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곡히 들어선 사람들 사이로 7명 정원의 지하철 좌석 한 켠에 40대 정도 돼 보이는 덩치 큰 남성이 보인다.
소위 '쩍벌남'처럼 다리를 쩍 벌리지도 않고, 신문을 보는 것도 아닌데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영 불편하다.
바로 오른쪽에 앉은 50대 가량의 여성은 비좁은 듯 왼편 어깨를 앞으로 살짝 내고 수시로 자리를 고쳐 앉고, 왼편의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남학생은 휴대전화 게임에 열중하면서도 마치 어깨로 씨름을 하는 것처럼 연신 팔에 힘을 준다.
십수 정거장쯤 지나 드디어 이 남성이 내리자 승객들의 표정은 이내 밝아졌지만, 잠시 후 운동을 많이한 듯한 '몸짱' 남성이 다시 자리에 앉자 어두워졌다.
서울 지하철의 역사는 지난 1974년 8월 15일 1호선 개통으로 시작된 이래 1~9호선의 9개 노선이 운행 중이다.
하지만 40년 가까이 흐른 세월에도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변화된 한국인의 체형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김 모(78) 할아버지는 "덩치가 좋은 사람이 탈 때 특히 불편하다"며 "또 가만히라도 있으면 되는데 떠억 벌리고 앉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럴 때는 싸울 수도 없고 난감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주부 김 모(54)씨도 "몸집이 작은편이라 옆 사람이 몸집이 크면 곤란하다"며 "여름에는 맨살이 닿고, 겨울에는 옷이 두터워 쪼그리고 앉아야 할 때가 많다. 좌석이 좀 더 넓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식경제부가 2010년 발표한 '제6차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사업' 결과 한국인의 체형은 현재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서구화가 진행 중이다.
남자의 평균키는 174cm, 여자는 160cm 내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좌석 불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은 '팔꿈치사이너비'이다.
25~29세 남성 기준으로 팔꿈치사이너비의 평균은 479mm.
여기에 겨울에 옷을 두텁게 입는다고 가정할 때 통상적으로 60mm 가량을 더해야 일반인이 평균적으로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국 최소한 1인당 확보할 수 있는 좌석 너비가 500mm는 돼야 편하게 지하철을 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CBS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지하철 1호선~4호선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메트로의 경우만 해도 구형전동차는 7인석 기준 가로 전체폭이 3050mm, 1인 기준으로는 435mm이었다.
3호선 '신형' 전동차도 7인석 기준 가로 전체폭이 3150mcm, 1인 기준 450mm였다.
최근 만들어진 전동차의 경우 7인 기준석이 100mm, 1인 기준 좌석이 15mm 가량 늘었지만, 편하게 느끼기에는 다소 무리인 셈이다.
지하철 1호선 청량리~서울역 구간과 3호선, 4호선을 담당하는 코레일의 차량 좌석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최신형으로 2005년 제작된 차량의 경우 7인 기준으로 볼 때 전체 길이는 3050mm이고, 1인당 440mm밖에 되지 않았다.
5~8호선을 관리하는 서울시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기존의 차량 좌석을 변화할 계획은 아직까지 없다"며 "7호선 연장구간에 들어갈 신규 차량의 좌석 넓이는 조금 증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레일, 서울메트로, 서울시도시철도공사에 전동차 차량을 제작해 제공하는 현대로템 측과 관계기관 간 연구사업이나, 변화하는 인체치수를 고려한 좌석 제작계획도 현재로서는 없는 상황이다.
현대로템 측이 서울메트로의 의뢰를 받아 2006년부터 신형 차량을 2호선 280량, 3호선 230량만 1인 좌석 너비를 450mm로 늘려 제공했을 뿐이다. 코레일과 9호선에 발주된 차량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시도시철도공사에서는 신형 차량 제작 의뢰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시내에 운행되고 있는 나머지 전동차 차량들은 40여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1인 좌석 너비 430mm'인 상태다.
이에 대해 김기홍 녹색교통운동 공동대표는 "지하철이 개통된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좌석 배치는 여전하다"며 "예전 한국인의 신체는 왜소했지만 지금은 상당히 변화했다. 좌석 간격과 승차 인원 등을 실질적으로 고려해 공청회나 연구 등이 심도있게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도 "과거와 달리 한국인의 키가 커지고 덩치가 커졌다"며 "현장에서 인체공학과 차량 실내디자인 쪽으로 접근하면서 정리할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내 지하철 코레일 승하차 인원은 9억 9,680만명이었고, 서울메트로 관할 역사 내 수송 인원은 15억 952만 9,000명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