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 사건을 소재로 한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 사법부에 정면으로 날 선 칼을 들이대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인만큼 출연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출연료를 받지 않는다면 그 선택은 더더욱 어려울 법하다. 하지만 주인공 김경호 교수 역을 맡은 안성기는 달랐다.
안성기는 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사회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고, 주인공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게 부담되는 건 사실"이라며 "애초부터 석궁 사건에 대해 많이 알았다면 못했을 것 같은데 단순히 시나리오 자체를 보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영화적으로 좋은 소재고, 충분히 해볼만한 이야기였다"는 게 시나리오를 보고 난 뒤 들었던 생각이다.
특히 실제 인물 김명호 교수가 아니라 시나리오에 그려진 인물 자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는 다른 인물, 다른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연기 욕심'이 솟구쳤다.
그는 "그동안 '조금은 안성기화된 인물'을 많이 했다면 이번 역할은 나로서도 새로운 인물을 만난 것"이라며 "그 생각이 이 작품을 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됐다"고 밝혔다. 본인 말처럼, 극 중 안성기의 모습은 지금까지 봐 왔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새로운 안성기의 모습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그는 "내가 주인공을 하면 부드러워지고, 웃음도 많아지고 하는데 이번엔 그렇게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될 수 있으면 어떤 감정에도 치우치지 않고 시나리오에 표현된 감정만 연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모습이 약간 새롭고, 못 보던 모습이라고 표현해 주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또 시나리오에 그려진 인물에 충실하기 위해 실제 인물을 만나지도, 만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안성기는 "실제 인물을 만나게 되면, 연기하는데 있어 개인적인 감정들이 들어갈 것 같아서 아예 배제했다"고 밝혔다. 대신 과거 영화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변호사 역을 맡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외우는데 집중했다.
"법조문도 많고, 대사량도 많다보니 한 번 엉키면 계속 그렇게 되더라.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할 때 혼난 적이 있다. 앞으로는 법정 장면 있는 작품은 안하려고 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걸렸다. 시나리오 받았을 때부터 대사를 다 정리해 계속 외웠다. 연극처럼 완전히 대본을 다 외워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변호사가 아님에도 대사량이 많은 이유는 변호사의 입을 빌리지 않고 직접 자신을 변호하기 때문. 더 나아가 검사와 판사에게도 법전을 들이대며 꼬치꼬치 따진다. 이 영화만의 재미이자 흔히 봐 왔던 법정영화와 차별점이다.
안성기는 "바로 이 부분에서 영화적인 재미가 나왔다고 본다"며 "변호사와 티격태격하면서 동시에 검사와 판사까지 여러 구도가 형성되다 보니 박진감이 넘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안성기의 가슴엔 오로지 연기와 영화만이 존재했다. 제작이나 연출 등에 대한 생각을 묻자 한치의 고민도 없이 "없다"는 답변이다.
"배우 아닌 다른 것은 관심 없고, 나하고 잘 맞는 건 영화인 것 같다. 배우의 길은 끝이 없다. 나이에 맞게 적응을 해야하고, 늘 하던 표현도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기 때문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또 한 우물 쭉 파는 것이 점점 더 깊이를 가질 수 있고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