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단속에 나서야할 고용노동부는 노동자들의 고발이 없이는 육아휴직 거부 사업주를 가려내 처벌하기 힘들다며 사실상 관리, 감독에 손을 놓고 있다.
세계적인 다국적기업 J사에서 10년 동안 일한 이 모(39)씨는 지난해 4월 육아휴직을 신청하면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달이 넘도록 이 씨의 육아휴직신청서 결제를 미루던 해당 부서 임원 A이사는 1년 뒤 사직서를 미리 받는 조건으로 육아휴직을 받아주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A이사는 "여성직원들도 잘 쓰지 않는 육아휴직을 남성직원이 쓰는 예를 보지 못했다"며 육아휴직을 가면 퇴사를 하더라도 다른 회사로 옮기는 데도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5월부터 육아휴직을 해야 했던 이 씨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사직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씨는 육아휴직신청에 따라 해고권고를 한 J사를 지방노동위원회에 고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J사의 해당 임원은 "회사가 남성 직원에게도 육아휴직을 줘야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육아휴직을 가지 말라고 했다"면서도 "육아휴직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인수 인계자를 구할 때까지만 휴직을 미뤄달라고 했을 뿐 사직을 권고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육아휴직 신청자들에 대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사업장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고용노동부는 사실상 이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2008년 1월1일 이후에 태어난 영유아가 있는 노동자들은 성별에 관계없이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각각 1년씩 최장 2년을 사용할 수 있다.
노동자의 육아휴직 신청을 거부하는 사업주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육아휴직 신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벌금 처분을 받은 사업주는 단 한 곳도 없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자가 육아휴직신청을 거부한 사업주를 고발하면 고용부가 시정조치를 내릴 수 있지만 지금까지 접수된 고발 건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며 육아신청거부로 처벌받은 사업장이 없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개별 고발접수 없이 정부가 나서서 육아휴직 거부 사업주를 가려내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단속의 사각지대 속에 육아휴직 거부사례는 민간에서 집계한 사례만도 적지 않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116명의 노동자가 사업장 안에서 임신, 출산 등을 이유로 한 인사 상 불이익과 산전후휴가, 육아휴직에 관한 문의를 위해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전문가들은 퇴사를 감수하지 않고, 육아휴직을 거부하는 사업주를 노동자들이 고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부처가 수시로 사업장 점검 등 실효적인 조치가 나오기 전에는 육아휴직 거부 사업주가 처벌받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민주노총 박승희 여성위원장은 "사업주의 눈치를 보느라 육아휴직도 쓰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인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사업주를 고발하겠느냐"며 "육아휴직을 거부하는 사업자에 대해 처벌 요구가 없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는 정부가 과연 일가정 양립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단속의 사각지대 속에 일자리를 담보 잡힌 육아휴직자들은 오늘도 힘겨운 육아생활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