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송 : FM 98.1 (18:00~20:00)■ 방송일 : 2012년 5월 1일 (화) 오후 7시■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 연 : 민주통합당 은수미 당선자
▶정관용>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당선자, 은수미 당선자,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은수미> 예, 안녕하세요?
▶정관용> 우선 축하드리고요.
▷은수미> 감사합니다.
▶정관용> 사실은 이 축하는 지금이나 뭐 4월 11일 총선날이 아니라 비례대표 번호 발표하는 날 이미 받았을 거예요, 그렇지요?
▷은수미> 예, 많이 받았습니다.
▶정관용> 3번이니까.
▷은수미> 깜짝 놀랐어요.
▶정관용> 3번이 떨어질 리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은수미> 예. (웃음)
▶정관용> 언제 처음 영입 제안을 받았어요?
▷은수미> 한, 그러니까 4일, 5일쯤 전, 그러니까 발표가 3월 20일 정도 나왔으니까 3월 16일, 17일 경에 제안을 받은 거지요.
▶정관용> 어디로부터? 누구로부터?
▷은수미> 우선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정관용> 누가요?
▷은수미> 공천심사위원 분 중에 한 분이 이런, 공천심사위원회 결정으로 당에 영입 제안을 했다.
▶정관용> 결정으로?
▷은수미> 예, 그래서 아마 당에서 받아들여지신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러면 당에서 직접 영입 제안을 하러 갈테니 고사하지 말라, 이런 말씀을 주셨어요.
▶정관용> 사전에 무슨 의향 타진 이런 것 등등이 전혀 없었고?
▷은수미> 전혀 없었습니다.
▶정관용> 없는 상태에서 공심위가 그냥 결정을 했다?
▷은수미> 예.
▶정관용> 그래서요?
▷은수미> 그래서 의원님 한 분이 오셨더라고요. 그러니까 한명숙 대표님께서 그걸 받으셨고, 의원님 한 분을 보내셔서 당장에 결정을 하라고 말씀하셔가지고 그 자리에서, 한 서너 시간만 시간을 달라. 그러니까 제가 좀 흔들렸던 거지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졌는데 제 마음이 흔들렸어요. 그래서 아주 급하게 저를 많이 알고 있고, 혹은 같이 연구를 했던 그런 지인들하고, 지인들 한 6분하고 가족분들한테 연락을 드리고 의논했습니다. 아주 급하게.
▶정관용> 예, 전화로?
▷은수미> 예,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반대를 안 하시는 거예요, 지인들이. 그래서 순리인 것 같냐고 물어, 여쭤보니까 다들 맞는 것 같다. 운명은 이렇게 다가드는 것이고 맞닥뜨리는 게 맞지 않느냐, 라고 해서 그냥...
▶정관용> 서너 시간 만에 결론을?
▷은수미> 예.
▶정관용> 본인이, 본인이 우선 할 의사가 있었군요, 그러니까?
▷은수미> 정말, 정말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단 한번도. 그런데 지인들께서 그렇게 저한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미 정부 정책을 입안하거나 설계하는 것들을 꽤 해왔었고요. 그러면서 정당이나...
▶정관용> 노동연구원에 계셨지요?
▷은수미> 그렇지요. 노동연구원이...
▶정관용> 노동연구원이...?
▷은수미> 예, 노동연구원이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다 보니까 주요 노동정책 입안을 하고 노사나 정부 여러 분들, 혹은 국회의원들을 만나서 그런 걸 설득을 해요.
▶정관용> 맞아요.
▷은수미> 혹은 조정을 하고. 바로 그런 일들이 정치의 일환이었고, 그런 일들을 국회의원이 되어서 더 할 수 있을 거고, 또한 이제 그런 사람이 좀 나서줘야 되는 것 아니냐, 사람들의 마음이 급하다, 뭐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 거예요.
▶정관용> 사실은 정부와 정책, 그 언저리에 계셨던 거예요.
▷은수미> 그렇지요.
▶정관용> 그냥 학교에 계셨던 분은 아니고.
▷은수미> 예, 좀 달라요.
▶정관용> 그러니까요. 순수 이론 연구가 아닌 현장과 정책 연구를 하셨던 거란 말이지요.
▷은수미> 그렇지요.
▶정관용> 노동연구원에는 언제부터 계셨지요?
▷은수미> 2005년 3월부터 있었습니다.
▶정관용> 2005년? 그러면 한 7년?
▷은수미> 예.
▶정관용> 주로 연구하신 분야는요?
▷은수미> 주로 제가 비정규직과 저임금 근로 문제, 그 다음에 이제 노사관계. 중재와 조율도 하고 뭐 정책도 내고. 그 다음에 이제 사회안전망 문제. 그러니까 실업급여 문제나 이런 것들을 좀 광범위하게 살펴보고 노동법도 좀 어떤 방향으로 개정을 해야 되는지, 이런 것들을 살펴본 거지요.
▶정관용> 역으로 가봅시다. 2005년부터 7년간은 노동연구원에 계셨고. 2005년 이전에는?
▷은수미> 2005년 이전에는, 제가 98년도에 대학교를 졸업했어요. 아주 늦게.
▶정관용> 학부?
▷은수미> 학부를. 그러니까 4학년을 굉장히 나이 들어서 졸업을 한 거지요.
▶정관용> 대학 입학한 건 82년이잖아요.
▷은수미> 82년이지요.
▶정관용> 82년?
▷은수미> 예, 그래서 대학교 4학년을 98년도에 졸업을 하고 99년부터 2005년 2월까지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거지요.
▶정관용> 그러니까 공부를 하셨네요, 그 전에는?
▷은수미> 그렇지요.
▶정관용> 공부를 한 것은 언제부터였지요, 그럼?
▷은수미> 본격적으로 제가 공부를 하겠다, 라고 생각한 것은 99년 석사에 들어갈 때.
▶정관용> 아니, 그러니까 학부를 다니신 게?
▷은수미> 82년이지요.
▶정관용> 그게 아니고, 98년에 이제 졸업을 하셨는데, 그 전 몇 해를 학교를 다니셨을 것 아니에요?
▷은수미> 아, 1982년에 학교를 들어가서 84년도에 제가 제적이 됐어요.
▶정관용> 제적?
▷은수미> 예, 제적이 되어서 85년부터 노동현장에 있었던 거지요. 그 당시에는 공순이, 이렇게 불렸어요.
▶정관용> 어디에 계셨어요, 그때?
▷은수미> 아, 저는 봉제공장 미싱사로 있었습니다. 한 1년 6개월 정도 있다가... 그때 한번 구속이 되었었어요. 뭐 집회 및 시위 이런 문제로... 그 당시가 노동자들께서 현장에서 여러 가지 요구를 많이 하셨던, 그러니까 87년 직전이기도 하고요.
▶정관용> 그렇군요.
▷은수미> 그러다가 다시 나와서 그때서부터... 다시 이제 저는 공장으로 들어가려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서노련이라고 하는 조직이 있었는데...
▶정관용> 서울지역노동...
▷은수미> 노동운동연합. 그때 이제 박노해 씨, 뭐 김문수 지금 현 지사, 이런, 그 다음에 심상정, 지금 통합진보당 의원, 이런 분들이 만드셨던 조직인데 거기에 함께 하다가 뭐 다른 조직활동을 조금 하다가 1988년에 사노맹을 만든 거지요.
▶정관용> 사노맹?
▷은수미> 예, 그때 백태웅, 박노해 이런 분들하고 같이 했던 거지요.
▶정관용> 그러니까 대학에 들어가서 학생운동하시고, 학생운동 하다가 3년 만에 이제 제적되시고. 뭐 필수 코스처럼 노동현장으로 가셔서, 잠깐 1년 반 일하다가 역시 또 한번 구속되고. 나와서는 이제 조직활동가가 된 거지요?
▷은수미> 예.
▶정관용> 사노맹이 뭐지요?
▷은수미> 남한사회주의자노동자동맹이라는 굉장히 무시무시한 이름이라서 지금도 여러분들이 깜짝 놀라시는데, 사실 이름만 그렇고요. 그때 제 나이가 스물 대여섯 쯤 되었거든요. 그러니까 젊은 청년이 민주주의를 하고 싶은 최대한의 열망을 담은 그런 조직이었다고 보시면 돼요.
▶정관용> 그런데 왜 하필 사회주의입니까?
▷은수미> 아, 그때는, 그때가 그러니까 지금 이야기하면 임금 및 근로조건도 제대로 보장이 되고, 노동3권도 제대로 보장이 되고, 그 다음에 이런 노동자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 그러한 최고의 유토피아, 그것이 사회주의라고,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했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거지요.
▶정관용> 그렇지요. 당시에 그러니까 사회주의자였지요? 이른바?
▷은수미> 예, 이른바.
▶정관용> 당시에 함께 했던 분들이 백태웅 씨, 또 조국 교수?
▷은수미> 예, 조국 교수.
▶정관용> 그리고 박노해 시인?
▷은수미> 예, 그런 분들이었지요.
▶정관용> 은수미 씨는 직함이 뭐였지요?
▷은수미> 음, 정책실장이었어요.
▶정관용> 정책실장? 그러면 서열 몇 위쯤 되는 겁니까?
▷은수미> 뭐 넘버 쓰리, 뭐 포, 이렇게... (웃음) 이야기하는데, 그 정도 되는 서열이라고 보시면 돼요.
▶정관용> 넘버 원이 백태웅 씨였고?
▷은수미> 예, 투가 박노해... 원투를, 두 분은 원투를 가리기가 좀 힘들고요, 그 두 분을 제가 보조하는 역할을 했어요, 여러 가지 형태로.
▶정관용> 그런데 그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제목의 이름의 넘버 쓰리가 될 수 있을까요?
▷은수미> 저는...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우선 제가 정책적 능력이 조금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러니까 노동연구원에 있었던 것도 사실은 정책적 능력인데, 정책적 능력이 있었고, 또한 현장을 상당히 잘 알고 있고. 단지 학생운동만 했었던 것은 아니고. 무엇보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지금도 일벌레인데요, 그러니까 일을 굉장히 성실히 열심히 잘 하는. 그래서 박노해 선배나 백태웅 선배가 다들 선배님들이었는데, 굉장히 열정적이고 헌신적이고 그리고 정책적으로는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가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뭐 몇 위인가, 이런 게 중요하지 않았고요. (웃음)
▶정관용> 그때 전체 조직원들이 몇 명 되었었지요?
▷은수미> 한... 제가 지금 저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3천 명 정도 되는 그 당시로는 굉장히 큰 규모였다고 하더라고요.
▶정관용> 맞아요. 실제로 노동현장에 있는...
▷은수미> 분들도 꽤 계셨어요.
▶정관용> 그랬었지요?
▷은수미> 예.
▶정관용> 일반, 이른바 학출, 학생운동 출신이 아닌 분들도?
▷은수미> 예, 그분들 중에서도 지금도 제 친구분들도 계세요. 그리고 그분이 그러니까 남편분께서 현대자동차 노동자이셨는데, 거기 이제 부인, 전업주부로 있으시다가 남편이 해고되어서 거기 가족대책위로 일을 하셨던 분들도 계시고. 그렇게... 음, 지금도 그런 친구들이 좀 있지요.
▶정관용> 그 당시에 뭐 가장 큰 조직을 만들어서, 그 조직을 통해 뭘 하려고 했지요? 사회주의 혁명?
▷은수미> 사회주의 혁명은 꿈이었고요, 노동을 바로 세우고 싶었어요. 노동자가 제대로 당당하게 말하고 노동하고 존중받는. 지금 생각하면 지금의 민주통합당에서 최저임금, 그 다음에 헌법에 나와 있는 적정임금.
▶정관용> 그렇지요.
▷은수미> 생활임금, 이런 이야기들을 그 당시에 똑같이 했었어요. 그래서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사실은 이제 포장은 굉장히...
▶정관용> 무시무시...
▷은수미> 원대한 꿈을 가지고...
▶정관용> 무시무시했다?
▷은수미> 예.
▶정관용> 바로 이 백태웅, 박노해, 조국, 이런 분들하고 국회의원 출마에 대해서 상의하셨어요?
▷은수미> 백태웅 씨에게는 나중에 메일을 드렸고요.
▶정관용> 지금 외국에 있으니까?
▷은수미> 예, 외국에 계시니까. 박노해 선배께는 곧바로 전화를 드렸는데 당일은 연락이 안 되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굉장히 축하를 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정관용> 해라?
▷은수미> 예, 해라, 그게 맞다. 조국 교수한테도 메시지를 보냈지요. 그랬는데 음, 조국 교수도 잘한 선택이라고 격려를 많이 해줬어요.
▶정관용> 그러다가 이제 92년?
▷은수미> 예, 92년도에 구속이 되었지요.
▶정관용> 사노맹 조직이...
▷은수미> 일제검거가 되었지요.
▶정관용> 그렇지요. 그게 왜 그렇게 되었어요?
▷은수미> 아직도 그걸 몰라요. 저는 이제 제가 역사를 굉장히 궁금해 하기 때문에, 저희도 어떻게 된 건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제가 고문을 받는 동안 뭐 고문 수사관들이 프락치가 있었어, 라든가 뭐 이런 이야기들을 저한테 하는데,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너희들 잡느라고 뭐 1년 이상을 계속 뭐 군밤장사도 하고 그러면서 미행을 했었다. 그리고 굉장히 잡기가 힘들었다. 그래 저희들도 아직 정확하게 자료를 모르고요. 만약 이게 이제 역사적 가치가 있다면 정말 정보공개 청구를 좀 하고 싶어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별 문제가 안 된다면, 이런 조직의 진심, 그러니까 무엇을, 그러니까 지금은 굉장히 욕도 많이 먹잖아요. 그런데 제대로 된 평가가 만약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현재 국정원에 있을 자료들을 봐야지 알지요. 저도 몰라요.
▶정관용> 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은수미> 글쎄요, 미국에서는 이렇게 몇 년, 혹은 몇 십년에 걸쳐서 이렇게 단계적으로 공개를 해주시잖아요.
▶정관용> 한 20년, 25년 지나면 자료 공개를 하지요.
▷은수미> 예, 그렇지요. 저는 그런 것들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역사의 한 매듭들을 좀 지어보고, 공동의 평가를 해서 그것을 공동체의 자산으로 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가서 6년을 보냈습니다.
▷은수미> 예.
▶정관용> 그리고... 몸도 굉장히 많이 상하셨다고?
▷은수미> 굉장히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좀 저도 납득이 안 되는 거예요. 왜 그렇게 아픈지. 그러니까 고문을 받을 때서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나올 때까지 아팠다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저는 아무 것도 못했고, 오직 책 읽는 것 정도? 거기에다가 계속 혼자 있어야 되었기 때문에...
▶정관용> 독방이고?
▷은수미> 예, 그리고 제가 있던 독방이 창문이 없었어요.
▶정관용> 어이고.
▷은수미> 그래서 그 다음에 여름에는 한 35도쯤 올라가고, 겨울에는 그 당시 난방이 안 되었었거든요. 그러면 제가 일어나서 웃으면서 나 빼고 다 얼었다. 이렇게. 그런데 그런 데에서 버텨야 되니까. 그리고 거기에서는 왜 살아나고 싶잖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그러니까 최소한으로 움직이면서, 그러니까 책을 읽고 최소한으로 움직이면서 그냥 버티고 살겠다, 라는 생각 외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책은 굉장히 많이 읽을 수 있었어요.
▶정관용> 그리고 살아남았네요?
▷은수미> 예, 하늘에 감사하지요. 저는 정말 행운의 별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만일 운명이 있다면, 누군가의 손길이 저를 살려줘서, 언제나 저를 살려준 하늘의 뜻이 무엇일까를 묻게 하는, 그런 겸손함을 좀 배운 것 같아요.
▶정관용> 그 어려운 투옥 생활을 하면서 사노맹을 만들고 활동하고 한 것에 대해 후회는 안 했습니까?
▷은수미> 만약 잘잘못을 평가한다면 저는 잘못이 굉장히 많았고, 또 잘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굉장히 많았지만...
▶정관용> 잘못한 게 대표적인 게 뭐예요?
▷은수미> (웃음) 이런 말씀을 드려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고 김진균 선생님께서, 그러니까 제가 다시 서울대 사회학과 공부를 시작을 했을 때, 그 당시 이제 사회학과의 거목, 김진균 선생님이 계셨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분께서 너희들에게, 너희들 조직에 그러니까 활동비를 지원했다고 안기부 수사를 받으셨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건 모르는 사실이었는데, 저희들이 구속이 되면서 아마 그 후원자 명단이... 저희들이 관리를 잘 못한 거지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분들께 누를 끼쳤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뭐 회사에서 문책을 당한 분도 계시고... 어쨌든 그런, 그런 굉장히 많은 사소한 잘못들. 그래서 저희들이 예상하지 못했지만...
▶정관용> 피해를 준 것?
▷은수미> 여러분들이 피해를 받으셨더라고요. 그래서 그 당시에 죄송합니다, 라는 말밖에 못해서, 지금도 굉장히 가슴에 많이 남아요. 그리고 그런 분, 그러니까 제가 죄송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었던 분들 이외에 여러 분들이 또한 그런 피해를 혹시 받으시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금도 굉장히 죄송스럽고...
▶정관용> 그런 게 잘못한 것이고?
▷은수미> 예.
▶정관용> 잘한 것은?
▷은수미> 잘한 것은 어쨌든 노동권 문제, 그러니까 노동자가 당당하고 존중받는 사회를 가지고 살아야 된다, 라는 어떤 신념 같은 것들을 좀 널리 전파시킨, 그 정도는 잘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관용> 그런데 이제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그 당시 시대상황은 그랬습니다만, 그런 노동의 일반의 문제 정도를 제기하는 조직인데, 왜 사회주의, 이런 등등을 붙여서 이른바 한국 노동운동을 더 좀 어렵게 만드는...
▷은수미> 그러니까...
▶정관용> 국민들이 노동운동 그러면 아, 이건 빨갱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만든 어떤 오류 같은 것도 있지 않느냐, 사상적 과격함 때문에. 그런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은수미> 그러니까 이런 것 같아요. 강하게 누르면 강하게 반발을 하거든요. 그게 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당시 이제 젊은 20대, 혹은 나이가 많아야 이제 30대 초반이었던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당시가 한 마디로 말해서 그러니까 파업도 못하는 지경이었어요.
▶정관용> 그렇지요.
▷은수미> 파업이라도 하려면 비밀스럽게 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이라는 것은 완벽하게 무시되는, 뭐 얼마 전에 사찰, 지금도 사찰문제가 많지만, 사찰 이상의 문제, 언제나 감시당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노동자들이 살아야 되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아서 노동권 문제라도 제기를 하려면... 예를 들어서 이런 거지요. 제가 다니던 공장에, 원래 9시에서부터 6시까지 일해야 되는데, 그리고 급여를 그렇게 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7시 반이면 출근을 했어야 되었거든요. 그리고 점심시간은 한 시간이라고 되어 있기는 한데, 보통 10분 정도에 밥 먹고 일을 해야 돼요. 그런데 그런 문제제기도 하면 그 당시에는 빨갱이 소리를 들었어요.
▶정관용> 그렇지요.
▷은수미> 그러니까 그런 상황이다 보니 비밀스러운 조직을 만들게 되고요, 비밀스러운 조직을 결속력을 가지려면 아무래도 강한 신념 같은 것이 필요하지요. 그러니까 사회가, 혹은 정치가, 혹은 당시 독재정부가 매우 강하게 누르니까...
▶정관용> 여기에서도 강하게?
▷은수미> 예, 그런 저는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에 대한 좀 객관적 평가는 필요하겠지요.
▶정관용> 지금도 사회주의자입니까?
▷은수미> 어, 아닙니다. 저는... (웃음)
▶정관용> 언제 바뀌셨나요?
▷은수미> 저는 바뀌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러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면 뭐하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한 것은 정말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서였어요. 그리고 그 이름은 뭐여도 좋았습니다. 사실은 그것을 그 당시에, 그렇게 강한 억압이 없었더라면, 그냥 민주주의 정도로 붙였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지금도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특히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근로자가 오늘 같은 날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그건 같아요. 같은데, 굳이 그 이름을 지금 사회주의자라고 붙일 이유나, 붙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라고고 말씀을 드리는 게 맞아요. 그러니까 일종의, 뭐 이렇게 말씀드리면 모르겠지만, 정당도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일종의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의 도구일 수 있잖아요?
▶정관용> 그렇지요.
▷은수미> 당시 사회주의도 노동3권을 보장하는, 그리고 생활임금 같은 것을 확산시키기 위한 어떤 민주주의적 도구였는데, 그 말을 사회주의로 썼다. 따라서 지금은 보다 더 자유로운 사회이잖아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뭐 민주주의의 내용을 끝까지 확장, 심화시키면 그것이 사회주의다.
▷은수미> 예, 그렇게 이해했던 거지요.
▶정관용> 엥겔스도 그렇게 표현했던 바도 있고요.
▷은수미> 예.
▶정관용> 그러니까 이제 그런 생각을 하셨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사회주의라고 굳이 부를 필요가 없다?
▷은수미> 예.
▶정관용> 그러니까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은수미> 예.
▶정관용> 그럼 제가 이렇게 질문하면은요? 그 당시에는 혁명주의자였지요?
▷은수미> 예.
▶정관용> 지금은요?
▷은수미> 아닙니다.
▶정관용> 그러니까 그게 언제 바뀌었는지?
▷은수미> 아, 그게 92년도 구속되어서 그 이후에 출소할 때까지 제가 복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왜 그랬냐 하면, 기억을 하시겠지만, 소련이라는 거대 제국이 무너졌지요.
▶정관용> 무너지고.
▷은수미> 그러면서, 그리고 그 소련이라는 거대 제국이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사실은 그 나라가 좋은 나라가 아닐까, 이렇게 상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다, 였잖아요?
▶정관용> 그래서 다시 공부를 했군요?
▷은수미> 그래서 다시 복기... 그러니까 왜 그러면 그 나라는 그랬을까, 에서부터 시작해서 제가 사회주의자, 혹은 저의 친구들이 사회주의자라고 그러니까 스스로를 그렇게 이름 붙였던 것이 의미가 뭐고, 그러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과도한 이름을 갖지 않고도 노동3권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지.
▶정관용> 그렇지요.
▷은수미> 혹은 그런 과도한 이름을 붙여서 노동3권은 제대로 개선이 되었는지. 이러한 저 나름의 복기를 했다고 보시면 돼요. 그렇지만 전혀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요, 그 이후에도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나 저임금 근로자 문제에 관심이 많지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분들이 끝없이 달려갔었지요. 사상적으로도 끝없이 막 달려가고. 그랬다가 이제 현실의 변화를 다시 또 공부하면서 현실 속에 조금씩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걸 찾는, 그런 일들을 하시는 분들이 지금 여기저기에 많이 계신 거고요.
▷은수미> 예.
▶정관용> 이번에는 이제 국회의원으로서 그 일을 하겠다?
▷은수미> 예.
▶정관용> 통합진보당 같은 데에서는 혹시 영입 제안 없었어요?
▷은수미> 전혀 없었습니다.
▶정관용> 왜 그랬을까요?
▷은수미> 이런 말씀 드리면 좀 우스운데요, 제가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제가 정부 출연기관 연구자로서 발표를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해고된 노동자들 앞에서 이제 발표를 했는데, 제가 그 해고 부분에 대해 굉장히 가슴이 아팠지만, 그 당시에는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정말 솔직히 지금 당장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게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그런데 지금 해고가 되셔서 2개월, 3개월 된 분들은 얼마나 화가 나셨겠어요? 그래 가지고 어떤 분이 이렇게 손을 들고 일어나셔서 말씀하시더라고요. 관변단체 연구자가 이런 데에 와서 정부, 그러니까 국민 세금 받고 국록 받으면서 어떻게 대책이 없다, 라는 소리를 하느냐. 저는 말, 그러니까 그런 항의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을 하지만, 또한 저는 정책으로서는 굉장히 솔직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관용> 그렇지요.
▷은수미> 그 당시에는 대책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렇게 관변 연구자, 좀 애매한 연구자, 이런 생각들을 좀,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계시지 않았을까.
▶정관용> 그럴 수 있겠군요.
▷은수미> 예.
▶정관용> 이제는 본인이 했던 연구들을 정책으로, 그리고 실현되는 제도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은수미> 예.
▶정관용> 역점 두는 분야가 어느 어느 대목이신지?
▷은수미> 우선 오늘 5월 1일에 서울시 비정규직 1,133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지요. 이게 정책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지자체들에서 노력을 하고 계세요. 저는 우선 공공부문, 혹은 공기업, 혹은 지자체 부분은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정규직 채용을 관행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관용> 예, 항상 그리고 정부는 먼저 하겠다고 했지요.
▷은수미> 그렇지요. 그래서 그 부분을 최대한 밀고 가고 싶어요. 그래서 1,133명이 아니라 1만 1,330명. 혹은...
▶정관용> 11만.
▷은수미> 혹은 11만 명, 혹은 100만 명, 뭐 이런 수준으로 정말 비정규직으로 처음에 들어와도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고, 혹은 처음서부터 적어도 공공부문은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청년 인턴도 없다, 단지 수습기간이 있을 수 있는 거지요.
▶정관용> 그렇지요.
▷은수미> 그런 제도를 확실하게 확립하고 싶습니다.
▶정관용>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네요, 아예?
▷은수미> 예. (웃음)
▶정관용> 그러면 그게 이제 모범이 되어서 민간기업이 따라가야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도 또?
▷은수미> 예, 대책이 좀 있습니다.
▶정관용> 있어요?
▷은수미> 그러니까 사실은 정부가 민간기업에 대해서 뭐라, 뭐라고 할 수는 없어요. 다만 정부가 조달을 통해서 일단 민간부문에게 지원을 해주실 수 있거나 혹은 직접 정부가 지원을 해드리는 민간기업들이 있습니다. 그 경우에 조건을 붙이는 거지요. 이건 전 세계적으로 하는 일이에요.
▶정관용> 그렇지요.
▷은수미> 그래서 고용의 질, 이런 것들을 가점을 좀 드리기만 해도...
▶정관용> 맞아요, 맞아요.
▷은수미> 괜찮은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거지요. 지금 조달이 GDP의 한 10%, 11% 정도 되니까 꽤 커요.
▶정관용> 엄청나네요.
▷은수미> 예, 그래서 그걸 가지고...
▶정관용> 알겠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나가는 그 돈, 노동자들에게 잘하는 기업에 먼저 주겠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은수미> 예, 맞습니다.
▶정관용> 아무쪼록 지난 30년... 15년의 노동현장 경험, 그리고 15년의 학문적, 또 정책적 연구의 경험들, 잘 묶어서 앞으로 한 15년 이상 정치를 잘 해보시기를.
▷은수미>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관용>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었어요. 고맙습니다.
▷은수미> 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