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이면에는 버스 기사들의 희생이 숨어 있다. CBS는 버스 기사들의 24시간을 집중 취재했다.[편집자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났어요. 애들이 깰까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딱 물 한 모금만 먹고 출근했죠"
새벽 5시. 인천 종합터미널에서 광역버스 기사 김수동(49·가명)씨는 손님 4명을 태운 첫차를 몰고 새벽길을 질주하며 말했다
해가 긴 여름인데도 아직 여명조차 떠오르지 않은 어두컴컴한 도로를 가로등에 의지해 아슬아슬하게 내달렸다.
기점인 서울역을 돌아 다시 종점으로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김씨는 그제서야 겨우 아침밥을 한 술 뜰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아침식사 시간은 단 5분. 점심과 저녁식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직업처럼 식사 시간 1시간을 바라지도 않아요. 최소한 30~40분 정도는 줘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게 아닌가요?"
"밥을 먹고 소화는 운전하면서 해야한다"는 김 씨의 말을 증명이나 하듯이 종점에서 스치듯 지나간 버스기사 대부분의 손에는 위장약이 들려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맞춰야 하는 '배차 간격'
이렇게 버스 기사들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식사를 해치워야 하는 이유는 '배차 간격' 때문이다.
배차 간격을 위해서 식사는 물론이고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리적인 욕구조차 희생해야만 하는 게 버스 기사들의 현실이다.
"앞차와 간격이 벌어지면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손님들한테 욕설을 들을 뿐 아니라 수익이 떨어지니 회사가 가만 두지 않는다"고 김 씨는 말했다.
이런 배차 간격의 압박은 심지어 과속과 신호위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다른 버스기사인 석재남(44·가명)씨는 "신호위반은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는데 과속은 어쩔 도리가 없다"면서 "고객이나 회사에게 욕먹는 것도 싫지만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차고지에 도착해야 쉬는 시간이 늘어난다"며 한숨을 쉬었다.
◈손등을 물어뜯으면서 졸음운전과 사투
쉴 새 없이 차고지와 기점을 오고가길 수차례. 버스 안 시계가 어느새 퇴근 시간인 오후 6시를 가리키자 차량의 흐름은 눈에 띄게 더뎌졌다.
속도가 느려지는 가운데 차창에 비추는 버스 기사가 별안간 손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는 졸고 있었다.
"졸음운전...미치고 팔딱 뛰죠. 손등을 물어뜯어 상처를 내도 졸음이 가시질 않아요. 환장하는 거에요"
서울 양재동과 인천을 오가는 이동준(48·가명) 기사는 피곤이 극에 달하는 퇴근 시간 정체를 맞아 흐릿한 눈빛으로 졸음을 쫓기 위해 안간힘을 쓰듯 말했다.
졸음으로 인해 경미한 사고라도 발생하면 그 날로 사표를 써야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 씨는 "간단한 접촉사고가 나도 그게 외제차거나 승객 10명 정도 경미한 부상을 당하면 면허 취소를 선택할 수 없어 사표를 쓰는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 운행을 끝마치고 차고지에 들어서 시계를 보니 이미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 하루가 다 지났다.
◈쉬는 날 수면 유도제 없이는 잠도 못자
"쉬는 날 잠을 자다가도 습관이 돼서 운전하다 잠들었다고 착각해서 깜짝 놀라 깨요"
수습 기자가 만난 버스기사들은 한결같이 하루 운행하면 다음 날 하루를 쉴 수 있지만 이 시간조차 편하게 쉴 수 없다고 했다.
운행하면서 강박적으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니 정작 잠을 자야하는 때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이다.
잠을 자지 못하면 다음날 운행에 졸음운전을 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수면유도제를 먹는 기사들이 많다.
버스기사들이 이렇게 일하고 손에 쥐는 월급은 180만원 남짓.
먹고 싶고, 자고 싶고, 배출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가며 수면장애, 위장장애, 허리디스크 등의 질병을 얻어가면서까지 일한 댓가 치고는 턱 없이 부족하다.
동행 취재를 하는 가운데 한 버스기사가 절규하듯 내뱉은 말은 이들의 열악한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야. 사람 이외 사람이야 우리는... 인간도 아니야 인간 밑바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