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가 되면 먼저 소속팀과 재계약 협상을 벌인다. 여기서 결렬되면 이적 시장에 뛰어든다. 그런데 영입의향서 제출이라는 이상한 제도가 있다. FA가 팀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원소속팀을 제외한 나머지 9개 구단이 해당 FA의 영입 여부를 결정한다. 영입의향서를 받지 못한 선수는 다시 원소속팀과 협상을 벌어야 한다.
20일 오후 6시가 FA에 대한 타구단 영입의향서 제출 마감시한이었다. 올해는 44명의 FA 가운데 19명이 재계약을 선택했고 20명이 이적 시장에 나왔다. 정상급 가드 강혁, 슈터 조상현 등 굵직굵직한 이름도 포함됐다. 하지만 정작 영입의향서를 받은 FA는 2명(대구 오리온스 석명준, 원주 동부 이적…울산 모비스 이승현, 오리온스 이적)에 불과했다.
최근 5년간 통계를 보자. 2007년부터 올해까지 FA 자격을 얻은 총 174명 가운데 '사인 앤드 트레이드(sign and trade)' 형식이 아닌 순수 FA 이적 계약을 통해 유니폼을 바꿔입은 선수는 18명에 불과하다. 10.3% 밖에 되지 않는다.
올해는 역대 최저의 이적률을 보였다. 총 44명의 FA 중에서 단 2명만이 FA 제도를 통해 이적했다. 4.5%다.
이처럼 FA 이적 시장이 활발하지 않은 이유는 과도한 보상 규정 때문이다. KBL 규정에 따르면 전년도 연봉 서열 30위 이내의 선수를 영입할 경우 엄청난 출혈을 감당해야 한다. 보상선수 1명에 FA 영입선수 연봉 100% 금액을 보상하거나 보상선수없이 연봉의 300% 금액을 건네야 한다.
강혁은 영입의향서를 받지 못했다. 지난 시즌 연봉 3억원으로 랭킹 12위에 올라있는 그다. 여기서 가상의 예를 들어보자. 가상이다. 대구 오리온스가 강혁을 FA로 영입하고 싶어한다고 치자. 그럼 선수 1명(강혁을 포함한 보호선수 4명을 제외한 1명)에 현금 3억원 혹은 선수없이 현금 9억원을 원소속팀 서울 삼성에 보상해야 한다.
강혁이 훌륭한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만 35세로 적잖은 나이에 보여줄 것보다는 보여준 것이 많은 선수다. 만약 당신이 오리온스 관계자라면 선뜻 영입에 나서겠는가. '사인 앤드 트레이드'가 성행하는 이유다.
또한 창원 LG의 가드 김현중이 올해 FA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현중의 연봉은 서열 30위 밖에 있어 보상 부담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김현중은 재계약을 선택했다).
이적시장에서 활발한 러브콜을 받는다 해도 선수에게 팀을 고를 자유는 없다. 영입의향서 제도 탓이다. 선수는 자신에 대한 영입의향서를 제출한 구단 가운데 가장 높은 연봉을 제시한 구단을 의무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예외는 없다. 만약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입단 거부선수'로 정의된다. 5년간 선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뒷돈 거래를 막기 위해 KBL이 도입한 장치다.
FA가 되더라도 팀을 선택해 이적할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선수들의 불만은 상당하다. 하지만 구단 중심적인 제도 앞에서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다. 프로야구와는 달리 프로농구에는 선수협회가 따로 없다.
영입의향서를 제출하는 구단은 원소속 구단에서 제시한 첫해 연봉보다 많은 금액을 제시해야 한다. 여러 구단의 경쟁이 붙는다면, 자유가 없다는 측면을 제외하고 선수에게 나쁘지 않은 조건같아 보인다.
반대로 부작용도 있다. 과열 경쟁에 의해 선수의 연봉이 실력 이상으로 '뻥튀기'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 해에 그런 장면이 여럿 나왔다. 소문은 소문을 낳고 또 부풀리는 법. 한 구단은 각기 다른 연봉이 적혀있는 세장의 영입의향서를 놓고 마감시한까지 고민하다 가장 비싼 금액을 제시했다. 가장 낮은 금액을 제시해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안 것은 뚜껑이 열린 후였다.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정상적인 방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FA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