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현실이 여대생들 집회현장으로 몰아
반값 등록금 시위에 3차례 참여한 대학생 김지윤(26.여)씨도 시위현장을 가득 메운 여대생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국가고시에서 여성들의 합격률이 절반을 육박하고 수석 합격자나 졸업자 역시 여자들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시위마저도 여대생들이 주요 동력이라는 점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대생들의 팍팍한 취업현실이 시위로 이어지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다.
김 씨는 "학점이나 대외활동 경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업시장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이런 불평등한 현상에서 비롯된 여대생들의 불만이 여대생들을 시위현장으로 나오게 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대학생 오은성(25.여)씨는 "여대생들은 재학 중이든 졸업 후든 설 자리가 없다"며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에 여대생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박찬옥경 연구원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도 좋은 일자리를 갖기 어렵다는 것을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여대생들이 등록금 같은 대학 내 부조리에 대해 더 심각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가 고스란히 반영된 것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 장상번(20)씨는 "남학생들이 시위에 나가지 않는다기 보다 시위에 나가는 여학생들의 숫자가 늘어났다는 시각이 맞다"며 "사회가 변화하면서 여성들 힘이 좀 세지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이슈를 주도하게 되고 이런 경향이 반값 등록금 시위현장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오혜원(19.여)씨도 "대학진학률이 남녀 반반씩인데 여대생들이 시위대의 절반 이상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본다"며 "지금까지는 남성위주의 문화가 강해서 여성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특이한 것으로 봤지만 앞으로 여성들의 사회참여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라고 내다 봤다.
87년 6.10 민주화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우상호 민주당 전 대변인은 "전투적이였던 시위문화가 평화적이고 문화적으로 바뀌면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場)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시위 주도자가 여대생이다 보니 나타나는 착시현상
여성들이 많아 보이는 것이 일종의 착시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위를 주도자도 여성이고 발언자도 여성이고, 마무리 집회를 하는 동아리도 여대 동아리다보니 남자들이 아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
실제로 반값 등록금 시위를 주도하는 한국대학생연합의 대표는 숙명여대 학생회장이고 서울시내 4大 대학 동맹휴업을 주도한 학교 중 2개 학교도 여대(이화여대와 숙명여대)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실제 집회 참여자들 중에서 여대생들이 특별하게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되지는 않는다"며 "과거과 비교해 집회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더 눈에 띄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남학생들이 집회를 주도했지만 2000년대 들어와서 여학생들이 여러가지 사회문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여대생들이 집회에서 더 많은 것 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세종리더십개발원 김은경 원장도 "여성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서 기록되지 않았을 뿐 3.1운동과 민주화항쟁 등 역사의 전환점에서 여성들은 꾸준히 참여해왔다"며 "반값 등록금 집회가 여성들이 사회 변화의 주체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살인적인 등록금을 피해 일찍 군대에 가는 남학생들이, 제대를 하고 나서는 본격적인 취업 준비에 나서다보니 시위현장에 나오기 힘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사회 각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여성 파워는 이제 시위현장에서도 증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