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결혼생활, 비즈니스 파트너 같기도”

[노컷인터뷰]“각자 일에 대한 소신이 강하니 상대방의 일도 중요하게 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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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톱스타로부터 ‘대표이사’라고 적힌 명함을 받는 것은 참 어색했다. 황혜영이라고 하면 여전히 18년 전 그룹 ‘투투’가 떠오르거나 최근 민주당 부대변인 김경록 씨와 결혼한 ‘정치인의 아내’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엄연히 연매출 100억이 넘는 쇼핑몰의 ‘CEO’다.

방송에 회의감이 들어 TV 밖으로 나갔지만 슬럼프가 반복되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쇼핑몰이다. 성취감을 맛보면서 자신감도 되찾았다. ‘CEO’라는 글자가 적힌 명함은 황혜영에게 직함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다시 태어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연예인보다 사업”이라는 황혜영이다.

5년을 앞만 보고 아등바등 달려왔지만 결혼 후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일주일에 2~3끼 함께 식사하기도 어렵지만 든든한 자신의 편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기에 상대방의 일도 존중한다. 황혜영은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가끔 비즈니스 파트너관계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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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감 들어 그만둔 방송 이제 그리워”
황혜영은 21살이던 1994년 그룹 ‘투투’로 데뷔해 ‘일과 이분의 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98년 오락실로 활동한 것이 가수로서의 마지막이었다. 드라마 ‘호텔’과 ‘못 말리는 결혼’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2000년 들어 방송에서 그녀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처음엔 방송에 회의를 느껴서 그만 뒀어요. 그 이후부터는 시기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였어요. 슬럼프도 많았고 칩거생활을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우울증이 오기 시작했고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니까 공황장애를 겪기도 했어요. 병원치료도 받고 가족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극복해갔죠”

당시에도 찾아주는 곳은 많았지만 다시 방송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래 쉬는 동안 실력 있는 후배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사실에 위축됐고 본인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던 터라 자격지심만 커져갔다. 방송은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돼버렸다.

“제가 뭔가 잘 하고 있을 때였다면 당당했을 텐데 방송국에 다시는 못 가겠더라고요. 물론 시도는 해봤어요. 방송을 하는 건 좋은데 그 자리에서 위축되는 제 자신이 싫었어요. 섭외에 응하고 방송 당일 녹화 직전까지도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결국 또 다시 회피하게 됐고 점점 무기력해져갔죠”

황혜영은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어딘가에 몰두해야만 했다. 그러던 찰나에 동생이 쇼핑몰을 권유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단지 정체성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더 닦달했고 그렇게 자신감 넘치던 예전의 모습으로 서서히 돌아갔다. 황혜영은 “원래 성격이 뭔가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며 웃었다.

“쇼핑몰 사업을 시작한 뒤부터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방송을 못 했어요. 이젠 사무실 밖의 일들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자신감이 생겨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방송도 다시 하고 싶어요. 7~8년 방송국에 발길을 끊으니까 그립기도 하고 궁금하더라고요. 최근에 방송국에 가보니 예전과 다르게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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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하나라면 연예인보다 쇼핑몰”
황혜영은 6평 사무실에서 자신을 포함해 3명으로 쇼핑몰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젠 30여명의 직원이 3개 층을 사용할 정도의 규모가 커졌다. 하루 18시간씩 일에만 매진해온 결과다. 올해 가장 큰 목표는 자체제작 상품비율을 반 이상으로 늘리는 것. 자신이 직접 디자인을 해서인지 팔릴 때 더 큰 성취감을 느낀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나 처음으로 수익이 조금 났어요. 돈 때문에 시작한 건 아니지만 매출에 따라서 기분이 좌우되더라고요(웃음) 백화점 입점 제의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는데 그것보다는 자체제작 비율을 늘려서 경쟁력을 더 갖추고 싶어요. 결혼 후부터 남자 옷에도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봄부터 남자 옷도 팔기 시작할 거예요”

황혜영은 사업가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지만 그에게 쇼핑몰은 연매출 100억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다. 힘든 시절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길 바라냐는 질문에 고민 없이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택했다.

“연예인이라 쉽게 쇼핑몰로 성공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으면 엉덩이를 차주고 싶어요(웃음) 전 혼신의 힘을 다했거든요. 쉽게 해온 건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가수활동 할 때랑 바쁜 건 비슷한데 정신적으로 부담감과 책임감은 훨씬 더 크죠. 당시엔 시키는 대로 했지만 지금은 정반대니까요”

황혜영은 인터뷰 내내 직원들을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직원들 평균 연령이 황혜영보다 띠동갑 이상으로 어리기도 했지만 그만큼 애정이 넘쳤다. 책임감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아마 다시 태어나서 연예인과 사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업을 선택할 거예요. 뭔가 성취감도 더 크고 재미도 있어요. 그러니까 정신없이 쇼핑몰에 매진할 수 있었죠. 한창 바쁠 때 남편을 만나서 결혼 얘기가 나왔다면 아마 결혼 못했을 거예요. 남편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랑은 타이밍이고 인연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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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 비즈니스 파트너 같기도”
황혜영과 김경록 민주당 부대변인의 인연은 잘 알려졌다시피 수십 년 전 부모님 대에서부터 시작됐다. 두 사람의 직접적인 첫 만남은 2010년이다. 김경록 씨는 미국에 머물다 짬이 나서 한국에 왔고 황혜영은 쇼핑몰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던 때였다. 두 사람은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당시 남편은 오히려 저보다 한가했을 때라 저보고 바쁘다고 했었어요. 제 시간에 다 맞춰줬어요. 그래서 만나게 됐지 서로 바빴으면 못 만났겠죠. 남편이 바쁠 땐 제가 맞춰주고 남편이 조금 한가해지면 저한테 맞춰주고 그래요. 서로 일에 대한 소신이 강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상대방의 일도 중요하게 여기게 되더라고요”

최근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 두 끼 밖에 같이 못 먹을 정도로 바쁘다. 특히 김경록 씨가 최근 총선 출마를 결심하며 더 바빠졌다. 정치인의 아내면 내조만을 생각하지만 서로의 일을 존중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황혜영은 오히려 “남편이 바쁘니까 난 하고 싶은 일 하면 된다. 결혼 후 일을 더 많이 만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뒷바라지를 바라기도 할 텐데 제 일을 못 하면서까지 맞추진 말라고 해요. 마음으로는 항상 걱정하고 응원하지만 가끔 비즈니스 파트너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서로 일에 대해선 철저해요. 그래도 마음으로 의지를 하니까 여유가 생겼어요. 제 일에 대한 책임감과 별개로 확실한 내 편이 있다는 게 이렇게 든든한 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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