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 출신으로 육군종합학교와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장 전 의원은 1979년 12.12사태 당시 정권을 빼앗으려는 신군부측에 정면으로 반발하면서 그의 참담한 가족사는 움트기 시작했다.
장 전 의원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신군부에 맞서다 서빙고분실에 끌려가 두 달간 고초를 겪었다. 이후 이등병으로 강등돼 강제예편됐고 2년간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쿠데타에 협력할 것을 종용하는 신군부에게 전화를 걸어 "야! 이 반란군 놈의 XX들아. 너희들 거기 꼼짝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가서 네 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라며 소리친 일화가 드라마에 소개되면서 참군인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의 부친은 TV뉴스를 통해 보안사에 끌려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곡기를 완전히 끊은 채 매일 막걸리만 마시다가 1980년 4월 세상을 등진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의원과 부인 이씨는 슬하에 1녀1남을 뒀지만, 아들의 삶 역시 비참하게 끝났다. 1982년 낙동강변 야산 할아버지 산소 옆에서 꽁꽁 얼어붙은 시신으로 발견된 것.
당시 아들은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지만, 아버지의 비운에 늘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들의 사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미결 사건으로 종결됐다.
장 전 의원은 아들의 시신을 수습해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애끊는 마음에 죽은 아들의 코와 입에 들어찬 얼음을 혀로 모두 녹여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 부인까지 불행한 죽음을 맞음으로써 장 전 사령관의 가족은 이제 딸 혼자만 남게 됐다. 부인 이씨의 자택에서는 "미안하고 고마웠다. 오래오래 살아라"는 내용의 딸에게 보내는 유서가 발견됐다.
고 장태완 사령관의 영결식은 지난 2010년 7월 29일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재향군인회장으로 엄수됐지만, 이날 신군부 인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고 장태완 사령관 영결식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