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2년 3월 13일 (화) 오후 7시 30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이로재 승효상 대표
▶정관용> 시사자키 3부 시작합니다. 오늘 3부는 특별한 손님을 한분 모셨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이시지요, 승효상 선생님이신데요. 그런데 이분께서는 집은 사는 게 아니라 사는 곳이다, 즉 돈, 매매 이런 게 아니라 정주의 공간임을 강조하고 있고요, 빈자의 미학을 실현하는 건축가로 불리는 그런 선생님이십니다. 잠깐 광고 듣고 승효상 선생님 함께 만나보시지요.
▶정관용>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 오늘 스튜디오에 특별히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승효상> 예, 안녕하십니까?
▶정관용> 많이 바쁘시지요?
▷승효상> 예, 뭐...
▶정관용> 요즘은 중국 프로젝트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승효상> 중국에 제 사무실도 있습니다. 중국은 한창, 아시다시피 도시 개발이 한창이라서요, 불황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정관용> 그렇지요. 지금 하시고 계시는 큰 프로젝트는 어떤 게 있습니까?
▷승효상> 지금 충칭이라고 하는 3,500만 명이 사는 도시에...
▶정관용> 한자로 중경?
▷승효상> 예, 상해 임시정부가 있던 곳이지요. 그곳에 5만평짜리 복합빌딩을 지금 설계 중에 있고요. 그리고 천진에 사무실 빌딩, 또 한 만평짜리 설계하고 있고요.
▶정관용> 거기는 기본 단위가 만 단위네요?
▷승효상> 중국은 단위가 우리보다 동그라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정관용> 과거 한때 제가 선생님, 개인적으로 만나 뵙고 말씀 들을 때 베이징 한복판에 옛날 공장으로 쓰이던 곳들...
▷승효상> 베이징, 예, 그것은 798예술구에 파나소닉 공장이 이제 브라운관을 생산 안 하니까 그게 이제 용도가 폐기가 되어서 그것을 예술특구 시설과 연관하는 문화시설로 이제 진행을 하다가 약간 지금 중단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정관용> 아, 그래요? 제가 그때 그 말씀 듣고...
▷승효상> 아마 그때 뵈었지요.
▶정관용> 그 다음에 또 제가 조금 아까 앞에 소개했습니다만, 사는 것, 매매나 돈이 아니라 사는 곳, 정주의 공간을 강조하는 분이다, 또 빈자의, 여기에서 말하는 빈자라고 하는 건 가난한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승효상> 가난할 줄 아는 사람.
▶정관용> 예, 좋습니다. 그 빈자의 미학을 실천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또 우리 승 선생님께서 이 건축과 관련되어서 여러 가지 상을 타셨는데, 그게 다 보면 조그마하고 독특하고 그런 걸로 제가 기억을 해서, 5만 평 주상복합도 지으시는 줄 몰랐어요.
▷승효상> 한국에서는 큰 건물이나 주상복합을 저한테 잘 안 맡기고 있는 것 같고요. 좀 설계할 줄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일은 보통 큰 설계사무소, 혹은 큰 기업하고 연관되어서 일이 처리되는 것이 다반사이고요. 중국에는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한국보다 이게 건축설계의 여건이 굉장히 선진화가 되어 있습니다.
▶정관용> 그래요? 우리보다 앞서 있어요?
▷승효상> 예, 중국에서는 건설시장을 건설회사가 주도하는 게 아니고 디밸로퍼(developer)라고 하는 이제...
▶정관용> 개발자?
▷승효상> 개발자하고 건축가가 주도해나가기 때문에 지금 현대의 아주 가장 현대적인 건축들이 중국 땅에 곳곳에 속속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급기야는 지난주에 발표가 되었는데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프리츠커 상을 중국의 49살 먹은 건축가가 탔지요.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정관용> 예, 오늘 중국 이야기 하려고 모신 건 아닙니다만,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굉장히 중요한 걸 지적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건설회사나 땅 주인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와 건축가가 주도한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승효상> 건설회사가 주도를 하게 되면 이게 자기 상업적 이익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시험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주저하지요. 그냥 과거 것을 계속 답습하는 이런 어떤 경향이 굉장히 많고요. 그러니까 설계라고 하는 것이 과거에 있었던 것을 가져다가 그대로 복습해서 하는 그런 관성에 젖어있게 마련이고요.
▶정관용> 네모반듯한 건물 이런 것?
▷승효상> 예, 그러니까 더구나 건설회사에서 자기들 자체적으로 설계를 하려고 그러고, 자체적으로 개발하려고 그러고, 시공도 물론 자체적으로 하니까 항상 관성에 젖어 있지요. 그런데 개발자나 건축가가 힘을 합하게 되면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어필하니까, 항상 선진기술을 더 받아들이려고 노력을 하고. 그러니까 저 같은 서울에서 작업하는 사람도 불러가지고 아주 큰 일을 서슴없이 맡기고 하는 그런 거니까요. 지금 사실은 중국에 짓는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서울이나 우리나라 땅에 짓는 것보다 훨씬 더 근사한 그런 풍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정관용> 그래요? 그 성냥곽 같은 아파트로 우리는 수십년을 보내왔는데...
▷승효상> 중국은 오래 전에 탈피했습니다.
▶정관용> 저는 그렇게 빨리 나아가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승효상> 어유, 점점 격차가 더 심하게 지고 있으니까 우리가 참 걱정이지요.
▶정관용> 그래도 우리 승 선생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마음껏 창조력을 뽐내실 수 있는 마당을 찾으신 셈이기도 하겠네요?
▷승효상> 예, 그게 이제 한국 땅에 이루어지면 더 좋은데, 섭섭한 마음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만...
▶정관용> 상대적으로 한국의 주상복합이다, 한국의 대형 오피스 건물이다, 여기에는 좀 변화의 조짐이 아직 안 보입니까?
▷승효상>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 특히 요즘 대두가 된 용산 재개발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은 불행하게도 이게 개발하는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건설회사 사람들입니다만, 모여가지고 모든 설계를 외국인들에게만 맡겼어요. 이건 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겁니다.
▶정관용> 그건 뭘까요, 사대주의?
▷승효상> 그러니까 뭐 외국의 이름을 빌려서 이제 그것을 자기들 분양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그런 게 굉장히 크지요. 유명한 이름들을 불러가지고. 그런데 사실은 외국인들이 와서 설계를 해도, 뭐 설계를 하는 게 마땅하지요. 요즘 같은 글로벌한 시대에. 그렇지만 그게 한국 건축가가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것은 그 건축이 앞으로 전개될 방향을 짐작해야 되는데, 필경 우리 땅과 무관한 그런 형식의 건축이 들어설 가능성이 굉장히 농후합니다.
▶정관용> 그렇겠지요.
▷승효상> 예, 자기네들끼리만 이렇게 하는 것이라서...
▶정관용> 그렇겠지요.
▷승효상> 그래서 굉장히 우려가 되지요.
▶정관용> 승효상이라는 이름으로는 분양에 도움이 잘 안 되나 보지요?
▷승효상> 아마 그런 모양입니다. (웃음)
▶정관용> 진짜입니까?
▷승효상> 그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인식이 되어 있는 것처럼...
▶정관용> 돌아가서 <빈자의 미학>이라는 책 내신 게 벌써 거의 20년 다 되가지요?
▷승효상> 예.
▶정관용> 96년인가요?
▷승효상> 예, 96년에 냈습니다.
▶정관용> 뭡니까, 한 마디로?
▷승효상> 아, 그 당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당시에도 또 물신에 사로잡혀 있는 시대라서 돈의 힘으로 다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그런 어떤 환경이 만들어지는 곳에 좀 절제하면서 검박하게, 가난할 줄 알면서 살자고 하는 뜻으로 제 건축의 지표로 삼는다고 주장을 하면서 책까지 냈고요. 그런 모습...
▶정관용> 그게 어떤 거지요? 절제와 가난할 줄 아는 것이 건축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 겁니까?
▷승효상> 그러니까 자기가 돈이 있다고 해서 돈이 있는 대로 다 지어서 남, 주변의 건물을 억누르려고 하지 말고 조금 더 다소곳하게 지어서 주변에 좀 어우러지고, 남에게 좀 베풀 줄 아는 건축. 예컨대 이제 건물을 땅에 빽빽하게 들어서지 말고 좀 여유 있게 비워내어서...
▶정관용> 비워주고?
▷승효상> 다른 사람들이 와서 비올 때 좀 숨을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주고, 길이 있으면 길도 이어지도록 내어주고, 이런 류의 건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와 더불어서 익어가는 그런 건축을 하자고 이제 이야기를 했지요.
▶정관용>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건평 대비 전용면적, 거기에 따른 돈 얼마, 뭐 이것보다 다른 걸 먼저 생각하자?
▷승효상> 예, 그렇지요. 몇평형, 이런 것보다도 이로재, 같은 이름, 이런 근사한 이름을 갖는 집을 갖자, 이런 뜻도 있습니다.
▶정관용> 이로재(履露齋)이가 우리 승 선생님 일하시는 곳이잖아요?
▷승효상> 예, 이슬을 밟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정관용> 이슬을 밟는 집?
▷승효상> 예.
▶정관용> 그러니까 그런 공간들에 가보면 사람들이 사는 데에, 또 기존의 다른 공간들, 아파트, 네모반듯한 몇평형, 이런 것에 비해서 어떤 차이가 있나요?
▷승효상> 집이라고 하는 게 이제 물리적이고 본능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이 있고요. 화장실이나 침실이나 그런 것들이고. 가족끼리 사교하기 위한 공간, 거실 같은 것들입니다, 아마 서양식으로 이야기하면.
▶정관용> 그렇지요.
▷승효상> 이 두 공간밖에 서양집은 없어요, 기능이. 그런데 우리의 옛 집들은 그 두 공간 이외에 정자라든지, 문방이라든지, 사랑채라든지, 마당이라든지, 별로 기능이 없거든요. 없지만 우리를 굉장히 사유로 인도하는 그런 공간들이 있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이건 다 옛날 부잣집들에만 있었던 것 아닌가요?
▷승효상> 아니지요, 가난한 집들도 다 있었습니다.
▶정관용> 그런가요?
▷승효상> 마당 다 있지요?
▶정관용> 아, 예.
▷승효상> 이런 것 다 있지요? 그러니까 이게 다 창조적 공간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생각할 줄 알면서 살자, 이런 뜻이 이제 그런 어떤 빈자의 미학이라고 하는 집에 다 이게 포함되어 있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걸 서양화를 쫓는 게 선진화인 줄 알다가, 알면서 이제 우리 마당을 다 메우고 그랬지요. 좀 달리 살자고 이제 주장하고 있는 거지요.
▶정관용> 좀 비워놓을 데는 비워놓고?
▷승효상> 아, 그러니까 이렇습니다. 우리나라 옛 집 보면은 집들이 구조가 방 이름이 거실, 침실이 아니었거든요.
▶정관용> 안방...
▷승효상> 안방, 건넌방, 문간방. 심지어는 화장실도 뒤에 있다고 뒷간이었으니까. 그것은 이제 요만 깔면 침실이고 식탁 펴면 식당이고, 서탁 깔면 공부방이고, 뭐 담요 깔면 화톳방 되고, 이렇게 거주하는 사람들의 임의대로, 뜻대로 다 변할 수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서양집으로 우리가 옮겨서 살게 되면서 거실, 침실 등 기능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목적만 가지고 있는 공간에 살게 되면서 공간의 개념이 다 변했지요. 그렇게, 그것은 즉 건축이 우리 생활을 규제한다고 하는 건데, 그게 아니고 우리가 건축을...
▶정관용> 바꾸어낼 수 있어야 되는데...
▷승효상> 바꿔내고 우리 의도대로 건축이 변해나가는 건축을 하는 게 선조들이 만들었던 건축인데, 우리가 요즘 시대에 그걸 잊어버렸지요. 그런데 굉장히 당혹스러운 게 요즘 서양 건축들이 불확정적 비움, 이라고 하는 단어를 내세워서...
▶정관용> 그쪽으로 가요?
▷승효상> 이게 새 시대, 새 패러다임이라고 하고 가고 있는 거지요. 우리가 옛날에 다 했던 것이고 우리는 그걸 쫓아내고 있는데 이게 이제 당황스러운 거지요.
▶정관용> 그런데 이게 경제적 효율성 면에서 떨어집니까, 그렇게 하는 게?
▷승효상> 그렇지 않습니다. 뭐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옛집들 보면 집들이 크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보통 한옥집이라고 하는 게 30평, 40평밖에 안 됩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굉장히 풍부한 공간들이 있는 게 그 공간을 항상 비워놓고 썼기 때문에 이제 생긴 결과이지요.
▶정관용> 그런데 아파트 문화가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변한 것 아닌가요?
▷승효상> 아, 그럴 수 있습니다. 예, 그럴 수 있는데, 아파트는 이제 땅이 작으니까 고층화시킬 수밖에 없는 여건도 있지요. 사람도 많아지고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옛 정취나 우리의 옛 정신을 가져다가 살리면서 설계할 수 있고, 지을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많은데...
▶정관용> 아파트도?
▷승효상> 예, 많은데, 우리가 아파트를 많이 짓던 시절에는 주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야합해서 이제 짓는 시절이니까 그런 어떤 정신을 도외시하고 물량 생산에만 이제 급급했었지요.
▶정관용> 쉽게 대량생산으로.
▷승효상> 예, 그렇습니다. 하나만 해가지고 그걸 판에 찍듯이 만들었지요. 지금은 그런 시절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관성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게 문제이지요.
▶정관용> 우리 선생님도 아파트도 설계해보신 적 있으세요?
▷승효상> 설계를... 시켜주시면 잘 할 건데, 잘 안 시켜요.
▶정관용> 그렇군요. 빈자의 미학으로 시작을 해서 우리 지금 어떤 정신을 가지고 건축을 바라봐야 하는가, 사는 사람 위주로 건축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말씀 들었는데, 그런 집 하나하나가 모여서 동네가 되고, 동네가 모여서 도시가 되고, 그 도시인 서울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서울을 보시면서 어떻게 보세요? 뭐가 제일 좀 눈에 거슬리고 뭐가 제일 좋습니까?
▷승효상> 서울은 천만 명이 사는 도시인데, 세계 천만 명 이상 사는 도시가 한 20군데 있습니다. 그중에서 서울이 거의 유일하게 산이 있는 도시입니다. 다른 도시들은 이제 평면 위에 세웠기 때문에...
▶정관용> 맞습니다.
▷승효상> 랜드마크가 필요하지요. 서로 이제 인식이 되어야 되니까. 그래서 에펠탑도 들어서고 마천루도 들어서고 빅뱅도 있는데...
▶정관용> 그렇지요.
▷승효상> 서울은 원래 정해질 때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산세를 보고 정했거든요. 이게 우리나라 다른 도시도 다 마찬가지인데. 워낙 이 랜드마크가 원래 있는 겁니다.
▶정관용> 산이 있지요.
▷승효상> 예, 산세가 굉장히 수려한 랜드마크가 있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다면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 조화되게끔 자그마한 단위로 집합적인 아름다움이 우리 서울이 가져야 될 건축인데, 이게 서양풍이 들어가지고 랜드마크 세우는 게 마냥 좋은 줄 알고, 이렇게 건물을 삐죽삐죽 세우면서 산과 부조화하고, 기존에 있던 건물과도 또 부조화하고 총체적으로 부조화한 게 서울의 풍경이지요. 난장판이지요.
▶정관용> 총체적 부조화?
▷승효상> 예.
▶정관용> 게다가 지금은 또 너도나도 초고층을 짓겠다고 또 나서잖아요.
▷승효상>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서울이 갖는 지리적인 그런 어떤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면서 하고 있는 게 지금 최근의, 근래의 개발되어 있는 방식이지요. 그런데 지금 북악산에 가보시면 지금도 남쪽을 바라보면 지금도 아름답습니다.
▶정관용> 남쪽?
▷승효상> 예, 남향을 해서 쳐다보면 산세들이 있고 한강물이 보이고 하는데, 이게 아직도 서울이라고 하는 자연이 관용은 하고 있어요. 그런데 건축은, 뭐 건축이나 이런 건물들은 다 언젠가는 허물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서울은 돌아갈 지점이 항상 있지요. 헌데 이게 아마 더 이상 관용하지 못할 때, 혹시 서울이 멸망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없지 않아 있지요.
▶정관용> 지금 아주 볼썽사나운 총체적인 난국인데 여기까지는 버텨준다?
▷승효상> 아직까지는 버티고는 있습니다.
▶정관용> 그래요. 논란이 되었던 광화문 광장, 청계천, 세빛둥둥섬,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승효상> 그런 것들이 서울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만든 결과라고 저는 보고 있고요. 서울이 가져야 될 그런 어떤 건축의 모습이라고 하는 게, 다른 평면 위에 세워진 인공적인 도시하고는 굉장히 다른데, 그것에 관한 인식이 없던 결과라고 보고 있고요. 특히 광화문 광장 같은 것은 제가 뭐 수차례 그건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밖에 안 된다고 이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뭐 그곳은 옛날 육조거리가 지나가던 곳인데...
▶정관용> 그렇지요.
▷승효상> 그것을 비켜서 그냥 중앙이면 좋은 줄 알고 중앙광장으로 만든 거고요. 하루빨리 그것은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정관용> 붙여서?
▷승효상> 붙여서, 우리가 아주 쉽게, 전혀 차량의 간섭을 받지 않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광장이지 안 그러면 떠 있는 섬밖에 안 되니까 그건 빨리 고쳐야 된다고 생각하고...
▶정관용> 또 왜 나무도 다 뽑아버렸는지 모르겠어요.
▷승효상> 글쎄 말입니다. 그게 제가 제일 가슴아파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나무를 경계로 해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서 했으면 굉장히 근사한 광장이 되었을 겁니다.
▶정관용> 청계천은 지금 박원순 시장이 들어서서 다시 한번 점검해서 고칠 건 고친다, 하는데 어떻게 보세요?
▷승효상> 청계천도 사실은 또 세계 최대의 어항이라고 누가 이제, 하버드대학 교수가 이제 그렇게 비난을 했는데, 청계천은 그래도 방법이 있는 게, 청계천은 흘러들던 물들이 지금도 있거든요. 산이 있으니까 물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지천을 살리면 됩니다. 살려가지고 뭐 이게 북악산에서 흘러나오던, 인왕산에서 물러나오던, 남산에서 흘러나오던, 물줄기를 전부 다 같이 흐르게 하면 그게 이제 자연 하천이 될 수가 있지요. 그러니까 지금처럼 물을 한강물에서 퍼올려가지고 올리는 그런 어떤 제가 보기에는 아주 반생태적인 그런 어떤 풍경이 아니라 제대로 된 풍경을 앞으로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정관용> 조금씩 손대면 복원 가능하다?
▷승효상>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세빛둥둥섬은 가보셨어요?
▷승효상> 지나가봤지요.
▶정관용> 가까이는 안 가보셨어요?
▷승효상> 예, 뭐 가기 싫어서 안 가봤습니다.
▶정관용> 왜요?
▷승효상> 그게 그러니까 쇼, 전시적 그런 어떤 장치물하고 건축은 다릅니다. 건축은 땅을 디디고 그 땅의 인문적 환경과 자연적 환경에 서는 게 건축인데, 그렇게 둥둥 떠 있는 것은 우리는 건축이라고 하지 않고 그건 구조물이라고 그러고.
▶정관용> 전시물, 구조물?
▷승효상> 전시물이지요. 그러니까 그거는 뭐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정관용> 인문적 환경, 자연적 환경, 그 안에 사람의 환경. 사람의 정신과 삶과 철학.
▷승효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관용> 그 세 가지가 합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승효상>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새로 만든 말이 하나 있는데, 지문이라고 하는 말을 만들었는데...
▶정관용> 땅지(地) 자 써서?
▷승효상> 예, 그리고 글문(文) 자 써서. 천문, 인문이 있는데 지문도 있을 수 있지요. 그 지문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터무니가 됩니다.
▶정관용> 터무니?
▷승효상> 예. 우리...
▶정관용> 그러네요.
▷승효상> 터무니라는 말이 터에 새겨진 무늬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선조들은 옛날에 우리를 이야기할 때 터무니 있다, 없다, 하는 게 땅과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 거거든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근본이 있느냐, 없느냐하고 같은 말이로군요.
▷승효상> 그렇지요, 근본이지요. 땅하고 관계없으면 근본이 없어진다고 하는 겁니다.
▶정관용> 터무니없이 번지르하고 터무니없이 돈 될 것 같은 곳으로부터 눈을 돌려서 터무니있는 곳으로 살아가보자, 이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거로군요?
▷승효상> 예, 자기 땅에, 자기가 디디고 있는 현실에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정관용> 예, 시간이 훌쩍 가버렸습니다.
▷승효상> 할 수 없지요.
▶정관용> 다음에 한번 모셔서 이번에는 제대로 한 한시간 말씀 듣겠습니다.
▷승효상> 예.
▶정관용> 오늘은 청취자분들께 인사만 하신 걸로...
▷승효상> 예, 또 오겠습니다, 불러주시면.
▶정관용> 예, 고맙습니다.
▷승효상> 예, 감사합니다.
▶정관용>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과 아주 유익한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내일 다시 오지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