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12월, 부산 해운대경찰서 사이버범죄팀 사무실에 허름한 옷차림에 등에 배낭을 멘 30대 남성 한 명이 찾아왔다.
자신이 인터넷 물품사기를 쳤으니 구치소로 보내달라는 이 남성의 등장에 수사관들도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경찰에 자수한 김 모(34) 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생활을 해오다 지난해 8월 아내와 성격차이로 헤어진 뒤 '바다가 좋다'는 이유로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노숙생활을 하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모두 7차례에 걸쳐 천만 원 상당의 인터넷 물품사기를 벌였다고 스스로 털어놨다.
경찰은 김 씨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수를 했고, 앞으로 다시는 사기를 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등 반성의 기미가 보이는 점을 감안해 김 씨를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더욱이 추운 날씨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김 씨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부산 노숙인 센터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완연한 봄기운이 감돌던 지난 5월 9일 김 씨는 수영구의 한 고시원에서 자신을 도와줬던 경찰들에 의해 검거됐다.
사정은 이렇다. 경찰의 도움으로 한 달여간 노숙인 쉼터에서 겨울을 보낸 김 씨는 날이 풀리자 또다시 인터넷 사기행각에 발을 담갔다.
김 씨는 과거 자신이 취미생활을 하며 습득한 카메라관련 지식을 이용해 고가의 카메라와 카메라 부품을 거래하는 모 사이트에서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지식과 물건에 대한 평가를 담은 글과 함께 사진을 올리는 수법에 피해자들은 손쉽게 걸려들었고 김 씨는 지난 2월부터 두 달여 동안 14명의 피해자로부터 940만 원을 받아 챙겼다.
김 씨는 이렇게 챙긴 돈으로 고시원을 구하고 옷을 사 입은 뒤 광안리 인근 클럽을 다니며 흥청망청 유흥을 즐긴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3월 클럽에서 만난 한 여성과 인근 모텔에서 하룻밤을 지낸 김 씨는 이 여성으로부터 자신의 지갑을 도난당하기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용불량 등으로 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던 김 씨의 지갑에는 사기로 벌어들인 돈 등 5만 원권 지폐로 천만 원 가까운 자신의 전 재산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달여 동안의 김 씨의 범행은 결국 자신을 도와줬던 경찰의 수사에 덜미가 잡혔고, 경찰은 김 씨에 대해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해운대경찰서 사이버범죄수사팀 김회성 팀장은 "쉽게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이 또다시 범죄의 늪으로 발을 들이게 했다"며 "한 때 진정으로 반성을 하던 마음이 있었던 만큼 교도소에서 제대로 된 뉘우침을 깨닫고 나오길 바란다"고 씁쓸한 속내를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