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지성교육이 미래사회 여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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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의학, 화학, 물리학, 경제학 부문의 노벨상 수상자가 우리나라에서 아직 안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중등교육이 그동안 '암기위주의 주입식 입시교육'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물론 요즘에는 초등학생까지도 그 뒤를 따르고 있어요." 취임 2주년을 맞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을 지난 24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김 교육감은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미래사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지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전 경영학과 교수 재직 시절의 일화를 소개했다.

■ 중등교육의 핵심은 '사고력 향상'

"신입생들에게 경영학과 지원 동기를 물어보면, '유명 재벌그룹의 CEO처럼 되고 싶다'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식의 답변이 많이 나옵니다.

경영학도 그 안에는 다양한 세계관과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자기 전공의 표피적인 측면 만을 주로 이야기하더군요. 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대학사회가 학생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자유롭게 학문과 세상을 탐색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학 서열주의'와 '학벌주의'에 파묻혀 학생들에게 오로지 상위 서열에 진입하기 위한 '무한경쟁'만 부추기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카이스트 사태에서 보듯이 대학교육 자체의 왜곡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김상곤 교육감의 시각이다.

이에 반해,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선진자본주의국가의 교육시스템은 우리와 큰 차이를 보인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의 중등교육에서는 학생들의 사고력 향상을 가장 중시하지만, 우리 교육에서는 이것이 부족하다.

이는 시험문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단순히 시험의 출제형태가 주관식이냐 객관식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2011년 프랑스 대학입학자격시험의 철학논술문제를 보자.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공정할 수 있는가? (문학계열)', '역사가의 역할은 심판을 내리는 것일까? (상경계열)', '예술은 규칙이 필요없을까? (이공계열)' 등 고도의 사고력을 요하는 주제를 놓고 자신의 생각을 펼치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미 상상력이 풍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학생들이 조금만 노력하면 인터넷 등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정보의 바다를 헤엄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개별 정보를 습득하고 암기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이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의 입장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죠.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이런 교육시스템은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는데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 "고도의 분석·예측력 갖춘 인재가 미래사회 주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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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생각하는 미래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에게 20년 뒤의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물었다.

"미국의 직업연구가들은 약 20년쯤 뒤에는 현재의 직업 가운데 70% 정도는 바뀔 것으로 전망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사회변화의 속도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회 변화가 빠른 만큼 당연히 지속적으로 혁신이 필요한 세상이 올 겁니다."

김 교육감의 전망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선 미디어분야는 과거의 쿨(Cool) 미디어와 핫(Hot) 미디어를 거쳐 이제는 스마트(Smart) 미디어가 점차 힘을 얻어가면서 10년 후에는 완전히 일반화될 것이다.

경제분야도 급속한 변화를 맞고 있다.

인스턴트 이코노미(즉석 경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비자의 욕구가 오래가지 않고 트렌드의 순환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다.

늘 소비자와 교감하면서 이런 흐름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어떤 비즈니스도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인간관계 역시 온라인 속에서의 네트워킹이 지금보다 훨씬 긴밀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인간관계의 통합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이뤄지면서 커다란 정치·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겁니다.

당연히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하는 사회를 이끌어갈 능력을 심어주는 역할을 중등교육이 담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분화된 학문에 대한 개별 지식보다는 세상에 대한 분석력과 예측력, 통찰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초·중·고교 1학년까지는 '창의지성교육'에 집중해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최근 이 같은 취지를 바탕으로 현행 '3+3 체제'인 중·고교 교육과정을 '4+2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학교 3년과 고교 1학년 교육과정을 묶어 4년 동안은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고 예체능교육을 강화하는 창의지성교육을 시행하는 방안이다.

그리고 고교 2~3학년 교육과정을 창의적인 진학·진로교육기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사람의 능력을 측정하는 데 주요 요소로 떠오른 창의성과 상상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창의지성교육을 통한 종합적이고 통섭적인 학문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학문능력이 바탕이 된다면, 2년간의 창의형 진학진로교육으로도 충분히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봅니다."

4+2 체제도 결국은 그동안 경기교육이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혁신교육'의 또 다른 형태다.

그리고 이 또한 성공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 김 교육감의 설명이다.

"정부의 교육정책이 비록 일방적이고 편향적으로 나가더라도 경기도에서는 그동안 많은 선생님이 좋은 교육을 위해 창의적인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선생님의 경험과 출판물 등에 고스란히 축적돼 있습니다. 국제적인 개혁사례를 참고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경기도교육청에는 15만 명에 달하는 우수한 교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공공조직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박사학위 소지자만 800여 명에 달합니다.

이 엄청난 싱크탱크를 제대로 가동할 수 있는 메커니즘만 만들어 낸다면 학부모님들이 바라는 공교육의 정상화는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 교사가 교육 개혁의 가장 중요한 주체

김 교육감은 대한민국 교육을 바로 세우고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교사라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교사 되기가 어렵고 교사의 학력 수준도 높다.

하지만, 이처럼 공부 잘하는 최상위 학생들이 교직사회로 진입하는데도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김 교육감은 교사들의 마인드도 중요하지만, 먼저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전문성, 열정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는 교육자라는 자긍심과 자존감을 가지고 자기의 소명을 다합니다.

그런데 과다한 잡무로 말미암아 그동안 교사가 자존감을 가질 수 없었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학생 교육에도 충분한 자율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사가 자기의 에너지를 100% 학생들에게 쏟을 수 있도록 행정업무를 덜고 새로운 연수시스템을 시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최근 스승의 날을 맞아 도내 교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화제를 모았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교육은 제도나 환경과 무관하게 선생님의 헌신만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훌륭한 선생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중략) 결국 최고의 교육 혁신은 '훌륭한 품성과 능력을 지닌 교사들'이 집단 지성을 발휘하면서 교육과정, 수업, 평가 등 혁신의 주체로 서는 일입니다."

김상곤 교육감은 지난 2년간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등 굵직굵직한 문제를 힘있게 추진하면서 우리 교육계에 새 바람을 불러왔다.

하지만, 교육 혁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그 이유는 뭘까? 그의 편지에는 '아무리 포장해도 아이들은 어른의 위선과 진실을 직관적으로 안다'는 신념과 '인간 역사는 더 자유롭고 평등한 삶과 사회를 향해 발전해 왔다'는 믿음이 강하게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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