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등 동양사상에서 구(9)라는 숫자는 충만함을 뜻한다. 구족(9族)은 모든 백성을 의미하고 구천(9天)은 우주를 뜻하였으며 임금님이 사시던 궁궐을 구중궁궐이라 불렀다.
구절판은 이러한 구(9)의 의미를 잘 살린 대표적인 음식으로 8방에 나뉜 재료를 밀전병에 싸서 먹는데 이는 서로 다른 뜻을 가진 사람들의 화합을 뜻한다.
구절판은 팔각형의 모양으로 둘레에는 8칸, 가운데 1칸 총 9칸으로 나뉘는데 음식을 담는 기명(器皿)이 음식명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도자기나 유리, 플라스틱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지고 있으나 원래는 나전칠기로 만들어져 미술공예품으로도 귀하게 여겨졌다.
구절판은 그릇부터 음식의 재료까지 모두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한국 전통 색상인 오방색 (청, 적, 황, 백, 흑의 5가지)이 전부 들어간 음식으로 음식보다는 예술품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구절판 상자 위에 놓인 꽃 한송이(플라워록)로 뚜껑을 열자 빨간 틀 속에 아홉 가지의 극채색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넋을 잃었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차마 젓가락도 대지 못한 채 “나는 이처럼 아름다운 작품을 파괴하고 싶지 않다”고 구절판에 대해 극찬을 했다고 한다.
특히 구절판은 궁중식과 민간식으로 크게 구분된다고 하나 <진찬의궤>나 <진연의궤> 등 조선시대 궁중 잔치의 기록에는 나와있지 않다. 하지만 1973년에 발굴된 경주 천마총에서 구절판과 비슷한 찬합이 출토되었으며 1930년대 이후의 문헌인 조선요리법, 조선요리학, 이조궁정요리통고 등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궁중에서 즐겨 먹던 음식으로 추정 되고 있다.
궁중식은 연한 살코기를 실같이 썰어서 양념하여 볶고 그 밖의 재료는 각각 채쳐서 양념하여 볶은 미나리볶음, 표고버섯볶음, 처녑볶음, 양(羘)볶음, 달걀지단(흰자, 노른자), 숙주나물, 무채 등 8가지를 담고 중앙에 밀전병을 담는다고 한다.
반면 민간식은 전병을 찹쌀가루나 밀가루로 하고 그 밖에 골저냐, 미나리강회, 쑥갓, 홍당무생채, 양배추채, 육회, 달걀쌈, 어회, 순무채 등에서 8가지를 선택하여 빛깔을 맞추어 담는다.
또한 진 구절판과 건(마른) 구절판의 2가지로 나뉜다. 진 구절판은 미나리, 오이, 달걀지단(노른자와 흰자), 전복, 해삼, 새우, 삶은 닭고기, 쇠고기, 표고버섯, 석이버섯, 느타리버섯, 도라지 중에서 계절과 기호에 맞추어 8가지를 채썰어 기름에 볶아 빛깔을 맞추어 차례로 담는다.
또한 중앙에는 밀가루에 달걀 흰자를 섞어 종이처럼 얇게 부친 전병을 둥글게 오려서 담는데 찹쌀가루로 찰전병을 부치기도 했다.
마른 구절판은 마른 안주만을 담은 것으로 여러 가지 육포,어포,마른 새우 등에서 8가지를 골라 담고 중앙에는 보통 생밤을 담는다고 한다.
또한 구절판은 주안상이나 다과상에도 이용되는데 주안상에는 생률, 호도, 은행, 대추, 잣, 땅콩, 곶감 등의 마른 안주를 담고 다과상에는 각종 강정, 정과, 다식, 숙실과 등을 색을 맞추어 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채소나 야채, 해산물, 고기 등을 계절과 기호에 맞추어 만들며 밀전병 대신 쌈무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갖은 재료가 들어가 영양소가 풍부하며 맛도 담백하고 모양이 화려하여 손님상이나 술안주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