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는 더럽다?'…편견을 깨는 한 남자의 이야기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다②] 70마리 비둘기를 품안에…네이버 카페 '꼬꼬천국' 운영자 황재한씨 인터뷰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너도나도 녹색의 세상을 꿈꾸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는 삶을 이야기 하지만 '공존'이라는 주제는 아직 무겁기만 하다. 노컷뉴스에서는 생활 속에서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지구의 웃음을 되찾기 위해 주어진 자리에서 작은 변화를 일궈내는 사람들을 만났다.[편집자 주]

# 관악구 미성동에 살고 있는 회사원 A(24)양은 길에서 비둘기를 보면 비둘기가 푸드덕 날까 두려워 아예 다른 길로 돌아간다. 비둘기가 날면 날개에서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가 떨어져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동대문구 이문동에 사는 대학생 B(26)군은 최근 선배들과의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귀가하던 도중 길바닥에 구토를 했다. 술기운에 청소도 않고 집으로 가버린 B군은 다음날 아침, 비둘기 서너 마리가 자신의 토사물을 쪼아 먹는 모습을 목격하고 매우 찜찜한 기분을 느꼈다.

도시에 사는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으로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이미지를 주던 것은 옛말이 됐다. '평화의 상징'으로 고고한 품위를 지키기엔 도시 환경이 너무나도 열악하고 척박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특히 대도시 한 가운데서 종종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야생조류 중 하나인 '비둘기'는 지난 2006년 환경부로부터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

그런데, 이 '유해한' 비둘기가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애완동물'로서 사랑받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경상북도 영주시에 살고 있는 황재한(남.36)씨는 10년 째 비둘기를 기르고 있다.

현재 그가 기르고 있는 비둘기 수는 약 70여마리. 세세히 종류를 나누면 무려 15종의 비둘기를 키우고 있다고.

길거리 비둘기 중 대다수가 '애완용 집비둘기 종'에 속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애완용으로 비둘기를 키우는 것이 '특이'하게 비춰지지 않겠지만, 젊은 나이에 수십마리의 비둘기들의 아빠가 된 황씨의 사연은 남다를 듯 한데.

"군 복무 당시 어미 잃은 산비둘기 새끼 한 마리를 기르게 되면서 비둘기와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복무 당시 보급병이었는데, 식재료 창고 안에서 남몰래 키웠어요. 그 후 제대하고 나서 시골의 5일장에 들렀다가 비둘기 한 쌍을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비둘기들을 키우게 됐습니다. 장터에서 제게 비둘기를 파셨던 분과는 아직까지도 연락하고 지내며 소중한 인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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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는 평일에는 직장 근무 때문에 아침에 모이를 주고 저녁에야 비둘기들을 다시 만날 수 있지만, 비둘기들의 하루 일과에 대해서는 손바닥 보듯 훤하게 잘 알고 있었다.

"아침에 모이를 주면, 비둘기들은 모이를 먹었다가 다시 게워냅니다. 새끼들에게 먹이기 위해서죠. 한참을 그렇게 한 후에 새끼들이 배가 부르면 자신들을 위해 모이를 먹습니다. 새끼에 대한 열정이 강한 동물이죠. 알을 낳으면 낮에는 수컷이, 밤에는 암컷이 번갈아 포란을 하며 키워냅니다. 최근 날씨가 따뜻해져서 한낮엔 낮잠을 잘 겁니다. 또 물목욕을 좋아해서 목욕도 자주 즐깁니다."

황씨는 비둘기가 목욕을 즐긴다는 점을 들며 일반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둘기가 더럽고 게으른 동물이 아니'라고 전했다.

조류학자 윤무부 교수도 "도시 비둘기가 더러워 보이는 이유는 전적으로 환경 탓"이라고 지적하며 "비둘기는 물이 있으면 하루에 서너번씩 물목욕을 즐기는 동물이다. 일부에서는 비둘기 날개짓에 병균과 바이러스가 떨어진다고도 하는데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이라고 '비둘기는 더러운 동물'이라는 편견에 일침을 놓았다.

'도시'라는 환경이 비둘기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살기에는 매우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 도시의 '공해'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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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찌됐든 비둘기는 도시의 천덕꾸러기다. 비둘기 배설물이 구조물이나 건물을 부식시키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황재한씨도 "대중의 편견만큼 독하다고 표현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새장 등이 부식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친환경 조류 퇴치업체 '닥터배트'의 이윤영 과장은 가정집, 공공건물, 교량 등 실제 사례를 예로 들며 "도시 비둘기들이 자주 찾는 곳에 부식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류만 감지할 수 있는 기피 물질을 설치해 동일한 장소에 다시 오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 조류를 퇴치해 온 닥터배트의 이윤영 과장은 "일부 조류퇴치 회사의 경우, 망을 설치하거나 이동을 차단하는 방식을 사용해 비둘기를 가두거나 죽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자사는 친환경 기피 물질만을 사용해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퇴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죽이거나 포획하지 않고, 친환경 기피 물질을 사용해 비둘기들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되지 않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

이어 이윤영 과장은 "지난 2006년 비둘기가 유해 조류로 지정된 후, 퇴치관련 문의가 늘었고 개인 소비자 수요도 증가했다"며 "현재까지 모든 고객들이 자사 제품의 효능으로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기피제 사용 등 퇴치 작업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더라도, 갈 곳 없는 비둘기들이 내쫓긴 후 또 다른 지역에 몰리고 있어 근원적인 문제 해결은 사실상 이루어 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으로 포화상태를 이룬 대도시에서 비둘기가 살 만한 터전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 도시 비둘기, 애완용으로 '전환'…합격, 불합격?

지난 17일 인터뷰 약속이 있었던 당일, 황재한 씨는 기르던 비둘기 몇 마리를 전라도의 한 동물원에 기증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꼬꼬천국'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황씨는 현재 270명이 넘는 회원수를 보유하며 비둘기 관련 정보를 교류 중인데, 회원들이 비둘기를 키우고 싶다는 입양 의사를 보이면 무료로 선물하거나 소정의 돈을 받고 분양하고 있다.

"'꼬꼬천국'을 찾는 분들 중, 애완동물을 기를 수 없는 분들은 사이트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대리 만족을 느끼시더라구요. 어떤 분들은 사이트를 자주 찾으시다가 입양을 문의해 오기도 하구요.…저는 주변분들께 비둘기를 애완동물로 길러보시라는 추천을 하고 있어요. 길러보면 자연히 아실테지만, 비둘기의 매력은 정말 대단하거든요."

그렇다면 도시에 넘쳐나는 비둘기들을 애완용으로 기를 수 있을까?

환경부 자원보전국의 한 담당자는 노컷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도시 비둘기 중에는 사육용 집비둘기 종류가 섞여 있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고 도시 비둘기를 '유기 동물'로도 단언하기 어렵다"며 "시민들이 치료나 보호 목적으로 잠시 포획해 방사하는 것은 무관하지만 사육을 목적으로 도시 비둘기들을 무단으로 포획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답했다.

일부 시민들이 비둘기 입양 의사가 있더라도 길거리 비둘기를 임의로 데려다 키울 수는 없는 것이다.

◈ 비둘기, 인간과의 공생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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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환 씨가 운영 중인 카페 '꼬꼬천국'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가 아닌 '희귀한' 품종의 비둘기도 다수 기르고 있어 회원을 비롯한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목 주변 깃이 거꾸로 자라는 '자코방'과 콧등 위에 큰 사마귀가 붙은 모양새의 '케리어', 다리에 깃이 많아 발가락이 보이지 않는 '공작비둘기'까지... '버라이어티'한 비둘기의 세계에 발을 들인 네티즌들은 "독특하다", "너무 예쁘다"는 등의 댓글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비둘기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인간들과의 공생을 시도하는 길거리 비둘기들에 대한 남다른 연민을 털어놨다.

"도시 비둘기는 (애완 비둘기와 달리)자유가 있고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사는 등 먹이가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어요. 비둘기들이 쉴만한 공원 같은 공간이 적다는 것도 안타까운 부분이죠. 도시 비둘기들은 날마다 살기위해 삶의 전쟁을 치른다고 생각해요."

특히 '도시'라는 환경에서의 '비둘기와 인간의 공생'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의견을 보였다.

"공생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입을 뗀 그는 "사람들 누구나 생각이 다른데 비둘기에 대한 인식이 나쁜 사람까지 더불어 살기를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하며 "다만 어느 장소를 마련해 비둘기들의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가장 공생에 근접한 해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평화의 상징'이 '닭둘기'로 전락하고, 지자체의 상징종으로 지정됐던 비둘기가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아이러니한 현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황재한 씨는 "평화의 상징이 된 것도, 유해동물이 된 것도 모두 인간이 정한 것이다. 비둘기 입장에서는 그 반대일 것이다. 바뀐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비둘기들은 아니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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