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5mm의 물폭탄이 떨어졌던 지난 27일,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안은 종아리까지 물이 차올랐다.
지하철역 출입구의 지붕이 사라진데다 계단의 턱 높이가 제한돼 역 안으로 빗물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조정희(64) 할머니는 “첨벙첨벙 발이 빠져서 바지를 걷어 올리고 역 안을 빠져나왔다”면서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미끄러지기 쉬워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지하철 5~8호선은 694곳의 출입구 가운데 191곳(27.5%)에만, 반면 1~4호선은 출입구 696곳 가운데 533곳(76.5%)에 지붕이 설치돼 있다.
지하철 운영사인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모두 폭우와 폭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붕을 설치하고 싶지만 오 시장 취임 뒤인 지난 2008년 제정된 서울시 조례가 가로막고 있다.
‘서울시 디자인 가이드라인’ 조례는 “지하철 출입구의 지붕(캐노피)은 설치하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단, 설치가 불가피한 경우에는 규모를 최소화하고 디자인을 간결하게 한다”고 돼있다.
이로 인해 지하철 운영사들은 방수 등을 위해 1대당 5,000여만원이 더 비싼 야외용 에스컬레이터 30여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야외용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도 출입구에 지붕이 없다보니 예측할 수 없는 비가 올 때는 잦은 고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결국 지하철 운영사들이 수차례 건의한 끝에 지난해 말 지하철 출입구 지붕에 대한 표준 설치 규격안을 서울시가 마련했지만 심의 절차가 까다로워 여전히 걸림돌이다.
여기에다 출입구의 계단 높이 등이 사실상 제한되고 있어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입구에 모래주머니를 쌓아놓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서울시의 심의 과정에서 높은 계단 턱이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며, 저지대에서조차 대안 없는 낮은 턱이나 경사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지하철 운영사들이 탁월한 디자인 능력만 있다면 심의에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하철 운영사들만 편하자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실상 문제의 원인을 지하철 운영사 측으로 넘겼다.
'비움의 디자인‘을 하겠다는 서울시의 전시행정이 시민불편과 예산 낭비는 물론 사고 위험까지 키우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