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수사에서 “합의 종용”하거나 “가해자 일관된 주장에 손들어주고”
청각 장애 여성인 A(22)씨는 상습적으로 친척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해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제대로 반항을 하지 않았고 가해자가 술을 먹었다는 이유로 조사 단계에서 합의로 끝냈다.
A씨는 “사건을 다룬 담당자가 이 사건을 가족 간에 해결해야 할 가벼운 문제로 보며 좋게 해결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볼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서울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 민병윤 소장은 1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어렵게 신고된 사건도 일부 수사관이나 사법부 담당자 중에 성폭력 사건을 개인 간에 해결해야 할 가벼운 문제로 다루고 있어 사건이 흐지부지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도가니 사건 전에도 성폭행 관련 사건을 신중하게 다뤘지만 영화 흥행 이후 더욱 신경 쓰기 때문에 합의를 종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 “진술조사자, 사건수사자 달라 여러 번 진술에 피해자 상처 곪아”
지적 장애 여성 B(27)씨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해 신고를 했다. 신고가 접수되자마자 경찰은 B씨를 원스톱 지원센터로 보냈다.
B씨는 원스톱지원센터에서 녹화진술을 했지만 검찰은 진술내용이 불충분하다며 다시 지원센터로 보냈고 B씨는 이틀에 걸쳐 진술을 해야만 했다.
장애여성공감 황지성 성폭력상담소장은 “지적 장애인들 숫자 개념에 희박하고 여러 번에 걸친 일에 대해 날짜를 특정하지 못하는데도 수사 과정에서 특정 날짜를 말하라고 했다”면서 “진술 과정에서 피해자를 거의 고문 당하는 수준으로 지치게 했다”고 말했다.
현재 장애인 성폭력 사건은 성폭력상담소, 여성폭력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 해바라기아동센터, 경찰서 등 여러 기관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그 중 원스톱지원센터와 해바라기아동센터는 피해 진술녹화, 산부인과 및 정신과 진료도 연계하고 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 진술조사 담당 여형사는 진술녹화만 할 뿐 사건 수사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경찰도 흔쾌히는 아니지만 이런 현실을 인정하는 편이다.
한 경찰관은 "실제 수사는 관할 경찰서 강력팀 남자 형사들이 담당하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이들도 필요하면 피해자인 장애 여성을 경찰서로 불러 다시 진술하게 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황 소장은 “진술녹화제도는 피해자들이 초동수사단계에서 진술을 한 번 확보해 재진술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인데 취지가 무색하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또 "진술조사를 하는 여형사는 처음 고소단계에만 개입하고 끝"이라면서 "장애인 피해자는 고소에서 가해자 처벌까지 전반적인 부분을 조력받아 법체계와 피해자 의사소통 매개하는 역할이 필요한데, 그 매개자가 제도적으로 비어있다"고 지적했다.
해바라기 센터 관계자는 “특히 검찰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불러내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 ‘도가니’처럼, 문제 많은 장애인 성폭력 사건 재판
지적 장애 2급 C(37.여)씨는 집주인에게 성폭행을 당해 재판까지 갔다.
하지만 재판부는 B씨가 돈을 받았고 지적 판단력이 어느 정도 있다며 공소사실에 대해 혐의 없음이란 결론을 내렸다.
성폭력처벌특례법 제6조 장애인에 대한 간음조항에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해 추행을 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민 소장은 “수사, 사법기관 또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에 따라 항거불능 용어 해석이 다르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황 소장도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항거 불능 상태가 아니고, 지적장애인의 경우 학교를 다녔고 임신과 출산의 개념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라는 판단은 항거불능 상태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협소하고 제각각”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