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국회의장이 비공개로 본회의를 소집하면서 경호권을 발동하는 등 여당은 미리 공모해 치밀하게 처리 수순을 밟았지만, 민주당은 이를 막기위한 아무런 대책을 갖지 않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의총에 맞춰 '맞불 의총'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비상연락망을 가동시키는데 그쳤다.
김유정 원내대변인은 "오늘 아침 회의에서 비상연락망을 이중, 삼중으로 가동시키고 의원들의 지역구 출장을 최소화하자고 논의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본회의장에 집결하는 시각에 손학규 대표, 김진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 뿐아니라 소속 의원들 대부분은 동료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참석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4시 강행처리가 시작되기 전인 오후 2시 30분과 3시에는 각각 김성곤 의원과 강창일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원내대표실에서 3시 5분쯤 비상소집 문자를 띄웠지만 이미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가득 메운 뒤였다.
한나라당은 본회의장 맞은 편에 있는 예산결산위원회 회의장에서 의총을 열고 곧바로 본회의장으로 직행해 의장석을 점거할 수 있었다.
국회 본회의 소집을 가장 먼저 알았던 강기정 의원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3시 8분쯤 본회의장에 들어갔을때 불이 꺼진 상태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모두 앉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민주당은 기습적인 움직임에 허를 찔렸다는 입장이지만, 한나라당이 강행처리를 수차례 시사한 상황이어서 너무 느슨하게 대처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당 일각에서는 강행처리를 적극적으로 막는 노력을 하지 않아 이를 방조한 '미필적 고의'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 당직자는 "당 지도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우려스럽다"며 "골치 아픈 한미 FTA를 서둘러 처리해주려고 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의총을 열면 우리도 의총을 열고 의원들을 모으는게 당연한 대응책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비상연락망을 가동했어도 실제 의원들이 모이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23일 야권통합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해 놓은 당 중앙위원회에서는 '무기력한'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통합전대와 단독 전대를 놓고 혼선을 빚고 있는 야권통합 논란과 맞물려 당내 갈등은 더욱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