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이에게 밥 먹이는 모습을 보세요. 아이가 먹기 싫어해도 쫓아다니며 '한 숟갈 더, 한 숟갈 더' 안타깝게 말하죠. 관심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끊임없는 관심으로 자기가 소중한 사람인 걸 알아가죠. 세상을 헤쳐 갈 용기를 얻는 겁니다."
달동네 인천 화수동에서 무료식당 민들레 국수집을 꾸려 가는 서영남(58) 씨. 그에게 사회에서 소외 받아 식당을 찾는 모든 사람은 내리사랑을 받아야 할 자식 같은 존재다.
10년 전 3평 남짓 쪽방 크기로 문을 연 민들레 국수집이 이젠 나눔 공동체가 돼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퍼뜨리고 있다.
"밥 먹었나요?" 서영남 씨가 가장 먼저 건네는 인사다.
이유가 있다.
"배가 고프면 변화를 꿈 꿀 수 없다고 봐요. 생존이 위협 받기 때문이죠. 세상으로부터 소외 받은 노숙인이나 출소자들이 스스로 살아갈 용기를 얻으려면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일단 배고픔을 잊고 벼랑 끝에서 벗어나야죠."
서 씨는 2003년 4월1일 민들레 국수집을 시작했다.
가톨릭 수사로 25년을 살다 마흔 넘어 수도원을 나온 즈음이다.
전 재산 300만 원을 들여 마련한 작은 가게와 6인용 식탁 1개, 국수 6상자, 그릇 30여 개가 전부였다.
"노숙인들에게 밥을 준다며 추운 겨울 줄을 세우고 설교하는 모습을 봤죠. '배가 많이 고플 텐데, 서럽진 않을까'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예수께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중요한 점은 배고픈 이들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잔디밭에 둘러앉도록 하셨단 거죠. 한끼 식사도 사람답게 먹을 수 있도록 한 배려. 그 정신을 잇고 싶었죠."
식당 이름대로 처음엔 국수만 대접했다.
간단하지만 맛있는 음식이 국수라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밥으로 바꿨다. 식당을 찾는 이들이 원했기 때문이다.
"이빨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밥을 원하셨죠. 그들에게 밥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배고픔을 견디면서 죽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봤나요? 국수는 허기진 삶을 이어가기엔 부족한 음식이었던 거죠."
서 씨의 전화는 쉴 틈이 없다. 20분에 한 번 꼴로 운다.
어떻게 도울 수 있는 지, 무엇으로 보탬이 될 지를 묻는 기부자들의 문의다.
이들의 관심으로 민들레 국수집은 많게는 하루 400여 명이 찾아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고 먹거리를 댄다.
"시장에 가면 상인들이 음식 재료값을 제대로 안 받아요. 5000원 받을 걸 4000원만 받는 식이죠. 자원봉사자들과 식당을 거친 출소자·노숙인들은 배식이나 설거지를 하겠다며 찾아오죠. 식당은 이들의 관심 덕에 돌아갑니다."
서 씨는 민들레 국수집 인근에 지역 아이들을 위한 무료식당 민들레꿈 어린이밥집과 도서관 민들레책들레, 노숙인쉼터 민들레희망지원센터, 무료로 의복과 생필품을 제공하는 민들레가게를 냈다.
매월 둘째·냇째 토요일에는 인하대 부속 병원에서 민들레진료소를, 월요일에는 민들레 인문학강좌도 연다.
모두가 전국 방방곡곡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들어섰고 돌아간다.
교사, 연극인, 화가, 음악인들이 찾아와 아이, 노숙인들을 위해 재능을 기부한다. 작은 식당에서 이젠 나눔 공동체로 탈바꿈한 것이다.
"자립. 좋아하는 말이지만 요샌 마냥 그렇지 않아요. 혼자만 잘 살면 재미 없잖아요. 여럿이 모여 나누며 가족처럼 사는 모습을 이곳에서 봅니다. 소위 말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귀한 곳, 꼴찌가 대접 받는 세상 말이죠."
서 씨는 지난해 5월 처음으로 가족과 필리핀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빈민가를 찾아 자신이 낸 책의 인세 10%를 후원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로 치면 옛 난지도처럼 쓰레기 산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민들레 국수집으로 이룬 꿈을 그들과 나눠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그곳 아이들이 입을 수 있도록 여름 옷을 모아 보내고 있습니다. 더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그는 민들레 국수집이 자신의 업적으로 보이는 걸 무엇보다 조심한다.
식당을 찾는 노숙인이나 출소자, 아이들이 스스로 변하고 있단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다.
"사람은 스스로 변했다고 느껴야만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타인의 관심은 변할 수 있는 계기를 줄 뿐이죠. 변화는 자신의 몫입니다. 남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하나님의 영역이죠."
그래서 그는 소외 받는 이들의 든든한 디딤돌, 버팀목으로 남길 바란다고 했다.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과 무료식당, 도서관이 인상적이다
"2008년 공부방인 민들레꿈을, 2010년 어린이밥집을 시작했다. 낮 12시부터 저녁 7시까지 문을 여는데, 아이들이 점점 늘어 많을 땐 100명까지 온다. 교육의 중요성은 수천 번 강조해도 부족하다. 지역 특성상 맞벌이 부모가 많다. 그만큼 혼자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고 부모의 관심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상처를 입은 어른들이 다시 용기를 얻으려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은 '어린 시절이 재미가 없었다' '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인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행복이 뭔지를 알려주면 금방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밥집은 끼니 해결은 물론 밥상머리교육의 장이다. 밥집을 열고 얼마 후 민들레책들레 도서관을 꾸렸다.
기증도서들로 아이들이 독서 습관을 갖고 꿈을 키우고 있다. 전국의 이름 없는 후원자들의 덕이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데
"최근 민들레 국수집을 재단 형태로 운영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거절했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 더 잘 돌아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금전적 지원이 아니다. 사람대접, 다시 말해 존중이다.
20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가톨릭이 핍박 받던 때 신도들이 모여 살던 교우촌이 있었다. 그곳은 계급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살던 공동체였다고 한다. 경쟁에서 이기든 지든 공통점이 있다. 외톨이가 된다는 것이다. 이웃을 발견하고 스스로, 함께 꾸려가는 곳으로서 공동체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민들레 국수집은 그런 곳이다."
-무료식당 자리를 화수동에 잡은 이유는
"1994년께 인천 만석동 수도원에 있을 때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뜻 맞는 주민들과 모임을 만들었다. 소개 받은 곳이 소설로도 잘 알려진 '괭이부리말 기찻길옆 작은 학교'였다.
가난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봤다. 이들을 위해 나누면서 살고자 마음 먹었다. 자활하려는 출소자들과 함께 이곳저곳에서 봉사하다 지금 터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식당을 워낙 작게 내 주민들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관심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 노숙인들이 자주 눈에 띄면서 불평도 있었지만 '밥은 줘야 한다'고들 하시더라. 주민들이 가난과 배고픔을 알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다."
-흰 바탕에 색 바랜 노란 글씨, 간판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처음 식당 문을 열 때 간판 그대로다. 일부러 눈에 안 띄게 만들었다. 간판업자가 수십년 만에 처음이라더라.(웃음) 우리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간판문화다.
먼저 손님 눈에 들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간판이 눈에 띄지 않아도 나눔을 주고 받으려는 사람들은 스스로 찾아온다.
지금도 바꿀 생각은 없다."
-설을 앞두고 준비하는 행사가 있는지
"설이라고 특별할 건 없다. 민들레 국수집은 명절 당일 하루 빼고 반드시 문을 연다. 노숙인들에게 가장 힘든 때가 명절이다.
거리의 가게, 무료급식소들이 명절을 쇠려고 문을 닫으면 노숙인들은 당장 끼니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명절 당일 문을 닫는 건 인연을 맺은 출소자 식구들과 잔치를 벌이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왜 민들레인가
"들꽃인 민들레는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져야 할 삶의 모습이라고 본다.
가난과 빈곤은 틀리다. 빈곤은 욕심 가득 할 때 생기기 때문이다. 민들레의 이파리는 나물로 먹고 뿌리는 약용으로도 쓴다.
자신에게 소중한 걸 내놓는 나눔을 실천하는 셈이다. 김남주 시인은 시 '사랑1'에서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고 했다. 박노해 시인은 나눔을 떡잎이 둘로 나뉘어야 자라는 새싹에 비유했다.
크려면, 살려면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민들레 국수집은 이런 나눔의 의미를 함께 하기 위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