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등을 당한 후 어렵게 해법을 찾아 '코리안 드림'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동포들의 이야기는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감동의 과정을 전달함은 물론 '문제를 해결했던 방법'을 널리 알려 '같은 유형의 문제'가 또다시 반복되는 악순환을 막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현장에서 일하다 추락하면서 큰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좀 와서 도와 달라는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환자의 상태가 매우 심각해 보였다.
환자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하반신을 고정시켜 놓아 반듯이 누워있는 상태였고 대소변은 물론 식사도 누워서 해야 하는 딱한 상황이었다.
환자의 남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남자는 울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숨을 몰아쉬면서 털어놓은 사연은 이러했다.
중국 흑룡강성이 고향인 김씨 부부는 3년 전에 한국에 입국을 했다.
하나뿐인 외동딸을 대학에 보내고 노후에 부부가 지낼 아파트 하나를 장만할 생각으로 한국 땅을 밟았던 것이다.
김씨의 아내는 연약한 여자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남편을 따라 현장 일을 하였다.
다소 힘들기는 하지만 남편과 같이 일하는 것이 안도감도 들고 다른 일보다도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씨 부부의 행복을 시샘이라도 하듯 뜻밖의 사고가 찾아들었다.
앞서 두달 전쯤 스카이차에 올라 외벽 보양작업을 하던 중 6미터 아래로 추락을 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즉시 119를 불러 응급차로 인근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CT, MRI 촬영을 했다.
병원 측은 진단 결과 상태가 심각해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즉시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후송, 수술을 받았다.
올해는 딸이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시점이라 딸의 공부에 방해 될까봐 중국에 있는 딸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정상적으로 일어나 사랑하는 딸을 볼 수나 있을 지 노심초사하는 이들 부부 앞에 회사 측 관계자가 나타나 이 사건은 스카이차를 타고 작업을 하다 발생한 사고라서 산재가 아니라 자동차보험으로 처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산재든 자동차 보험이든 정상적인 치료와 적정한 보상만 이루어지면 상관없겠거니 하고 회사 측에서 알아서 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소식이 없었다.
사고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회사 측에 전화를 해 보니 자동차보험처리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즉, 스카이차가 이동 중에 사고를 당했다면 자동차보험 적용이 되지만 정차한 상태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보험혜택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강하게 요구하자 회사는 책임이 없으니 스카이 차주와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원청회사 입장에서는 산재사고 건수가 많으면 다음에 다른 공사를 수주 받을 때 또는 대외적인 이미지 상 자신의 산재보험을 이용하기 보다는 건설기계의 보험이나 하청에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위와 같이 분명히 현장에서 일하다 사고가 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스카이 차주에게 돌리고 회사는 뒤로 빠져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백히 알려왔다.
이에 김씨 부부는 너무나 얼울하고 회사의 처사가 너무 괘씸해서 현장에 가서 대판 싸움을 하고는 법률적인 도움을 구하고자 사방에 알아보던 중 친구가 노컷뉴스신문을 보고 연락해 보라고 하여 전화를 하게 되었고 담당 노무사와 상담 일정을 잡고 만나 보게 되었던 것이었다.
담당 노무사가 상담을 통해 사건을 위임받아 검토를 해 보니 명백한 산업재해임이 분명했다.
스카이 차가 정차한 상황이든 이동 중 상황이든 현장에서 일을 하던 중 사고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산업재해로 처리를 해야 함이 마땅한 것이다.
설사 이동 중에 사고가 발생해 자동차보험으로 처리가 가능하더라고 해도 산재보험으로 처리를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것이다.
즉시 법적인 근거와 논리를 내세우고 산재은폐죄를 물어 시공사인 원청을 압박하자 적정한 선에서 합의를 하자고 제의가 들어왔다.
그렇지만 회사 측에서 제시하는 보상금액은 산재로 처리를 했을 경우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다.
몇 번의 줄다리기 끝에도 간격이 좁혀지지 않자 회사 측에서 백기를 들고 산재 처리에 적극 협조를 해 주는 것으로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산재접수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승인이 떨어지게 되고 김씨 부부는 그제야 대학 시험을 치르고 합격을 기다리는 딸을 초청할 수 있게 되었다.
3년 만에 딸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는 김씨 아내. 누워서 딸을 맞이해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최근 조금씩 얼굴에 화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자식사랑에 대한 간절함 때문에 생각보다 병상에서 빨리 일어 날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든다.
문의 : 동북아노무법인 이종현 노무사 (02)838-3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