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부산 좌천동의 한 학원 자습실.
대부분의 10대 청소년들은 등산용 고급 의류 브랜드인 노스페이스 점퍼를 마치 교복처럼 입고 있다.
20명으로 구성된 한 반에 노스페이스를 입고 있는 학생만 13명, 나머지 학생들도 다른 고가 브랜드 패딩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최고 70만원에 이르는 노스페이스 패딩점퍼는 이미 10대 청소년 사이에서는 없으면 '왕따'를 당하는 필수 아이템이다.
가격에 따라 옷 등급이 나눠져 있는 것은 기본이고 브랜드를 광고하는 연예인이 다르기 때문에 옷에 따라 가수를 좋아하는 취향까지 알수 있다.
중학생 김혜민(13)양은 "빅뱅을 좋아하면 노스페이스를 입고, 2PM을 좋아하면 네파를 입는데 대세는 노스페이스"라면서 "방학인데도 다들 교복처럼 노스페이스만 입고 다니는데, 부모님한테 사달라고 하기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장면 2.
부산 동구의 한 초등학교에는 일진 6학년 여학생들은 7가지 무지개 색깔로 노스페이스 패딩 점퍼를 맞춰 입고 몰려 다닌다.
학교에서는 이들을 '칠공주파'로 부른다. 3~4학년들 사이에서 이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고가의 점퍼를 입고 몰려다니며 세를 과시하고 다니는 것이 멋있어 보이고, 브랜드가 있는 점퍼를 입고 다녀야 '잘나가는 선배'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이참인(12)양은 "주말에 남포동에 가면 빨주노초파남보로 색깔을 맞춰 입은 언니, 오빠들을 자주 볼 있다"면서 노스페이스 없이는 바깥에 놀러가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청소년 뿐 아니라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에서도 노스페이스 등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점퍼는 '없으면=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이 때문에 브랜드 점퍼를 둘러싼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부산 사하구 괴정동의 한 PC방에서 고등학생 이 모(18)군이 동생의 친구인 김 모(16)을 끌고가 마구 때린 뒤 옷을 빼앗았다.
자신이 잃어버린 40만원 상당의 노스페이스 점퍼와 똑같은 것을 입고 있다며 훔친 옷을 돌려달라고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이후 이군은 상습적으로 김 군을 협박해 또다른 고가의 브랜드 점퍼와 금품 등 70만원을 빼앗았다.
지난달 19일 오후 5시쯤, 부산진구의 한 골목길에서는 10대 5명이 박 모(13)군을 집단 폭행해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혔다.
박 군이 입고 있던 노스페이스 점퍼를 빼앗기 위해서다.
이들은 박 군의 다른 브랜드 옷 등 백여만 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았다.
경찰조사에서 이들은 브랜드 패딩 점퍼가 유행이지만, 구입할 형편이 되지 않자 우발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 '노스페이스 점퍼 가격 = 청소년 등급'…기성세대 물질 만등주의 답습
노스페이스 점퍼가 계급처럼 자리잡은 청소년들의 문화는 왜 벌어지는 것일까?
문화이론연구소의 한우리 문화평론가는 "또래 집단에 머물고 싶은 소속감과 동시에 튀고 싶은 자존감이라는 이중적인 심리가 결합돼 청소년들사이에서 노스페이스 신드롬이 발생했다"면서 "남들이 쉽게 살 수 없는 고가 패딩점퍼를 입어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하고 싶은 동시에, 또래 친구들이 너도나도 입는 옷을 입지 않아 왕따당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서 노스페이스를 소비한다"고 분석했다.
자본주의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청소년들의 인정받고 싶은 '승인 욕구'가 맞물리면서 이를 해소하지 못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범죄가 일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부산대학교 김문겸 교수는 "노스페이스 현상은 ‘된장남 · 된장녀의 청소년판’으로 볼수 있는데, 명품에 열광하는 한국 기성세대의 소비 습관이 그대로 청소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성적으로만 줄세워지는 한국사회에서 청소년이 또래 사이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성적 이외 요소 중 하나가 브랜드 상품이기 때문에 또래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경제적인 여건으로 좌절될 때 범죄로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고가 점퍼 없이는 친구조차 만나기 힘든 10대 청소년들의 모습이 물질 만능주의에 젖은 기성세대의 풍토를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함을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