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이렇자 인사동 노점상들도 뒷골목으로의 이전에 반대하며 구청과 연일 충돌하고 있다.
종로구청은 지난 2009년 도시 미관을 위해 대로변의 노점상을 이면도로 안으로 이전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노점상들에게는 불법인 노점을 합법화시키고 노점을 한 군데로 모아 '특화거리'로 지정해 홍보도 대대적으로 펼치겠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이 결과 구청의 말을 믿고 600여곳의 노점은 인파로 붐비는 대로변에서 밀려나 구청이 마련한 종각 젊음의 거리, 낙원동 다문화거리, 화신 먹을거리촌 등 7곳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구청이 약속했던 장밋빛 청사진이 이뤄지기는커녕 변변한 홍보 활동 조차 제대로 없어 노점상들은 매출 급감으로 고통받고 있다.
종로구청 장밋빛 청사진에 속아 '특화거리' 이전 노점상 매출 급감
종각 젊음의 거리에서 만난 장모(56·여)씨는 남편의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종로 YMCA 앞에서 떡볶이를 파는 노점을 시작했다가 종로구청의 특화거리 조성으로 지금 있는 젊음의 거리로 2009년 3월 이전을 했다.
이 과정에서 노점 개수 제한으로 업종도 의류업으로 바꿔야 했으며 합법화의 대가로 1년에 108만원의 도로사용료를 납부해야했다.
그래도 종로구청이 특화거리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말만 철썩같이 믿고 희망을 가졌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장씨는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날기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장씨는 "옮기기 전에는 하루에 많게는 20~30만원은 벌었는데 이제는 하루에 매출 5만원 올리기도 어렵다"면서 "20대 아들 세 명이 아직 취업을 못해 같이 살면서 살림 꾸리기가 버겁다"고 하소연했다.
'만물거리' 2년 사이 160여개 노점 매출감소로 120개 사라져
창경궁로에 위치한 만물거리는 특화거리 중에서도 저주받은 곳으로 꼽힌다.
거리가 일방통행로라 유동인구가 거의 없고 그나마 다니는 사람도 나이 많은 노인들이라 노점상들의 물건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종로구청은 이곳으로 옮긴 노점상들에게 만물거리를 알릴 수 있는 홍보 아치를 세워주고, 일방통행로를 양방향로로 바꿔주겠다고 약속했지만 2년 동안 아무것도 이행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난 최모(75) 할아버지는 11년 전 당뇨를 앓고 있는 아내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종로4가에서 노점을 시작했다.
벨트나 열쇠고리, 시계 등을 팔면서 같이 사는 아들 내외에게 손 벌리지 않을 만큼 수입을 올릴 수 있었지만 2년 전 만물거리로 옮기면서 모든 게 변했다.
최 할아버지는 "개시조차 못하는 날이 많아 벌이가 예전의 십분의 일도 안 된다"면서 "나와서 1~2만원 파느니 안 나오는 게 낫다는 노점상도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바로 옆에서 면도기나 배터리 등 잡다한 물품을 파는 김모(52)씨는 "구청은 일단 우리를 쫓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약속은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며 분개했다.
종로구청 "요구하는 사항 다 들어줄 수 없는 노릇"
이런 노점상들의 고통에 대해 종로구청은 "요구하는 사항을 다 들어줄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원칙론을 폈다.
종로구청의 한 관계자는 "홍보 구조물은 현대 도시 미관상 맞지 않아 디자인 심의에서 제외됐지만 일부 거리는 홍보구조물이 건립된 곳도 있다"며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에서 방송도 해줬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종로지역상인연합회 이구식 회장은 "특화거리 활성화 계획을 구두로 약속했던 서울시 환경개선관리단이 2010년 6월쯤 노점상 입주와 동시에 사라졌다"면서 "그 뒤 활성화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사정이 이러니 인사동 노점들이 무작정 뒷골목으로 이전시키려는 종로구청의 방침에 극렬 반발해 40여일 동안 대치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 노점들로부터 믿음을 잃은 종로구청이 전향적인 해결방안을 내세워 신뢰를 회복하지 않는 한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한국의 전통거리에서 볼썽사나운 난투극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