적인 확보·수리 체계 구축 등 사후 관리에도 신경쓰는지는 점검해 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업체가 고급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현재 따로따로 운영되는 판매 전략, 품질 관리, 사후 서비스 등을 효과적으로 통합 지휘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