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 작가의 작품에 당당히 여주인공 자리를 꿰찬 만큼 욕심과 열정도 남다를 터. 특히 한혜린은 다른 신인 배우들과 함께 1년 동안 SBS 주말드라마 ‘신기생뎐’만 보고 정신없이 달렸다. 이제 ‘금라라’를 벗고 다시 한혜린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간 그녀를 만났다.
연습기간과 방송기간을 포함해 꼬박 1년 넘게 ‘신기생뎐’의 라라로 살았다는 한혜린은 “지난 일 년은 오로지 ‘신기생뎐’ 밖에 없었어요. 너무 한가지에만 몰두했던 터라 지금은 아무것도 실감이 안나요. 그렇지만 끝나고 보니 제가 조금은 더 성숙한 연기자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깊어졌달까”라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한혜린은 지금도 ‘신기생뎐’에 캐스팅된 그 날을 잊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조연’으로 오디션을 본 한혜린은 캐스팅 후에도 자신이 임수향, 성훈과 함께 주인공이 된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에 감독님이 ‘조연이고 악역’이라고 소개하면서 할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하겠다고 했지만 오디션을 보고 통보를 받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그 후 연습을 하러 갔더니 주인공이더라고요. 너무 감사했지만 주인공이란 생각을 버리려고 했어요. 그저 열정을 갖고 진지하게 임하자는 마음뿐이었죠. 특히 50부작(실제 52회 방송) 이다 보니 끝까지 힘이 빠지지 않고 초심을 가지고 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죠.”
임성한 작가의 작품답게 한 역할에 기성배우, 신인배우 가릴 것 없어 수백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스스로 캐스팅된 이유에 대해 한혜린은 “운이 좋았다”는 말로 대신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역할에 비해 제가 예쁘게 생겨서 안하려고 했대요”라며 쑥스러운 웃음을 보인 한혜린은 “원래 기획으로는 표독스럽고 더 센 얼굴을 원했는데, 제가 캐스팅되면서 많이 바뀌었대요. 감독님은 표독스러운 이미지보다 에너지틱하고 당당한 모습을 더 부각시켜주셨죠. 극이 변하면서 가장 많은 변화를 한 인물이 라라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특히 극 중 ‘금라라’의 인생은 평탄치 않았다. 부잣집 딸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철부지가 어느 날 부모도 바뀌고, 기생이 되고, 파혼도 당하고, 결국 국제결혼을 해 아이까지 낳았다. 23살의 평범한 아가씨가 쉽사리 경험할 수 있는 일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제가 모르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을 연기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실제 경험했던 일이라면 ‘난 이랬을꺼야’하며 자신있게 연기하고, 표현에 확신이 있었을 테지만 그렇지 못했으니까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했어요. 한순간도 집중하지 않으면 안됐어요.”
한혜린뿐만 아니라 임수향, 성훈, 백옥담, 전지후 등 주연배우들 모두 이번 작품이 첫 작품이거나 혹은 많아야 두 번째인 ‘생’ 신인이었다. 그런 만큼 중반 넘어설 때까지 연기력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혜린은 자신에게 쏟아진 연기력 논란에 대해 애써 담담했다. “많이 속상했지만, 그것에 집중할 여력이 없었다”는 한혜린은 “우리에게 쏟아지는 평가나 논란에 속상해할 시간이 없었어요. 각자 지고 있는 임무가 막중해 그것을 신경 쓰는 자체가 사치였죠. 그 평가를 받아들이기 전에 또 새로운 것을 쏟아 부어야 했으니까”라면서 지난 시간을 되짚었다.
신인배우들의 연기력 논란에 이어 후반부에는 드라마 설정 자체에 많은 논란이 일었다. 갑작스런 귀신 등장이나 빙의설정, 레이저빔 발사 등 만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내용으로 언론과 대중에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혜린은 “아무렇지 않았다”고 똑 부러지게 표현했다.
“크게 와 닿지 않았어요. 드라마 설정에 대한 가치판단은 내가 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대본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중요하지, 대본을 보고 ‘저건 아니다’ ‘이건 말이 안된다’라고 하는 가치판단은 내 몫이 아니에요. 그건 ‘라라’가 아니라 한혜린의 아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드라마는 픽션이고 오락이잖아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한혜린은 임성한 작가가 만든 ‘스타’에 대해 욕심은 없을까. “처음 조연에 악역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스타가 돼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보자는 욕심은 애초에 없었어요. 불안함은 있었지만 그것을 의식하면 내 자신이 더 갇힐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연기자는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인공이니 계속 주인공을 해야하고, 임성한 작가님의 작품을 했으니 반드시 떠야 한다는 마음이 있으면,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자유롭고 진솔한 배우, 만들어진 스타가 아니라 저 자신을 표현하는 배우이고 싶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간절함이 덜 했다는 한혜린은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근데 꿈이 간절하지 않으니 너무 힘든 거에요. 그래서 쉽게 그만둘 생각도 했는데, 연기연습을 하면서 너무 재밌고 욕심이 나더라고요. 무언가를 표현해내고 상대와 호흡을 맞춘다는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이제는 평생 연기를 할 생각이에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대중들이 나를 ‘계속 보고싶다’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다에요”라면서 당찬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