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에 다니는 A(21)씨는 군입대를 앞두고 육군보다 복무기간이 2개월 길지만 개인 시간이 많고 복무가 편한 것으로 알려진 '의무소방원'에 응시했다.
1차 체력검사에 2차가 필기시험이어서 나름대로 준비도 많이 해서인지 무난히 통과했다. 면접인 3차도 당연히 통과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A씨는 지난달 20일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왜 떨어졌는지 황당했고 1차 시험부터 3차 면접까지 준비하는 데 든 한 달이라는 시간과 돈이 아까웠다.
면접때 A씨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분. 그 사이에 지원자의 국가관과 소양, 성격 등을 살펴보겠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A씨는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런 것들을 다 평가할 수 있는지, 객관적인 국가관과 소양, 성격 평가가 가능한 것인지, 떨어지고 나니까 의문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 형평성 위해 바뀐 제도가 오히려 역효과?
지원자들은 면접이 짧고 질문도 평이해 미리 봤던 체력 테스트나 필기시험 점수가 당락에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오산이다. 사실은 앞 단계의 결과는 반영하지 않는 '제로베이스' 평가방식이어서 1,2차에 올라간 사람들은 면접에서 당락이 갈린다.
면접이 이처럼 중요하지만 면접을 실시하는 쪽은 의외로 허술하다.
지난달 16일부터 3일간 치러진 면접때는 소방령(5급) 이상 면접관 3명이 최종 면접자 663명을 하루 6시간씩 3일에 걸쳐 평가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1시간에 37명을 평가한 셈인데, 지원자가 들고 나는 시간 등을 포함하면 이 짧은 시간에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졌을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소방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처음에는 1시간에 50명을 면접하는 게 목표였다고 밝혔다가 나중에 30명이라고 정정해 왔지만 면접이 형식적이라는 의문을 해소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면접관이 면접 응시자의 이름을 안 상태에서 면접을 보는 등 의무소방원 선발의 최종 관문인 면접에는 부정이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좋아진 게 이 정도… '세계경제 위기원인', '인간은 무엇인가' 묻기도
지난해까지는 황당한 면접 질문도 문제가 됐다. '세계 경제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라', '인간은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성찰하라', '자기소개를 영어로 해보라'는 등 의무소방원으로 근무하는데 상관이 없는 질문들이 지원자들에게 쏟아졌다.
소방당국은 지역별로 선발하는 방식 때문에 형평성 등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으로 보고 올해부터는 전국단위 선발로 제도를 변경했지만 이번에도 형식적인 면접과 수험생의 차비 부담 등 역효과가 발생했다.
의무소방원과 더불어 입대예정자들이 선호하는 카투사의 경우는 일정 점수 이상의 어학점수를 취득하면 면접 없이 지원자들을 무작위로 추첨해 상대적으로 잡음이 덜하다.
◇ 소방당국 "선발제도 개선할 수 있지만 면접 폐지는 어려워"
소방당국은 지원자의 애로사항을 어느 정도는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잡음이 이는 면접을 폐지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소방 관계자는 "각 전형 단계를 비율을 달리해 합산해 총점으로 선발하는 제도를 검토 중"이라면서 "합격자를 대상으로 설문해 애로사항이 있다면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가관과 소양은 의무소방원의 중요한 자질이기에 면접을 없앨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국의 지원자들은 30일에 걸친 세 차례의 시험을 치기 위해 충남 천안의 후미진 곳에 위치한 소방학교에 매번 가야한다. 집이 서울인 A씨도 KTX를 6번 탔다. 차비만 16만원이 들었다.
A씨는 "국방의 의무를 위한 시험이 마치 고시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다른 지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면접과 세 차례에 걸쳐 천안을 다녀와야 하는 제도에 대한 불만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KTX 천안역에서 소방학교까지 가는 버스는 1시간에 1대뿐이고 택시를 타면 7,000원이나 들어 부담이 됐고, 번호가 뒷쪽이어서 전형이 늦게 끝난 응시생들은 콜택시를 불러도 오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