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라인드'는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시각장애인이란 신선한 콘셉트의 스릴러다. 시각장애인이 보조적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는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지난 10일 개봉돼 블록버스터 틈바구니 속에서 15일까지 약 75만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애초 출발은 지금과 달랐다. 그동안 흔히 봐왔던 남자 형사가 주인공인, 시각장애인 소녀가 조력자로 등장하는 공포영화를 기획했다.
안상훈 감독은 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시나리오를 작업하던 중 '어둠 속의 대화'란 공간전시를 경험하게 됐는데 그 곳에서 시각장애인에게 가졌던 생각과 편견을 깨게 됐다"며 "준비하던 시나리오를 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밝혔다.
"기존에 다뤄왔던 폐쇄적이고 어두운 모습들은 편견과 선입견이었다. 이면에 어두운 면도 있지만 삶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매우 건강했다. '블라인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느끼고, 체험했으면 좋겠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수많은 시각장애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관찰했다. 극 중 시각장애인 수아를 꼼꼼하게 그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하지만 개봉 후 수아 역을 맡은 김하늘이 너무 깔끔하고, 예쁘게 나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에 안 감독은 "시각장애인 여성들이 외모에 신경쓰지 않을거란 것 자체가 편견과 선입견"이라며 "그 분들도 여성적이고, 악세서리는 물론 화장도 한다. 미니스커트와 힐도 신고 다닌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많은 시각장애인분들이 '장애극복 이야기는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며 "그 결과 주변 사람들과 어우러져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악인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탄생됐다"고 전했다.
극 중 수아와 사건을 수사해가던 조형사(조희봉)의 갑작스런 죽음도 이런 관점에서다. 안 감독은 "수아가 여러 난관을 헤치고, 매력적인 한 인간으로 재탄생되는 게 목표였다"며 "만약 조형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그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수아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이 반감됐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섬세하게 시각장애인 역을 소화한 김하늘의 연기는 영화를 한층 재밌게 했다. 연기견 달이의 뛰어난 감정 연기도 일품이다. 안 감독은 "시나리오 쓸 때 수아 역은 국내 여배우 중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그러던 중 김하늘씨를 누가 얘기했는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란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하늘 씨가 영화에선 로맨틱 코미디 이미지가 강한데 드라마에선 스펙트럼이 넓다. 또 드라마 '피아노'에서의 역할도 수아다. 필요한 이미지들을 다 가지고 있었다. 또 달이랑 촬영하는 매순간이 감탄이었다. 동물과 작업하는게 힘들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다 불식시켜주는 '배우'였다."
최근 시각장애인만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안 감독은 "그 분들과 했던 약속을 확인받는 자리였다. 정말 떨렸다"며 "놀라는 부분에서 같이 놀라고, 웃는 부분에서 같이 웃더라. 그 감동은 이루 말할수가 없다"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