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작 그녀는 ‘로코의 여왕’이란 호칭도 노처녀란 수식어도 낯설기만 하다.
‘내 이름은 김삼순’ 속 삼순이보다 ‘여인의 향기’ 속 연재가 더 자신과 가깝다는 배우 김선아. 최근 SBS 주말드라마 ‘여인의 향기’(극본 노지설, 연출 박형기)가 종영한 후 여전히 이연재와 작별하지 못한 그녀를 만났다.
“7개월, 그리고 이틀째...”
‘여인의 향기’는 여러모로 그녀에게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시티홀’(2009년 SBS 방송) 이후 2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여인의 향기’를 처음 접했을 때 스스로 꼭 해야만 하는 작품이라는 직감이 왔다는 것.
“처음부터 결말을 알고 시작했다. 마지막 내레이션 중 ‘7개월하고 이틀째 살고 있다’라는 대사기 있는데 기획단계 때 감독님과 작가님에게 그 얘기를 듣고 이미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여인의 향기’가 초반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됐지만 사실은 휴먼 멜로 느낌이 강하다. 저의 이미지와 ‘여름’이란 시기 때문에 그렇게 포장됐지만 사실은 굉장히 무거운 소재다.”
그도 그럴 것이 ‘여인의 향기’는 먹고 싶은 거 못먹고 사고 싶은 거 못사고 가고 싶은 곳 못가면서 지지리 궁상맞게 살던 여자가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이야기다. 그 속에 가슴 찡한 멜로도 있고, 가족과의 사랑도 있으며 직장 내에서의 갈등 등 모든 것이 총망라돼 있다.
‘7개월하고 이틀째’라는 대사가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는 김선아는 “아픈 사람이든 안 아픈 사람이든 누구나 시한부 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부분이 좋았다. 감독님이 ‘삼순이’를 능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끝나면 더 기억에 남을 작품을 만들어주신다고 장담했었다. 주위에서 너무 좋은 작품을 했다는 말을 많이 해줬고 내 스스로도 정말 그렇게 된거 같아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극중 연재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일명 버킷리스트가 화제가 됐다. 이 드라마를 본 누구라도 한번쯤은 ‘내 버킷리스트는 뭘까?’를 고민해봤음 직 하다.
“죽지 않는 가정을 한다면... 가장 첫째는 미친 듯이 사랑을 해보고 싶다. 이제는 누군가를 막 좋아하고 한없이 가슴 뛰기는 힘든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순수하게, 백지장처럼 가슴 뛰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 그것 말고는 극중 연재처럼 엄마와 가족을 챙기고 싶은 마음은 정말 똑같았던 것 같다. ‘엄마를 매일 웃게하기’ 같은 소원은 사실 마음은 있지만 쉽게 잘 안되는 일이니.
아, 이건 현실 불가능한 일일 수 있겠지만 남자로 태어나보고 싶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자꾸 노처녀나 여자로 규정지으면서 제약이 많다보니 남자가 돼서 그런 것을 없애고 싶다. 특히 30대 여자들의 경우 세상의 편견 때문에 주눅 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제가 남자가 되거나 그런 남자를 만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싶기도 하다. 너무 말이 안되나. 하하하.”
“내 자신이 노처녀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그녀에게 ‘노처녀’라는 딱지가 붙기 시작한 것은 ‘내 이름은 김삼순’ 때부터다. 2005년 당시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었던 김선아는 뚱뚱하고 못생기고 기까지 센 ‘삼순이’를 완벽하리만큼 훌륭히 소화해냈고 그 후 이 시대의 노처녀들을 대변하는 대표 배우가 됐다.
그 후 영화 ‘걸스카우트’(2008년 개봉)와 드라마 ‘밤이면 밤마다’(2008년 MBC 방송), ‘시티홀’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지만 노처녀란 꼬리표는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최고의 배우로 만들어 놓았던 캐릭터가 그녀를 가둔 것이다.
김선아는 이번 ‘여인의 향기’에서도 노처녀 역을 맡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에서 엄마가 하루빨리 결혼하라고 성화고, 한명 남은 동성 친구의 결혼을 마냥 축하해줄 수만은 없는 30대 초중반의 직장인이다.
“왜 김선아 하면 ‘노처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 스스로 노처녀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나는 없는데 세상이,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 내가 뭘 노처녀인가. 슬프게... 아무래도 ‘삼순이’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도 노처녀가 포인트가 아니라 죽어가는 한 여자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 지가 포인트다. 노처녀가 아니다. ‘삼순이’는 분명 노처녀가 맞았다. 그러나 (‘시티홀’ 속)신미래는 10급 공무원이 시장이 되는 얘기였지, 노처녀가 시장이 되는 얘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반응에 대해 신경 안 쓴다.”
“편견이란 게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삼순이’ 때는 촬영하다가 힘들다고 해도 신경도 안 쓰더니 이번에는 조금만 힘들어해도 다들 걱정이 많더라. 사실 보시는 분들은 ‘삼순이’ 쪽이 더 잘맞다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 내 성격은 그렇지 못하다. 평소 소리도 잘 못 지르는 성격이다 보니 ‘삼순이’를 할 당시 연기연습을 받으면서 소리 지르는 연습을 했을 정도다. 그때는 그동안 쌓였던 것을 연기하면서 풀었던 것 같다. 근데 이번 작품에서는 정말 원없이 울었다. 너무 울어서 눈알이 부었을 정도다.”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작품하고 싶어요”
올해 영화 ‘투혼’을 촬영하면서 체중 감량을 시작한 김선아는 ‘여인의 향기’ 촬영에 돌입하면서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죽어가는 연재를 표현하기 위해 더욱 살을 뺏다. 그 탓일까. 몰라보게 날씬한 몸매와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풍겼지만, ‘김선아만의 에너지를 잃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아픈 역할이다 보니 힘이 달린 것도 있지만, 밥을 거의 안 먹었더니 많이 힘들었다. 중간에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질도 많이 부리고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의 4개월간 잠도 안자고 밥도 한 끼 분량을 세끼로 나눠먹고 했더니 사람이 살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나중에는 더 아프게 보이기 위해 다크서클을 만든다고 잠도 일부러 더 안자고 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런 노력들이 더욱 리얼리티를 살려줬던 것 같다.”
2년 만에 드라마 한 편을 끝내고 영화 ‘투혼’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선아는 앞으로 일년에 한 작품 이상은 꼭 하겠노며 “작품을 가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시나리오만 좋으면 하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스릴러나 지독한 악역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나”고 말했다.
“제대로 된 로맨틱 코미디도 다시 해보고 싶다. 얼마 전 여동생이 다음 작품은 뭐 할꺼냐고 묻더니, 다음 번에는 울다 지치는 거 말고 밝은 로맨틱 코미디를 하라고 하더라. 시집가고 나면 그런 것도 마음대로 못하니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하라는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도 그렇지만 다음번에는 아프지 않은 작품을 하고 싶다. 정말 올해는 일년 내내 아픈 느낌이다. 정말 약도 많이 먹고 두통약과 피로회복제는 달고 살았다. 제 몸이 아프니 저도 힘들지만 옆에 있는 사람도 힘들어하는 걸 보고 더 밝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인의 향기’를 하고 난 후 현장 스태프들 사이에서 ‘수도꼭지’라는 별명이 생겼다는 김선아. 하도 울어서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을 것 같다가도 촬영만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눈물이 쏟아졌다. 실신할 정도로 감정을 폭발해 촬영 자체가 기억이 안 난 적도 있다.
“아직까지 ‘시티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못 봤다. 그 당시 일들과 감정이 떠올라 눈물이 나서 못 보겠더라. 올해 겨우 ‘삼순이’를 다 봤다. 이번 ‘여인의 향기’도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힘들었지만 연재가 날 끝날 때까지 버티게 해준 힘이 되어 준 것 같다. 드라마의 메시지 마냥 현재에 충실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내 마음속에 ‘여인의 향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