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실미도 무장공비 사건. 실미도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건너와 송도에서 시내버스를 탈취, 인질들과 함께 서울까지 진입하던 신원미상의 젊은 군인들이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군경과 대치끝에 수류탄으로 몰살된 그 사건. 사건 사흘 후 정래혁 국방장관, 공군참모총장 등이 줄줄이 옷을 벗었고, 정부에서는 처음, 그들을 무장공비라고 발표했다가 군특수부대원이라고 정정했었다. 그들은 사실 전과자 등으로 구성된 북파부대원이었다.
제3공화국에서 실미도 사건은 금기시되었지만 그 이후 해금되면서, 1968년 1월 벌어진 1.21사태,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폭파하고 박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내려오다가 한 명만 생포되고 나머지는 사살된 이른바 김신조 사건으로 충격받은 박정권이, 당시 북쪽 공작을 도맡아 진행했던 중정과 함께 만든 북파부대가 오히려 청와대를 기습하려던 사건이었다는 것, 그들의 주임무는 김일성을 암살하는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고백하지만, 나, 역시 그들과 같은 HID 출신이다. 군대에서 그들이 맡았던 임무와 비슷한 영역에서 근무했었다. 따라서 나는 그들의 실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공개된 자리에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국가기밀이기 때문이다. 정권은 바뀌었어도 내가 아는 어떤 부분은 여전히 유효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당시 있었던 일의 대부분은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 영화 실미도 포스터 |
따라서 [실미도]는 영화평론가로서 직업적으로 텍스트를 분석하기 이전에, 사적인 감정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물론 허구적 구조물인 영화는 현실에서 소재를 가져왔을 뿐, 내러티브 자체는 극적 짜임새를 위해 변용되어 있다.(마지막 엔딩에서, 실미도 부대원들은 스스로 버스 안에 수류탄을 던져 자폭하는 것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군경의 수류탄 투척으로 몰살당했다. 살아남은 4명의 부대원들은 곧 처형당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은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내용은 간단하다. 북한에서 31명의 무장공비를 남으로 내려보내 청와대를 습격하고 박대통령을 살해하려는 시도가 드러난 1968년 1월 이후, 정부에서는 대응책으로 우리도 똑같이 31명을 뽑아 특수훈련을 시킨 뒤 북으로 파견해서 김일성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1968년 4월 부대가 만들어져서 684부대이고, 그들을 훈련시킨 곳이 인천 앞바다에 있는 섬, 실미도이다.
그러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하고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684 북파부대는 그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아니, 그런 부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서는 절대 안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결국 부대원 전부를 살해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고 그것을 알게 된 북파요원들은 섬을 탈출하여 청와대로 향했던 것이다.
영화 [실미도]는 우리 현실 속의 한 부분을 극화하고 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진정성이 살아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너무 힘있게 전개하려다 보니까 탄력성이 부족해졌다. 임원희나 정재영의 빛나는 감초 연기가 있지만, 영화는 지나치게 어둡고, 무겁고, 딱딱하다. 관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팬들이 과연 움직여줄 수 있을 것인지 확답할 수 없다.
너무 걸작을 만들려는 목적의식, 잘못된 사명의식이 [실미도]를 경직되게 만들었다. 중심인물인 강인찬(설경구 분)이나 최준위(안성기 분)의 상처는 입체적으로 형상화되지 못했고,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 강인찬과 사사건건 부딪치는 1조장 한상필(정재영 분)이나 원희(임원희 분)가 더 돋보이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그런 억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실미도 훈련 장면 |
가장 큰 문제점은 시나리오다. 실제 북파공작원의 훈련과정에 비해 턱없이 얌전하게 묘사된 훈련장면, 객기만 있던 건달들이 치밀한 조직적 훈련에 의해 살인병기로 변해가는 과정의 드라마틱한 요소들은, 상식적 수준에 그친다. 관객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놓쳐버렸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왜 북파부대원들의 그 끔찍하고 악몽같은 훈련과정이 예비군 훈련 정도로 그려졌는지, 기껏 양보해야 유격훈련 정도로 묘사되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의 훈련과정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극한적 고통의 순간으로 가득차 있다.
캐릭터도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 강인찬은 아버지가 북으로 넘어간 소위 빨갱이의 자식이다. 연좌제에 묶여 고통받던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다시 북파부대원으로 발탁되는 과정은 평범하게 그려져 있다. 북으로 넘어간 아버지 때문에 그가 겪었던 고통은 대사로만 전달된다. 가장 나쁜 방법이다. 또 그들을 키웠다가 살해명령을 받은 부대장 최준위의 인간적 갈등은 드러나지만, 안성기의 연기도 정형화되어 있다. 그것은 연기의 미숙이 아니라, 대본 자체가 캐릭터의 입체성을 부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미도]는, 흥행감독이 아닌 영화작가로서, 한국 영화의 진정한 파워 넘버 원이 되고 싶은 강우석의 야심과 한계가 충돌한 작품이다. 그런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영화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 조금 더 유연한 사고로 접근하고 연출했다면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소재는 [배달의 기수]처럼 딱딱해져 버렸다. 그러나 또한 한눈팔지 않고, 앞으로 돌진하는 저력과 진정성이 있다. 이것이 [실미도]가 주는 힘이다. 우리는 그것에 주목해야 한다.
(하재봉.영화평론가)
김일성 목을 따오라는 명령을 받고 출발하는 실미도 대원들,그러나 철수명령으로 되돌아 온다.(사진=영화 실미도의 한 장면) |
안성기와 설경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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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실미도 훈련 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