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잔 째였다. 직장인 김모(31) 씨는 초조한 속내를 감추며 한 잔당 5만 원짜리 와인이 잔에 담기는 걸 물끄러미 바라봤다.
김 씨는 며칠 전 나이트 클럽에서 여대생 박모(21) 씨를 만났다. 먼저 연락을 해 온 건 그녀였다. "앞으로 자주 연락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내일 밥 같이 먹을까요?"
다음날, 부천 송내역 앞에서 박 씨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여대생 박 씨는 자연스럽게 김 씨를 한 식당으로 이끌었다.
"이전에 저기 레스토랑 가 봤는데 괜찮더라. 저기로 들어가요."
식당에 들어간 그녀는 능숙하게 1인당 15만 원 짜리 세트를 두 개 주문한 뒤 "고기엔 레드 와인이 어울린다"며 와인 두 잔을 주문했다.
샐러드와 파스타, 스테이크가 차례로 이어졌고 그때마다 박 씨는 와인 수십 잔을 들이켰다.
2시간의 식사가 끝나고, 웨이터가 김 씨에게 '총액 180만 원'이 적힌 계산서를 내밀었다. 월급쟁이인 김 씨는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생긋 웃는 그녀를 보며 꾹 참았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미안해서 어쩌죠?"
미안한 얼굴을 하던 여대생 박 씨는 그러나 식사 이후 태도를 돌변했다. 연락도 되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든 김 씨는 인터넷 카페 등을 수소문한 결과, 자신과 같은 피해를 본 남성이 여럿임을 알게 됐다.
지난해 12월 김 씨를 포함한 9명의 피해자로부터 진정을 받아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해당 레스토랑의 매출 장부 등을 확인한 결과 여성들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손님을 끌어들여 매출을 올린 정황을 포착했다.
경찰에 따르면 업주 유모(41) 씨는 20~30대 여성 10여 명을 고용한 뒤, 이들을 서울과 인천 등의 나이트 클럽으로 출근시켰다.
여성들은 즉석 만남으로 남성들의 연락처를 받은 뒤 식사 자리를 마련했고 이들을 유 씨의 레스토랑으로 이끌었다.
유 씨 등은 1만 7,500원 짜리 와인을 병째로 팔지 않고 대신 한 잔에 5만 원씩 팔아 매출을 올리는 수법으로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모두 4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와 함께 여대생 박 씨 등 '유인책' 역할을 한 여성 10명도 입건했다.
여대생부터 회사원, 이혼녀까지 직업군도 다양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식사 비용의 10~30%을 수수료로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경찰에서 "밥도 먹고 나이트에서 놀고, 노는 비용도 업주가 내 주니까 좋은 알바라고 생각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천 원미경찰서는 30일 여성들을 고용해 자신의 식당으로 끌어들여 비싼 식사를 하게 한 혐의로 유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모두 720여 명"이라며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